가계 ‘노란불’, 자영업자 ‘빨간불’에 선제적 대응

2019.08.05 최신호 보기


ㅣ▶자영업 상점이 늘어선 서울의 한 거리 | 한겨레

정부의 금융정책 목표 세 가지를 꼽는다면 ‘혁신, 포용, 안정’이다. 금융 당국은 이 세 가지 목표를 균형 있게 겨냥해야 한다. 어느 한 가지에 쏠려 다른 두 가지 목표를 소홀히하다 보면 다른 정책도 실패에 이를 수밖에 없다. 가령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아 금융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게되면 생산적 혁신금융도, 효과적 포용금융도 멀어지는 것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기준금리 전격 인하를 결정한 7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경기 회복을 뒷받침하도록 완화적 통화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면서도 “정부의 금융안정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 총재가 말하는 금융안정 노력이란 가계부채의 관리다.

이명박, 박근혜정부 때부터 국내 금융불안의 최대 복병으로 떠오른 가계부채는 2017년 이후 증가세가 뚜렷하게 둔화하고 있다. 금융권 가계대출에다 카드·할부금융사의 판매신용까지 합친 가계부채 총액은 2013년 1000조 원을 돌파한 뒤 2015~2016년에는 두 해 연속 10%가 넘는 증가율을 기록하며 폭발 직전의 모습을 보였다. 방치하면 대규모 금융 부실의 발생이 우려된다는 경고가 국내외에서 나왔다. 2017년 초 국제결제은행(BSI)은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율은 세계 2위,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총액 비율은 세계 7위’라는 보고서를 냈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첫해부터 가계부채 억제에 총력을 쏟았다. 2017년 10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가계부채 종합 대책’(10.27 대책)에 가계대출 억제와 금융 부실 방지를 위한 정책을 모아 담았다. 2021년까지 가계대출 증가율을 5%대로 낮춘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특히 ‘총 부채원리금 상환비율(DSR:Debt Service Ratio)’이라는 대출 관리 지표가 새로운 무기로 등장했다. DSR은 대출 받는 사람의 모든 대출 원리금 상환액을 연간 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주택담보대출 뿐 아니라 전세보증금, 자동차할부금, 다른 소액 신용대출까지 포함한 모든 부채의 상환 원리금이 연간 소득의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목표를 정해 관리하는 것이다.

경제성장 속도보다 가계부채 더 가팔라
이런 새로운 규제 도입과 함께, 금융 당국은 수시로 점검 회의를 열어 보완 대책을 마련하며 고삐를 죄어왔다. 이런 정책 노력에 힘입어 가계부채 총량 증가는 뚜렷한 하향 안정세로 돌아섰다. 2016년 11.6%까지 치솟았던 가계부채 증가율이 2017년 8.1%, 2018년 5.8%, 올해 1분기 말 현재 4.9%까지 내려왔다. 2021년까지 ‘5%대 증가율’이라는 목표를 조기 달성한 셈이다. 4.9% 증가율은 2004년 4분기(4.7%) 이후 14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대출 연체율이나 장기 분활상환 대출의 비중 등 구조적 건전성 관리 지표들도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가계부채 증가율이 둔화하기는 했으나 경제 성장률 둔화, 가계 소득이나 자산 규모 등을 고려하면 여전히 부담스런 수준이다.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2019년 1분기 말 현재 가계부채 총액은 1540조 원으로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91.9%다. 이는 1년 전(2018년 1분기 말 89.7%)보다 2.2%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성장 속도보다 가계부채가 더 빠르게 늘었다는 뜻이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 역시 158.1%(추정치)로, 전년 동기 대비 1.9%포인트 상승했다.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도 1년 동안 46.0%에서 48.1%로 2.1%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처분가능소득과 금융자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상승했다는 것은 가계의 부채 상환 능력과 소비 여력이 더 떨어졌다는 의미이다.

사실상 가계부채나 다름없는 자영업자(개인사업자) 부채도 문제다. 1분기 말 현재 금융권의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636조 4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2%(12조 1000억 원) 증가했다. 자영업자 대출 증가율은 2015년 13.5%를 기록한 뒤 5년 연속 두자릿 수 대를 내려오지 않고 있다. 금융 당국은 2018년 3월 자영업자 대출에 대한 별도의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은행권에 적용하고 10월부터는 비은행권에도 순차적으로 확대하는 등 관리에 나섰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가 없다. 특히 도소매, 음식숙박 등 업황 부진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의 부채 상환 능력 악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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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대출 부실 급증 우려, 선제적 대응
전체 자영업자의 소득 대비 금융부채(LTI) 비율은 2017년 220.4%에서 2018년 230.3%로 소폭 올랐는데 도소매는 239.4%에서 294.4%, 숙박음식업은 222.1%에서 255.3%로 크게 치솟았다. 금융부채가 있는 자영업자의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율(DSR)을 보면, 2018년 말 현재 전체 평균이 39.0%로 전년도(39.7%) 수준이다. 반면에 도소매업(2017년 31.8%→2018년 46.6%)과 숙박음식업(40.5%→48.4%) 자영업자의 원리금 상환 부담율은 크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엄중한 경기 상황에 따른 부채 상환 능력의 악화는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한은이 금융·보험업을 제외한 기업 2151곳의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자지급 능력을 나타내는 이자보상배율(이자비용 대비 영업이익의 크기)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큰 편차를 보였다. 대기업은 2017년 평균 9.7에서 2018년 9.2로 크게 떨어지지 않았으나 중소기업은 배율 자체가 낮은 데다 하락 폭(3.5→2.0)까지 컸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부담하지 못하는 경영 상태를 뜻하는 ‘이자보상배율 1 미만’ 기업의 비중은 2016년 이후 중소기업 중심으로 꾸준히 상승 중이다. 2018년 실적 기준으로는 중소기업의 47.2%가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은 관계자는 ”기업대출 연체율이 아직까지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으나 국내외 경기 침체의 심화 등으로 경영 여건이 더 어려워지면 취약 업종 중심으로 기업대출의 부실이 급증할 수 있다”며 금융권의 선제적 대응을 주문했다.

박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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