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투자 국내 유턴하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 성공

2019.08.05 최신호 보기

7월 25일 구미 국가산업단지에서 구미시, 경상북도와 LG화학이 전기자동차 2차전지 핵심 소재인 양극재 공장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계, 재계와 지역 시민사회단체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이루어진 이번 ‘구미형 일자리’ 투자협약은 6월 말 투자협약이 성사된 ‘광주형 일자리’의 정신을 계승하는 한편, 더 발전된 내용을 포함하는 상생형 지역 일자리 모델이다.
먼저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사회통합형 혹은 노사상생형 일자리 모델이라고 일컫는 광주형 일자리는 기존의 노사관계와 노동시장 구조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생산적 국내 투자와 좋은 일자리의 창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재벌 대기업의 해외 이전이 증가하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가 심화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노사정의 전략적 타협을 통해 국내 투자를 활성화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광주형 일자리는 노사민정의 지역사회협약을 근거로 해서 좋은 일자리, 생산적 국내 투자, 협력적 노사관계,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을 추구하는 혁신적 산업정책이고 대안적 일자리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모범적인 상생형 지역 일자리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광주형 일자리는 정부 일자리 개혁정책의 마중물인 동시에 노사 상생형 지역 일자리의 선도자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광주형 일자리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과 유의미성을 충분히 존중하더라도 배경과 취지를 되짚어보고 이해관계의 조율 과정을 성찰해보면 아쉬운 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현대차 투자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상생형 지역 일자리 모델의 핵심 모듈이라고 할 수 있는 노사관계와 생산체계의 혁신 논의는 사라지고 연봉 수준과 공장 설립 여부에만 세간의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한편 광주형 일자리 투자협약이 성사되고 난 후 유사한 형태의 지역 일자리 사업들이 상생형 지역 일자리 모델이라는 이름하에 추진되었다. 그 사이 대구형, 밀양형, 군산형 등 다양한 지역 일자리 모델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7월 25일 투자협약이 이루어진 구미형 일자리가 가장 모범적인 상생형 지역 일자리 모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구미형 일자리는 대기업 노사, 그리고 지자체가 힘을 모아 해외투자 대신 생산적 국내 투자를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국내 산업 입지의 질적 경쟁력을 높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LG화학은 폴란드 현지에 생산 공장을 증설하려던 기존 계획을 폐기하고 구미국가산업단지에 약 5000억 원을 투자해 직간접적 1000명 고용 효과를 지닌 전기차 2차전지 배터리 양극재 생산 공장을 짓기로 했다. 내년에 착공해 2024년 완공 예정인 생산 공장은 연산 6만 톤 규모로 고성능 전기차 약 50만 대분의 배터리를 제조할 수 있는 규모이다.
둘째, 구미형 일자리는 광주형 일자리와 달리, 핵심 기업으로 LG화학이 생산 투자와 고용 창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투자 모델이다. 광주시가 1대 주주이고 현대차가 2대 주주로 450억 원 정도를 투자하면서 임금 수준을 낮추는 ‘임금 양보형’에 가까운 광주형 일자리와 달리, 구미형 일자리는 LG화학이 약 5000억 원 전액을 출자하고 임금 수준도 주변 오창공장 LG화학 배터리 공장 수준과 동일하게 하는 ‘투자 촉진형’ 일자리 모델이다.

노사 상생과 공존 위한 물밑 협상 진행
셋째, 구미형 일자리는 표면적으로 노사 협상 과정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초기 해외투자 계획을 철회하고 국내 산업 입지의 선정 과정에서 노사의 상생과 공존을 위한 물밑 협상이 진행되었다. 민주노총 화섬연맹 소속인 LG화학 청주 오창공장 노조는 초기에는 오창공장의 기존 시설 증설을 주장하다가, 상생형 지역 일자리 모델의 시대적 의미를 인식하고 난 후 구미국가산업단지의 공장 신설을 인정하는 용단을 내리기도 했다.
이와 같이 이번 구미형 일자리 투자협약의 성사는 광주형 일자리의 성사에도 불구하고 일부 남아 있던 ‘상생형 지역 일자리 모델’에 대한 불신과 회의를 불식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자칫 상생형 지역 일자리 사업이 정부 예산을 따내기 위한 ‘도덕적 해이’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하고 경기침체기 산업·고용 위기 지역 간 경쟁을 격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존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미형 일자리의 성사는 상생형 지역 일자리 모델의 정립과 확산에 꼭 필요한 가이드라인(지침)으로 작용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정부는 가능한 한 빨리 구미형 일자리의 사례를 귀감으로 삼아 상생형 지역 일자리 사업 지원의 전제 조건인 ‘상생협약’의 필수 요건과 최저 기준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적어도 상생협약의 내용에 지역·업종별 특성을 감안하되 최소 고용 창출 규모와 투자 규모(예: 고용 100명 이상, 투자 규모 100억 원 이상)를 명시하고, 노동기본권과 단체교섭 보장 등 근로기준법 규정을 준수하되 생산 효율성과 유연성에 대한 노조의 협력 의무, 지역 평균임금과 노동조건을 기준으로 한 ‘적정 일자리 모델’ 개념 등을 제시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상생형 지역 일자리 모델의 본질은 노사민정의 적극적인 협력과 공조에 의해 국내 산업 입지에 대한 생산적 투자를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내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대기업은 생산적 국내 투자 활성화와 참여적 노사관계를 받아들이고, 노동조합은 적정 일자리 모델과 청년 채용을 위한 책임 분담, 생산체계의 혁신을 합의하는 전략적 타협이 반드시 필요하다. 바로 이것이 상생형 지역 일자리 모델의 시대적 메시지이다.

이상호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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