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속마음 무심한 듯 유심한

2019.07.01 공감 최신호 보기


l▶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우연히 TV에서 <세상에서 가장 험한 등굣길>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페루의 한 소년이 드넓은 티티카카호를 작은 배로 건너는 장면이 인상적이어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 소년, 비달이 매일 위험을 무릅쓰고 2시간여 노를 저어 다다른 곳은 바로 학교였다. 중학생 소년이 오로지 공부를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무섭게 일렁이는 물살을 가르며 홀로 노를 저어 등교하는 와중에 가족의 먹거리를 얻기 위해 물새 덫을 놓고, 하교할 때는 갈대숲을 헤집고 들어가 다행히도 잡혀준 물새와 물새알을 품에 안은 채 다시 배를 돌려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이렇게 비달이 센 물살을 헤치며 겨우 집에 도착하지만 엄마와 동생들은 묵묵히 할 일을 할 뿐이다. 특히 비달의 엄마는 힘겹게 노를 젓고 물새 사냥까지 하고 온 비달에게 유난히 무심하게 대한다. 하지만 이내 이어지는 인터뷰를 보면 비달 엄마의 진짜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녀는 매일 위험을 감수하고 학교와 집을 오가는 비달의 모습이 짠하고 너무 걱정된다는 것이다. 매일 혼자 전쟁을 치르듯 어렵게 등하교하는 아들을 속으로만 걱정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애쓰는 아들이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기보다는 무심하게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비달을 보고 있자니 오늘도 힘겨운 학교생활을 무던히 견디고 있을 아들 얼굴이 겹친다. 물론 아들의 학교는 집과 무척 가깝기에 비달과는 전혀 다른 처지인데도 내 마음은 왠지 비달의 엄마 마음과 닮은 것 같다. 아들은 경미한 아스퍼거증후군, 즉 자폐 스펙트럼 성향을 지녔다. 아이가 어릴 때 간 병원의 의사가 강조했던 ‘경미한’ 아스퍼거라는 말을 나는 지금까지 믿고 살지만 경미하든 중하든 아스퍼거 아이들이 다니기에 학교는 매우 험난한 곳일 수밖에 없다.
사춘기 ‘중2병’인지 아스퍼거 탓인지도 모호해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기가 더욱 버거워진 나와, 자기 마음이 뭔지 갈피를 잡지 못해 늘 고민인 아들이 한 집에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특히 학교는 아이에게 때로는 전쟁터인 것 같다.

며칠 전에도 아들은 잘 모르는 다른 반 아이에게 뺨을 한 대 맞고 왔는데 이유는 그냥 ‘웃어서’였다. 때린 아이는 아들이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고 한다. 아들은 그저 친구들이 노는 게 부러워 구경하다 재밌어서 웃은 것뿐이라는데 이런 아들의 사소한 말과 행동이 자꾸 친구들의 오해를 사거나, 그들이 ‘좀 달라 보인다’는 이유로 아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핑계가 되곤 한다.
아들은 오늘도 자신의 마음과 싸우고 친구들의 편견을 이겨내며 학교에서 긴 시간을 지내다 올 것이다. 아들의 이런 치열한 일상을 지켜보면서도 안타까운 속마음을 감추고 무심하게 아들을 맞는 나 역시 비달 엄마와 참 닮아 있구나 싶어 자꾸 착잡해진다.

김서윤 경기 화성시 병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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