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혁신위원회는 학교스포츠 정상화를 위해 엘리트 육성시스템 전면 혁신안을 내놓았다. 고등학교 축구부 선수들의 경기 장면│한겨레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문경란 위원장)가 6월 초 학교스포츠 정상화를 위한 혁신안을 발표했을 때 체육인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압축됐다. 한쪽에서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한국 엘리트 스포츠를 정상 궤도로 돌릴 수 있게 됐다는 희망을 피력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현실을 무시한 이상적인 방안이라는 비판을 했다. 정말 정부의 정책 기조가 될 학교스포츠 혁신안은 문제일까?
이 질문에 완벽한 해답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문제가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임계점에 이르러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데 모든 이가 동의하고 있다. 또 반대로 체육의 문제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모든 방면에서 난마처럼 얽혀 있어 ‘한 방’에 실타래를 풀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정책이 현실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도 없는 일이다. 다만 방향성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졌다면, 어떻게 정책의 현실성을 높일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지혜로워 보인다. 정책의 적용 속도나 방법에서 유연성을 발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스포츠혁신위는 학생 선수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학기 중 주중 대회 참가를 전면 금지했다. 영어 수업을 받고 있는 중학교 야구 선수들│한겨레
국가 주도 폐해 대부분 학생 선수에게
스포츠혁신위의 학교스포츠 정상화 방안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국가 주도의 엘리트 스포츠 육성 정책으로 인해 발생하는 선수 인권침해나 폭력, 수업권 박탈, 운동 중도 탈락이나 은퇴 이후 대비책 미비 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일부 목소리에 그쳤던 개혁 주장은 올 초 국가대표 스타 선수의 성폭력 피해 고발 사건을 기점으로 사회적 이슈가 됐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스포츠혁신위가 엘리트 스포츠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착목한 곳은 학교다. 학창 시절 야구·축구 등 학교 운동부 경기를 응원한 추억을 많은 이들이 갖고 있겠지만, 운동부는 학생들의 자부심이나 학교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학교 운동부 육성의 이면에는 엘리트 선수를 양성하려는 국가의 기획이 자리 잡고 있었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국위 선양을 위해 단기간 가장 효과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스포츠였고, 스포츠 선수의 모집과 발굴 육성의 최적지는 학교였기 때문이다.
국가는 체육특기자 제도(1972년), 소년체전 창설(1972년), 병역 혜택(1973년), 연금 지원(1975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엘리트 스포츠에 특혜를 주었고, 한국은 생활체육의 불모지라는 현실과는 별개로 동·하계 올림픽을 비롯해 국제 무대에서 세계 톱10의 반열에 오르는 등 스포츠 강국(?)이 됐다.
하지만 이런 외형적 성장의 폐해는 고스란히 대다수 학생 운동부 선수들한테 갔다.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인 한 체육인은 “학교 시절을 회상하면 가장 억울했던 게 같은 반 동료들과의 단절이다. 우리는 선수끼리 하루 24시간 생활했다. 운동하는 기계였다. 엘리트 시스템은 선수가 기계가 되기를 원한다. 이제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엘리트 선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인생이다. 이제 우리가 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포츠혁신위가 학생 선수의 주중 대회 참가 금지, 훈련 시간·대회 수 축소, 체육특기자 내신성적 반영 확대, 소년체전의 학생 스포츠 축전 개편 등을 내세운 것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사실 수업이란 개념은 모호한 측면이 있다. 일부 학생들은 공교육보다 사설 학원을 더 선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교 교실은 단순히 선생과 학생의 지식 전수만 이뤄지는 공간이 아니다. 또래가 같이 어울리고 소통하고 문화를 공유하고 인간관계를 형성하면서 장차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민주 시민의 소양을 기르는 훈련의 장이기도 하다.
임성철 광문고 체육교사는 좀 더 현실적이다. 그는 “요즘 학교 수업은 과거의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활발한 토론과 발표, 대화 위주로 이뤄진다. 또 체육교과 중점 수업을 통해 정규수업 시간에도 전문 종목을 공부할 수 있다. 운동선수들이나 체대 지망생들이 다양하게 특화된 수업을 듣는 것은 입시에도 도움이 된다. 고교 운동선수가 프로 등 전문선수로 진출할 확률이 3~4%인 상황에서 수업은 당위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소년체전 초등부 야구 경기│한겨레
현장 목소리 듣고 유연하고 일관성 있게
물론 구체제 탈피는 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주중에 치러온 대회를 주말로 옮기는 것은 종목별로 특성과 시설 등 환경이 제각각이어서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 개인 종목은 주말로 옮겨 짧은 시간 내 대회를 마칠 수도 있지만, 단체 종목은 두 팀이 2~3시간 경기를 하기 때문에 주말에 대회를 하면 기간이 늘어나고 경기장 섭외도 어렵다.
또 선수들의 수업권을 강조하는 것이, 전문 선수로 진로를 정한 선수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나 다양성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경기 실적이나 경기력을 기준으로 한 특기자 대학입시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상태에서 수업권 강조가 자칫 학생 선수들에게 이중의 짐을 지운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새로운 변화가 불러올 불편함 탓에 새로운 정책이 갖는 방향의 정당성마저 외면할 수는 없다. 10년이나 20년 뒤에는 지금과는 다른 환경에서 아이들이 운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부터 나서야 한다. 체육계가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 집단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 종목별 연맹에서도 정책 변화에 맞게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나 스포츠혁신위 모두 단기간에 모든 것을 바꾸려는 조급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운동선수의 수업권 확보, 주말 리그제 전환, 전국대회 축소, 운동시간 단축, 합숙소 폐지, 특기자 입학제도 혁파 등의 문제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안이다.
엘리트 체육 문제의 긴급성, 수시로 바뀌는 정부 부처 담당 공무원들의 업무 불연속성, 백년하청의 체육계 타성의 한계가 뚜렷했기에 개혁안은 현장과의 긴밀한 토론과 협의, 이해를 통해 만들어지기보다는 위로부터 나왔다. 아쉬움이 있다 해도 지금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민간 전문가를 중심으로 구성된 스포츠혁신위원회에는 정부 체육 관련 주무 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해 교육부, 여성가족부, 기획재정부의 차관들이 참여하고 있다. 정부는 스포츠혁신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현장 체육인들의 불만을 귀담아듣고, 유연하면서도 일관성 있게 정책을 밀고 나가야 한다. 국민도 앞으로 20~30년간 국제대회 무대에서 한국 선수들의 경기력이 떨어져 메달을 따지 못해도 지속적인 성원 을 보내야 한다.
김창금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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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