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몸짓으로 ‘더 가능한 춤’에 도전”

2019.08.02 최신호 보기


l▶홍혜전 안무가 | 홍혜전

장애인이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춤을 추는 무용수가 장애인인 공연이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제4회 대한민국 장애인 국제무용제(이하 장애인 무용제)에서 6개국, 12개 작품이 선보일 예정이다. 대다수 장애인 예술가들의 작품은 ‘장애를 딛고 이룬 성과’로 포장되기 마련이다. 어쩌면 장애 예술을 공유하고 향유하는 이들에게도 예술과 장애에 대한 편견이 작용해서인지도 모른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무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가 있는 몸이어서 더 개성적이고 독특한 무용제가 8월 7~11일 서울 동숭동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열린다.
한국에서 장애인들의 무용이 시작된 지는 10년 남짓이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많은 작품이 무대에 선보였다. 이번 장애인 무용제의 행사 가운데 하나는 장애인·비장애인 무용수로 구성된 영국 현대 무용단 캔두코(Candoco)의 공동 설립자이자 예술감독 애덤 벤저민이 연사로 참여하는 콘퍼런스다. ‘Access, Exellence, Inclusion and Diversity(접근, 탁월함, 포함 그리고 다양성)’를 주제로 8월 6일 동숭동 이음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5층 이음홀에서 진행된다. 무대에서의 낙상으로 척추에 손상을 입은 셀레스테 단데커와 벤저민이 1990년 설립한 캔두코 무용단은 세계를 돌며 창의적인 몸짓을 선보였다. 휠체어와 목발은 극적 효과를 고조시키는 무대의 장치이자 무용수들의 또 다른 다리였다. 신체 일부가 절단된 몸과 그렇지 않은 몸들의 연결 동작은 ‘몸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l▶춤추는 은평재활원의 ‘가능한 춤’ |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

휠체어와 목발은 극적 효과 무대장치
4회째인 장애인 무용제에도 다양한 국적의 무용수들이 참가한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비장애 안무가 도미니크 멜헴과 뇌병변장애를 가진 독일 출신 안무가 롤랜드 월터가 함께하는 듀엣 작품 ‘우노(Uno)’가 개막 첫날인 7일 관객을 찾아간다. 2016년 우노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들은 2018년 스페인의 장애인 무용 축제인 ‘에세나 모빌’ 경쟁부문 1위를 차지했다. 두 예술가가 만들어내는 섬세한 몸짓이 강렬한 메시지로 극장을 채울 예정이다. 무용제 기간에 한국의 비보이 이정수, 네덜란드의 비보이 레도앙 에잇 치트가 주축으로 이끌고 있는 6명의 다국적 그룹 ‘일 어빌리티즈’, 농인 무용가 김영민의 춤도 무대에 오른다.
지체장애나 청각장애인들만 무대에 서는 것은 아니다. 지적장애인들 또한 그들만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선사한다. 대다수 비장애인, 장애인이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는 가운데 오로지 장애인들로만 구성된 춤을 선보이는 팀이 있다. 지적장애인들로 이뤄진 은평재활원의 ‘가능한 춤’ 시리즈는 2016년부터 매년 장애인 무용제에 참가했다. 수년 전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한 서울댄스프로젝트의 일환인 춤바람 커뮤니티로 이들은 인연을 맺었다. 은평재활원의 전담 예술가가 홍혜전(47) 안무가였다. 은평재활원 장애인들과 첫 수업을 한 홍 안무가는 이렇게 기억한다. “‘이를 어쩐담….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고민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서로를 믿는 친구다. 처음에는 들리지 않던 지적장애인들만의 언어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들은 무대에 오르기까지 어떤 창작 과정과 수업을 거칠까. 홍혜전 안무가를 7월 25일 인터뷰했다.

l▶스페인 출신의 데니스 산타카나 댄스 컴퍼니의 ‘만남’

