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가 6월 17일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한 연속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며 박수를 치고있다.│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소득주도성장은 찬반양론이 뚜렷이 갈리는 쟁점이다. 경제정책의 큰 방향 전환인데, 정치적 공방의 단골 메뉴로 더 자주 부각되고 있다. 정치적 공방에 휩싸인 소득주도 성장은 사실 아직 모습이 흐릿하다. 성과나 부작용을 논하기에는 아직 실증적 근거가 미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의 방향 전환에 따른 큰 흐름의 변화를 확인하려면 보통 1~2년은 지나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에 필요한 정책을 본격 추진한 기간은 1년 남짓에 불과하다. 이제 겨우 가시적 효과가 조금씩 나타날 시기다.
소득주도성장은 불평등을 극복하고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방안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사회안전망 강화, 복지지출 확대 등 다방면의 정책 수단을 동원해왔다. 주로 저소득 계층의 소득 기반 강화와 생활 안정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다. 이런 정책적 노력의 성과를 중간 점검하고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위원장 홍장표)가 6월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 소득격차 현황과 개선 방안’이라는 주제로 연 토론회에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홍장표 위원장(왼쪽)이 발표 내용을 경청하는 모습
“선택이 아니라 가지 않으면 안되는 길”
홍장표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2018년 국민계정을 통해 볼 때 가계의 실질소득이 늘어나 민간소비 호조로 연결됐으며, 2년 연속 감소하던 노동소득분배율이 상승세로 전환하는 등 소득 양극화가 완화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주력 산업의 부진과 함께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분배 개선 효과를 체감하기 쉽지 않다. 고령층, 무직 가구, 영세 자영업자 등 저소득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덜어드리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위원장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우리 경제의 특성상 미·중 무역 분쟁의 장기화, 세계경제의 둔화 등 외부 환경의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은 가계소득을 늘려 내수를 진작시키는 소득주도성장의 필요성을 더욱 강하게 말해주고 있다”며 소득주도성장을 ‘여러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니라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라고도 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정성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 여권 인사와 학계 및 연구기관의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지난 1년여 동안의 소득격차 추이와 정부 주요 정책의 효과를 놓고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쟁점 1 분배 개선 효과 있나?
김진욱 서강대 교수는 ‘가계동향 조사를 통해 본 소득격차 현황’이란 발표에서 1인 가구까지 포함해 올해 1분기 가계소득 수준을 5단계(분위)로 나눠 분석해보면 저소득 계층의 소득이 통계청 발표와 달리 증가세로 돌아섰다고 밝혔다. 통계청이 5월 23일 발표한 ‘2019년 1분기 가계동향 조사(소득 부문) 결과’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 하위 20%(1 분위) 가구의 월평균 경상소득은 2018년 동기 대비 1.7% 감소했다. 특히 근로소득은 14.5%나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하위 계층의 소득이 감소한 것을 두고, 일부 야당과 언론에서는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 여파이며 전반적으로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실패했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진욱 교수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통계청 가계동향 조사는 2인 이상 가구에 국한돼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혼자 사는 노인과 미취업 청년 등이 점점 늘고 있어 1인 가구를 빼놓고는 소득격차 현황과 저소득층의 실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전체 가구에서 1인 가구 비중은 2012년 20.3%에서 해마다 커져 올해는 28.9%에 이른다. 더욱이 하위 20%에서는 이 비율이 57.4%나 된다. 김진욱 교수는 이런 현실을 고려해 통계청과는 다른 기준과 방식으로 실태 파악에 나섰다. 1인 가구를 조사 대상에 넣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방식을 적용해 가구별 구성원 수에 맞춰 소득을 균등화하는 작업(가구 간 객관적 비교를 위한 소득 균등화)을 거쳐 분석했다.
▶구인회 서울대 교수(왼쪽에서 네 번째)의 사회로 진행 중인 종합토론│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40대 저소득 가구 근로소득 비중 감소 심각”
김 교수의 분석 결과에서는 올해 1분기 하위 20% 소득계층의 경상소득이 1년 전보다 2.6% 늘었다. 통계청 조사 결과와 마찬가지로 근로소득도 2.0% 줄어들기는 했지만 감소 폭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기초연금, 사회보험, 공공부조, 세금 환급금 등 공적 이전소득이 13.2% 증가했다. 1분위 계층의 경상소득 대비 공적 이전소득 비율은 올해 1분기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정부의 복지 지출 확대와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저소득 계층의 소득 기반 강화에 기여했다는 증거다. 소득분배 지표도 개선 추세로 돌아섰다. 소득 상위 20%의 균등화 경상소득을 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5분위 배율은 2017년 1분기 8.48배에서 2018년 9.74배로 치솟았다가 올해 1분기에는 9.57로 떨어졌다. 우리나라의 소득격차는 선진국과 비교할 경우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하지만 정부의 꾸준한 정책적 노력에 힘입어 추가적인 격차 확대에 제동을 거는 데는 성공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 평가다.
