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문제의식 지구촌 공감 ‘문학 한류’ 시대 열렸다

2019.07.01 최신호 보기


l▶(윗줄 왼쪽부터) 작가 조남주, 한강, 편혜영, 김영하, 황석영, 배수아, 정유정│한겨레

번역출판 국제 워크숍

한강, 조남주, 정유정.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한국에서 사랑받는 작가’로만 부르기엔 서운할 법하다. 최근 해외 출판계가 우리 출판계에 보내는 시선을 보면 이들은 ‘문학 한류를 이끄는 작가들’로 불러야 맞겠다.
바야흐로 ‘문학 한류’ 시대다. 2016년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며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으로 번역 출판돼 해외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은 2017년 국내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한 데 이어 일본에서도 소개돼 엄청난 인기를 끄는 중이다. 2018년 12월 초 일본에서 출간 이틀 만에 아마존 재팬 아시아 문학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대만, 동남아시아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곧 중국에서도 출판할 예정이다. 정유정의 <종의 기원>은 영어로, <7년의 밤>은 독일어로 번역 출판됐는데 2018년 미국의 공중파 토크쇼 NBC <투나잇 쇼>는 <종의 기원>을 ‘올여름 읽어야 할 책’ 다섯권 가운데 한 권으로 꼽았고, 2015년 독일의 유명 주간지 <차이트(Zeit)>는 <7년의 밤>을 ‘올해의 추리소설’ 9위에 선정했다. 이 밖에도 편혜영, 배수아, 황석영, 김영하 등이 최근 10년 사이 해외가 주목하는 한국 작가로 손꼽힌다.

l▶(윗줄 왼쪽부터)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영어),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영어), 편혜영 작가의 <홀>(영어), 황석영 작가의 <낯익은 세상>(스페인어), 배수아 작가의 <올빼미의 없음>(영어), 조남

“다른 언어권 시선으로부터 듣는 기회”
세계문학 속 한국문학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을까.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독자들과 만나야 할까. 6월 18일부터 22일까지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과 한국문학번역원(이하 번역원)이 공동 주최한 ‘2019 한국문학 쇼케이스’(이하 쇼케이스) 프로그램 가운데 ‘번역출판 국제 워크숍’(이하 워크숍)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만나볼 수 있었다. 쇼케이스는 한국문학 번역 출간에 관심을 보이는 해외 출판인들을 초청해 국내 출판인, 문학인들과 교류의 장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열린 행사다. 워크숍을 비롯해 ‘교차언어 낭독회’ ‘번역가 멘토링’ ‘저작권 면담’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6월 19일 올해 쇼케이스 개막식에서 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축사를 통해 “이번 행사는 국내에서는 잘 모르고 있는 한국문학의 모습을 다른 언어권의 시선으로 전해 듣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며 “한국문학의 잠재력과 고민을 확인해보는 유익한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태훈 해외문화홍보원장은 최근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해외 영화인들에게 큰 공감을 얻은 사례를 언급하며 “영화와 마찬가지로 문학도 우리 작가들이 우리의 글로 우리의 상황과 고민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보편적인 주제와 맞닿았을 때 공감과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세계 속의 한국문학, 그 다양한 흐름들’이라는 주제로 6월 19, 20일에 열린 워크숍은 국내외 문학출판계 인사, 번역 전문가 등의 발표와 토론으로 이루어졌다. ‘한국문학 및 해외 번역문학 출간의 흐름’과 최근 문학 한류를 주도하는 ‘여성 작가의 약진’ 현상 등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l▶6월 19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9 한국문학 쇼케이스’ 개막식에서 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워크숍에서 ‘한국문학 해외 소개 현황’을 발표한 번역원 문학향유팀 이윤영 팀장에 따르면 정부 차원에서 전담 기구를 설립해 한국문학 해외 소개를 본격화한 건 2000년대부터다. 2001년 번역원이 설립되어 한국문학의 번역 및 출판, 한국문학 행사의 해외 개최 지원 등이 이루어지면서 당대의 한국 작가들이 해외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윤영 팀장은 “2007년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영문판 출간, 2011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영문판 초판 10만 부 인쇄, 2016년 한강의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 등 굵직한 사건들을 통해 보았을 때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틀 안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지는 이제 10년 남짓 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번역원에서 진행해온 번역출판 지원사업은 그 규모와 범위가 꾸준히 확장돼왔다. 2008년 14개 언어권 41건 규모에서 진행되던 번역 지원사업은 2018년 18개 언어권 117건으로 확대됐다. 출판 지원 종수 역시 2008년 16개 언어권 47종 규모에서 2018년 24개 언어권 119종 규모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l▶6월 20일 코엑스에서 열린 ‘번역출판 국제 워크숍’ ‘세션 3’에서 프랑스 닐출판사 클레르 도 세호 편집장(왼쪽)과 러시아 AST출판사 키릴 이그나티예프 해외사업 팀장이 토론하고 있다.