“누구나, 누구와 함께하든 가능한 일”
-평소 무용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우리 친구들이 스스로 움직임을 선택하고, 그것을 몸으로 표현하길 바라고 있어요. 말로 자신을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이니, 춤으로 표현하며 사람들과 소통하길 바라죠. 그러다 보니 즉흥무용에 접근 방법을 두고 있어요. 우선 타악 연주자인 타무라 료와 함께 리듬에 따라 움직임의 질감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요. 저도 함께 움직이면서 친구들이 자신의 움직임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매개자 역할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지적장애인 무용수이기에 동작을 외워서 추는 춤은 아닐 것 같습니다. 무용수들이 평소 자유롭게 추는 춤에서 모티프를 얻어 안무를 하실 것 같은데 과정이 궁금합니다.
=네, 거의 그렇습니다. 우선 제가 어떤 작품을 준비할지 콘셉트를 정하고, 무용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사진이나 이야기를 들려주며 상상할 수 있도록 유도해요. 상상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캐릭터나 움직임의 질감을 결정하도록 다양하게 시도하는데, 저희 무용수들은 원하는 캐릭터가 아니면 절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듣기 위해 집중하고 있어요. 시간이 참 많이 걸리긴 하지만 움직임의 성격이 결정돼야 음악을 입히며, 움직임의 표현을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무용수들이 즐거워하는 그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기억한 후, 그 움직임이 증폭될 수 있게 지속적으로 함께 움직여요. 그러면 타악 연주자인 료가 움직임을 보며 즉흥적으로 음악을 입혀줘요.

-과거에 은평재활원 무용수들을 ‘형’이라고 부르는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춤을 함께 추면서 느끼는 연대감이 상당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형이라고 부르지는 않아요. 무용수들과의 연대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와 함께 춤을 춘다는 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순수하게 자신을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행위이기 때문에 춤 자체가 연대감을 형성하죠. 누구나, 누구와 함께든 가능한 일입니다. 춤의 힘이에요.

-‘가능한 춤’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짓게 됐나요?
=은평재활원 친구들을 처음 만났을 때 춤추는 걸 좋아했지만, K-팝 춤을 그대로 따라만 할 줄 알았어요. 이들이 함께 춤을 추면서 변화하는 걸 발견하기 시작했어요. 앞으로가 궁금해지더라고요. 무용을 교육받지 않았던 이들이 지금, 저희와의 작업을 통해 자신의 움직임을 스스로 선택하고 표현하는 춤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말이에요. 그래서 탄생한 제목이죠. 매년 표현되는 주제는 다르지만 상징적으로 현재 우리들의 춤은 어디까지 왔는지,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도전하는 작업이라서 ‘가능한 춤’이라고 짓게 됐습니다.

l▶김영민 무용가, 김혜란 안무가 등이 참여한 ‘달, 꽃 그리고 빛’|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

“춤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
-무대에 오르고 난 후 무용수들의 반응은 어떤지요? 자신감도 부쩍 생겼을 것 같습니다.
=춤을 추면 즐거운데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박수까지 치니 더 좋은 거죠. 춤이 우리 친구들의 자존감을 엄청 높였어요. 그래도 시작 전에 긴장하고, 자신의 춤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울면서 속상해하고 만족스럽게 끝나면 행복해해요.

-2016년 첫 번째 무용 공연을 기억하는지요? 첫 번째 무대에 오르면서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했나요?
=아르코대극장에서의 첫 번째 공연을 잊을 수가 없죠. 우리 친구들도 저도 긴장 많이 했어요. 아니, 무대는 늘 긴장감을 주죠. 열심히 준비한 작품이 단 한 번의 순간을 통해 표현되는데 어떻게 긴장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래도 첫 무대는 우리 친구들이 잘 해낼 수 있으리란 믿음이 없어 긴장했고, 지금은 노력한 시간의 결과를 그대로 관객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서의 긴장감이라 좀 다르네요. 첫 무대와 지금의 무대는 여전히 긴장되지만 (무용수들과의) 믿음으로 인해 다른 점이 있어요.