그러나 김진욱 교수는 “소득분배 지표가 올해 들어 약간 호전되기는 했지만 이는 노동시간 단축 등으로 최상위 소득계층의 근로소득이 줄어든 영향으로 보인다”며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소득격차가 구조적으로 악화할 우려가 있고, 특히 저소득 가구 중 40대와 임금근로자의 근로소득 비중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것은 그 원인을 떠나 심각한 문제”라고 경고했다. 소득격차 심화에 대한 정책적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김 교수는 “저소득층의 실질소득을 향상시킬 수 있는 소득 보장 및 노동시장 정책이 필요하다”며 근로장려세제(EITC)의 지급 횟수를 늘리고 금여액 인상을 제안했다. 또 “구조적으로 취업이 어려운 취약계층에는 사회적 경제 활성화로 일자리를 제공하고, 기초연금 인상과 기초생활보장제의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등으로 노인 빈곤에도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해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공적연금연구센터장도 “노후 소득보장의 핵심축인 국민연금의 성숙 단계는 아직 요원한데 급격한 인구 고령화에 따른 소득분배의 악화가 우려된다”며 전반적인 재분배 정책의 정비와 함께 기초생활보장제도 대상자 확대, 실업부조 도입 등 취약계층을 겨냥한 선별적 복지의 강화를 주문했다. 정 센터장은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지급 대상 확대, 근로장려금 및 자녀장려금 확대 등 지금까지 새 정부가 추진해온 주요 재분배 정책의 효과를 추정한 결과, 기초연금 확대와 근로·자녀장려금의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가계동향 조사를 통해 본 소득격차 현황’을 발표하는 김진욱 교수│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쟁점 2 최저임금 인상의 직·간접 영향은?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싼 공방에서 최저임금은 부정적 이미지로 얼룩졌다. 최저임금의 인상이 노동 빈곤 해소와 임금 불평등 완화에 기여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영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킨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시장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서는 누구도 엄밀하게 증명한 바가 없다. 토론회에서 ‘최저임금이 저소득층 임금, 고용, 소득 상승에 미친 영향’을 주제로 발표한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최저임금이 15.6%라는 비교적 큰 폭으로 상승한 2018년과 그 직전 연도의 여러 통계를 비교해보면 저소득층의 임금 증가가 뚜렷하게 관찰된다”고 강조했다. 우선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 조사’를 보면, 소득 하위 20%에서 40%까지 계층의 2018년 월평균 임금 상승률(11.2~16.3%)이 상위 50% 이상 계층의 상승률(1.2~9.4%)보다 훨씬 높았고, 고용노동부의 ‘지역별 고용 조사’ 자료에서도 하위 40%의 임금 상승률(10.8~22%)이 상위 50% 계층(1.7~10.2%)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시간당 임금 기준으로 하위 10%의 평균 임금 대비 상위 10%의 임금 배율을 산출해보면 2017년 4.13배에서 2018년 3.17배로 낮아졌다.
▶‘최저임금 인상이 임금, 고용, 소득에 미친 영향’을 발표하는 김유선 이사장│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최저임금 급격한 인상 부정적 효과 커져”
김유선 이사장은 “어쩔 수 없는 최저임금 미만율을 5.4%로 가정하고 2018년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추정해본 결과 직·간접적으로 약 552만 명의 노동자가 모두 7조 2000억 원 상당의 임금 향상 효과를 누린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는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8년 국민계정의 피용자 보수총액 864조 원 가운데 1%도 안 되는 규모”라며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소득주도 성장을 견인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때문에 취업자 증가세가 둔화했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도 이어졌다. 김 이사장은 “취업자 증감 추이를 보면 2013년 11월을 정점으로 해 장기적으로 둔화하는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주력 제조업 구조조정, 골목상권의 붕괴, 내수 침체 지속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데 이를 최저임금 탓만으로 돌리는 것은 악의적 왜곡이다”라고 주장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한 논란의 초점을 고용과의 관계로 가져가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오상봉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최저임금제도의 목적은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근로 빈곤의 완화에 둬야 한다”며 “다른 부수적인 긍정적 또는 부정적 효과도 존재하지만 제도 설계나 운용에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는 것은 최저임금의 취지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오 연구위원은 “다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고용에 미친 부정적 효과가 지금까지 뚜렷하지 않았으나, 앞으로 급격한 인상으로 인한 부정적 효과의 가능성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높아진 것으로 판단된다”며 속도 조절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도 “최저임금과 고용, 소득 불평등과 성장 등 간의 상관관계는 세계경제의 변화와 국민경제의 구조적 특성이라는 맥락이 상호 보완적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일반적으로 임금 인상은 경쟁력이 없는 기업의 퇴출을 촉진하고 상대적으로 취약한 소상공인의 구조조정을 유발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며 “그런데 정부가 추진해온 최저임금 정책을 보면 이런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 정책,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방향과 함께 고민되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박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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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