해외 출판사 자발적 출간 결정 늘어
주목할 만한 변화는 해외 출판사의 자발적인 출간 결정에 따라 진행되는 번역출판 지원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 팀장은 “번역원에서 2014년부터 한국문학 출간에 관심을 보이는 출판사를 대상으로 ‘해외 출판사 번역출판 지원사업’을 시행했는데 이 사업을 통해 출간된 작품이 2015년 20종에서 2018년 72종으로 크게 늘어난 건 매우 반가운 현상”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렇게 된 데는 해외의 내실 있는 문학 출판사들의 역할도 크다”며 “해외에서 번역 출간된 한국문학 작품들의 잇따른 성취에 고무된 해외 출판사들이 한국문학 출간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으로 분석했다.

대만 맥전출판사 편집장 우웨이전 씨는 “최근 일부 한국 작품이 영어나 프랑스어, 일본어 등 여러 언어로 미리 출판되고 대만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한국 작품을 들여올 기회도 갈수록 증가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다른 언어로 미리 번역된 경우, 미국이나 영국 등지에서 평론 및 독자 반응을 먼저 파악할 수 있어 대만 독자에게 소개할 때 설득력을 높일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언어권별로 보면 영어권에서는 한강, 신경숙 작가를 비롯해 김영하, 배수아 등이 인기다. 편혜영은 <홀>로 한국 소설로는 처음으로 2018년 셜리 잭슨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프랑스어권은 영어권보다 앞서 한국문학을 소개해왔다. 1990년부터 여러 출판사에서 꾸준히 한국문학을 출간해온 결과 현재까지 소개된 작품 수는 총 500여 종에 이른다. 황석영은 2018년 <해질 무렵>으로 에밀 기메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했고, 이승우는 <생의 이면>으로 페미나상 외국어 소설 부문 최종심에 오르기도 했다.
아시아어권에서는 일본에서 한국문학의 약진이 특히 두드러진다. 선두에는 단연 <82년생 김지영>이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출간 사흘 만에 조남주에 대한 심층 기사와 인터뷰를 싣고 “한국 여성의 현실을 냉정한 필치로 그려낸 한국의 베스트셀러가 일본에서도 공감을 사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2018년 독자들의 추천을 기준으로 후보작을 정하는 제4회 일본번역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l▶6월 19일 서효인 민음사 차장이 ‘번역출판 국제 워크숍’의 ‘세션 1’발제자로 나서 ‘한국 소설과 여성 서사’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한국 특수성이자 인류 보편의 문제”
해외에서 주목받는 작품들을 살펴보면 여성 작가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워크숍에 참석한 해외 출판 관계자들이 많이 언급한 한국 작가 역시 한강, 조남주 등 여성 작가의 이름이었다. 이 작가들의 작품 주제나 문제의식 등이 보편적이고, 최근 전 세계적으로 중요하게 논의되는 사회적 이슈와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러시아 AST출판사 키릴 이그나티예프 해외사업팀장은 “한국 여성 작가들이 러시아에서 높은 잠재성을 지니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적인 부분”이라며 “그들이 자신의 책에서 전하려고 애쓰는 페미니즘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는 러시아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고 밝혔다.

l6월 19일 ‘2019 한국문학 쇼케이스’ 개막식에서 김태훈 해외문화홍보원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한국문학번역원

우웨이전 씨는 최근 2, 3년 동안 대만 독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사회 이슈’들을 소개하면서 “2017년 <거짓말이다>, 2018년 <82년생 김지영>이 출판되자 독자들은 대만과 한국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비슷하다며 크게 공감했다”고 말했다. 또한 “특히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의 불평등한 지위를 묘사한 작품인데, 여성의 지위가 크게 향상됐다 해도 수많은 직장 여성이 이 책을 보며 자신의 심정을 대변해준다고 받아들였다”고 덧붙였다.
시인이자 민음사 편집부 차장인 서효인 씨는 “최근 여성 작가의 작품은 작품 그 자체의 매력으로 해외 독자들에게 사랑받는다”며 “이를 두고 페미니즘 화두 등 ‘계기성’으로 주목받았다고 봐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소설에서 드러나는 페미니즘, 소수자의 문학, 장르의 혼종, 역사의 회고와 개인의 발견 등은 한국의 특수성에서 기인했을 테지만 인류 보편의 문제이고, 지금 세계의 총체성을 획득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프랑스 닐출판사 클레르 도 세호 편집장은 “<82년생 김지영>을 출판하고 싶었던 이유는 일반 대중에게 이야기할 수 있고, 깊이 고민하게 하는 지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l▶6월 19일 서울 강남구 최인아책방에서 열린 ‘교차언어 낭독회’에서 작가들이 관객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한국문학번역원