-올해는 어떤 무용이 준비돼 있는지요?
=올해는 좀 더 가능한 춤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항상 연극적 요소와 함께 우리의 춤 작업이 진행되길 소망했는데 올해가 이 소망의 첫 번째 도전인 거죠. 그림자극을 하고 있는 극단 모이세 정숙영 연출가와 작업을 준비했습니다. 정숙영 연출가와 저희 무용수들이 함께 수업 속에서 ‘숲속의 결혼 축제’라는 스토리와 캐릭터를 결정했고요. 저와 료의 작업으로 춤이 만들어졌습니다.

-매년 무용제 관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어릴 때부터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무용수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전문 무용수에게 없는, 춤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자유로운 몸짓이 있죠. 관객 역시 이 점을 발견하세요. 그러다 보니 슬프지 않은데, 인간의 자유로운 몸짓과 그들의 행복한 표정을 통해 감동을 받고 눈물을 많이 흘리셨어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서 오는 감동과는 좀 다른, 인간의 본능에서 오는 자유로움의 감동인 거죠.

-장애인이 춤을 추는 것이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준다고 생각하세요?
=장애인이 춤을 춘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당연한 일이에요. 자신의 몸으로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한다는 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죠. 자연스러운 본능을 사용할 줄 모르는 것이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치매 노인 가르치며 치매 지연 효과 확인”
-치매 노인을 위한 무용 교육, 장애인을 위한 무용 프로그램 연구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4~5년간 데이케어 센터에서 치매 노인분들에게 무용 교육을 했어요. 한국연구재단 지원으로 춤을 통한 치매 지연 효과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현재 보고서를 작성 중이에요. 치매 노인을 대상으로 한 무용 교육은 우울증을 극복하고 잔존 신체 기능을 유지하도록 도움을 줘요. 춤이 긍정적인 감정을 발현하게 함으로써 뇌를 활성화해 치매를 지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습니다. 서울문화재단의 감각통합무용예술교육 프로그램 개발도 진행하고 있어요.

-앞으로 장애인 무용 교육은 어떻게 발전해야 한다고 보세요?
=무용은 장애, 비장애, 전공, 비전공 할 것 없이 인간의 표현, 창작 본능을 회복할 수 있는 활동인데도 입시 교육에 눌려 필수 교육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특히 장애인의 무용 교육은 더욱 그렇죠. 무용을 하고 싶어도 장애의 특성을 이해하는 교사를 만나는 것도, 교육받을 기관을 찾기도 어렵고요. 지속적으로 다양한 대상이 참여할 수 있는 교육 지원이 필요해요.

홍 안무가는 은평재활원 무용수들과 작업하며 “귀가 열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알아들을 수 없던 언어가 무슨 소리인지 알게 됐고, 의사소통을 위해 자신이 이해한 것이 맞는지 물으며 확인한다. 소통과 더불어 믿음도 자랐다. “이 친구는 어떻게 해내리라는 믿음이 있고, 반면 어떤 친구는 이런 부분에서 더 끌어내기 쉽지 않으리라는 판단도 생겨요. 제 소망은 이 친구들이 다른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춤 활동을 통해서 전문 무용수가 그렇듯 공연으로 먹고살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면 현실이 답답하긴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못 돼도 도전하면 다음 세대는 정말 그런 세상을 맞이하지 않을까요?”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홍 안무가는 늘 고민하며 실천해왔다. 어떤 춤은 예술, 어떤 춤은 대중예술, 어떤 춤은 ‘춤바람’으로 표현되듯이 해도 되는 춤, 해선 안 되는 춤으로 구분한다. 재화적 가치로 환산되는 생산적 노동만이 노동은 아니다. 자신을 표현하는 ‘즐거운 노동’, 춤을 통해 모든 몸은 아름답다는 진실을 장애인 무용제가 전할 예정이다.

박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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