한국문학 콘텐츠 다국어 서비스
우리 문학이 해외 평단에서 호평받으려면 번역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독일 카스출판사 사장이자 일본문학 번역가인 카트야 카싱 씨는 “한 작가의 작품이 번역되면 그 작품은 번역에 따라 존재할 수도, 추락할 수도 있다. 번역이 좋다면 작가는 외국인 독자들에게도 작품에 대해 공감받을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번역이 나쁘면 이런 기회는 얻을 수 없다”고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학 한류 현상을 지속하려면 해외 출판인, 번역가, 학자들에게 한국문학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일도 중요하다. 번역원에서는 디지털 도서관을 운영하며 번역 작품 서지사항, 외신 보도, 작가 소개 등을 실시간으로 수집해 2만 3000여 건의 한국문학 콘텐츠를 다국어로 서비스하고 있다. 이에 더해 위키피디아에 한국 작가 작품에 관한 해설을 등재할 계획이다. 이윤영 팀장은 “현재 계간지로 나오는 <코리안 리터러처 나우(Korean Literature Now)> 역시 뉴미디어 디지털 환경에 맞춰 변화를 꾀하고 있다”며 “젠더, 저항 등 세계적인 관심 주제에 따라 한국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오디오 북, 북 트레일러, 인터뷰 등을 제작해 해외 독자가 한국 작가를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채널들을 구축해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김청연 기자

작가–번역가 두 달간 의견 나눠 직접 나선 ‘또 하나의 예술’

l▶6월 19일 ‘교차언어 낭독회’에서 김경욱 작가(왼쪽)의 <동화처럼>을 아사다에미 번역가가 일본어로 번역해 낭독하고 있다.│한국문학번역원

‘교차언어 낭독회’ 현장
“골목이 좋아요. 새벽이 좋아요. 아무도 없어서. 여기로 오게 돼요. 눈길이 가요. 발길이 닿아요.(…)”
6월 19일 저녁 7시 30분경 서울 강남구 최인아책방에서 오은 시인이 직접 자신의 시 ‘나머지’를 낭독했다. 그러고 난 뒤 이 시를 영어로 번역한 번역가 양수현 씨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I like the alley. I like the dawn. As there is nobody. here I come. I come to see. I turn toward this place.(…)”
쇼케이스 가운데 하나인 ‘교차언어 낭독회’의 한 장면이다. 6월 18, 19일 양일 동안 진행한 낭독회는 김봉곤, 최은영, 최진영, 안희연, 김경욱, 김금희, 장강명, 오은 등 우리 작가 8명이 각자 작품을 한국어로 읽고, 이어서 영어·중국어·러시아어·프랑스어·일본어 등의 번역가들이 이를 번역해 직접 낭독하는 식으로 꾸려졌다.

낭독회는 한국 작가의 작품을 우리말과 외국어로 교차 낭독해 한국문학 작품의 매력을 해외 출판 관계자 등에게 소개하자는 취지로 진행하고 있는데 국내 독자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우리말과 외국어로 작품을 만나보는 시간은 마치 새로운 예술 장르를 접하는 느낌을 선사하기도 한다.
낭독회는 작가와 번역가가 함께 준비하는 공동 작업이기도 하다. 번역가는 특정 문장 등을 놓고 어떤 방향으로 번역해야 하는지 작가에게 끊임없이 되묻고, 작가는 원작의 의미가 최대한 잘 전달될 수 있게 작품의 숨겨진 의도 등을 설명한다. 이날 낭독회는 작가와 번역가가 약 두 달에 걸쳐 작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거쳐 열릴 수 있었다. 이날 자신의 작품 <동화처럼>을 낭독한 김경욱 작가는 “번역은 새로운 창작이라고 생각한다”며 “번역가분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새롭게 작품을 해석해준 것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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