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남북 합동응원단이 2018년 8월 20일 여자농구 남북 단일팀과 인도와의 경기를 함께 응원하고 있다.
정전협정 66년 만에 남북미 정상이 판문점 비무장지대(DMZ)에서 만났다. 실로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남북미가 총부리를 거두고 평화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남과 북은 분단 이후 무수한 ‘전쟁’을 치렀다. 바로 스포츠를 통해서다. 운동선수들은 크고 작은 경기를 앞두고 “긴장 풀고 즐기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스포츠 남북 대결 앞에서 이런 말은 사치에 불과했다. 1960~70년대 냉전시대는 물론이었고, 2000년대 이후 화해 국면에서도 남북 대결은 늘 피를 말렸다. 남과 북의 주된 ‘스포츠 전쟁터’는 올림픽 무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올림픽은 인류 평화의 제전이다. 근본정신은 스포츠를 통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다는 것이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북한에게 올림픽은 외견상 ‘대결’이지만 실제로는 신뢰를 쌓고 화합을 다지는 ‘평화의 무대’였다.
남과 북은 분단의 아픔 때문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가입부터 순탄치 않았다. 한국이 IOC의 정식 회원국이 된 것은 1896년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뒤 50년이 훌쩍 넘은 1947년 6월 20일이다. 대한올림픽위원회(KOC)가 1946년 조선올림픽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고, 이듬해 6월 2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제40차 IOC 총회에서 ‘KOREA’라는 국호의 국가올림픽위원회(NOC)로 정식 가입하게 됐다. IOC는 대한올림픽위원회를 남한만 관할하는 기구가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조직으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국제연합(UN)이나 국제적십자사연맹(IFRC) 등 주요 국제기구에서 사용하는 ‘Republic of Korea(ROK)’가 아니라 IOC에서는 ‘Korea(KOR)’를 사용하고 있다. 반면 당시 북한은 IOC 가입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2018년 2월 14일 강원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평창동계 올림픽 일본과 경기에서 석패한 뒤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북한 첫 금 먼저, 한국은 톱10 도약
한국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인 1948년 1월 30일,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린 5회 겨울올림픽에 5명(임원 2명·선수 3명)의 선수단이 처음 출전했다. 이어 1948년 7월 29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14회 여름올림픽에 선수단 67명(임원 17명·선수 50명)을 내보냈고, 역도 미들급의 김성집 선수와 복싱 플라이급의 한수안 선수가 대한민국 최초로 올림픽 메달(동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뤘다.
북한은 ‘1국가 1NOC’만을 인정하는 규정에 막혀 IOC에 가입하지 못했다. 하지만 IOC는 남과 북이 별개의 나라로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해 결국 1963년 10월,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제61차 총회에서 북한의 IOC 가입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1964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겨울올림픽에 처음 출전했다. 그런데 이 대회에서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000m에서 한필화가 은메달을 따내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겨울올림픽은 유럽과 북미의 전유물로 두 대륙 이외의 선수가 메달을 딴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북한은 올림픽 무대에 데뷔했지만 여전히 국호에 불만이 있었다. 북한은 이미 대한민국의 ‘KOREA’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NORTH KOREA’로 가입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국호를 문제 삼아 19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을 보이콧하기도 했다. IOC는 북한이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DPRK)’로 국호를 변경해달라는 것을 인정했다. 한국은 이 같은 IOC의 결정을 비난했다. 북한은 국호 문제로 1972년 뮌헨 대회에 이르러서야 여름올림픽에 뒤늦게 데뷔했다. 남한보다 무려 24년이나 늦었다. 이때부터 남북한은 올림픽에서 정면 승부를 벌였다.
금메달은 북한이 먼저 땄다. 한국이 1948년 런던 대회부터 1972년 뮌헨 대회까지 7차례나 올림픽에 출전하면서도 그토록 목말라했던 금메달을 북한은 첫 출전 만에 따낸 것이다. 북한 금메달의 주인공은 사격 소구경소총 복사의 이호준 선수였다. 북한은 이 대회에서 여자배구가 3-4위전에서 한국을 세트스코어 3-0(15-7/15-9/15-9)으로 꺾고 동메달을 따냈다. 남북한을 통틀어 구기종목 최초의 메달인 셈이다. 북한은 뮌헨올림픽에서 금 1개, 은 1개, 동 3개를 따내며 종합 22위에 올랐다. 반면 한국은 유도 오승립 선수의 은메달이 유일한 메달이었고, 종합순위도 34위에 머물렀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은 한국 스포츠사에 큰 획을 그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금메달을 땄고, 종합 19위(금 1개, 은 1개, 동 4개)에 오르며 남북한 통틀어 최초로 올림픽 20위 안에 드는 기록을 남겼다. 이 대회에서 북한은 금 1개, 은 1개로 뮌헨 올림픽(22위)보다 한 계단 뒷걸음치며 23위에 올랐다. 1980년대는 동서 냉전이 올림픽을 연거푸 반쪽 대회로 전락시켰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한국을 포함한 서방국가들이 불참했고,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은 북한을 포함한 동구권 국가들이 보이콧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8년 만에 동서가 모두 참가한 화합의 무대였지만 북한과 쿠바 등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북한은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서 여름올림픽 참가 이후 처음으로 금메달 사냥에 실패하며 종합 26위(은 3개, 동 2개)로 다시 뒷걸음질했다. 반면 한국은 1984년 LA올림픽에서 금 6개, 은 6개, 동 7개를 따내며 세계 톱10(종합순위 10위)에 들어가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전통적인 강세 종목인 레슬링과 유도, 복싱뿐 아니라 양궁의 서향순 선수가 양궁 사상 첫 금메달을 따냈고, 여자농구와 여자핸드볼이 은메달을 일궜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금 12개, 은 10개, 동 11개로 소련(금 55개), 동독(금 37개), 미국(금 36개)에 이어 당당히 세계 ‘빅4’(종합 4위)에 올랐다. 구기종목 사상 최초로 여자핸드볼이 금메달을 따냈고 양궁 3개, 유도와 레슬링, 복싱, 탁구가 각각 2개씩의 금메달을 보탰다.
▶2000년 9월 15일 시드니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 선수단이 사상 처음으로 ‘코리아’란 이름으로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입장해 뜨거운 박수를 받고 있다.│한겨레
각급 대회 단일팀은 통산 다섯 번째
남북한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을 통해 올림픽 무대에서 무려 16년 만에 조우했다. 그사이 현격하게 벌어진 남북한의 국력 차이만큼 스포츠에서도 기량 차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은 금 12개, 은 5개, 동 12개로 종합 7위를 차지했다. 안방에서 열린 서울올림픽의 우수한 성적이 우연이 아님을 보여주는 쾌거였다. 북한 역시 금 4개, 동 5개로 종합 16위에 올라 올림픽 출전 사상 최고 성적을 거두며 한국과 함께 한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은 남북한 화해 무드의 시작이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한이 개막식에서 공동 입장하며 감동의 물결을 이뤘다. 남북 동시 입장은 이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2003년 아오모리 겨울아시안게임과 대구 여름유니버시아드, 2004년 아테네올림픽, 2005년 마카오 동아시안게임, 2006년 토리노올림픽, 2007년 창춘아시안게임까지 이어졌다. 한동안 끊어졌던 남북한 개막식 공동 입장은 2018년 평창올림픽과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으로 다시 이어졌고, 남북한은 내년 도쿄올림픽에서도 공동 입장하기로 이미 합의했다.
공동 입장을 넘어 유도, 여자농구, 여자하키, 조정 등 4개 종목은 단일팀으로 출전하기로 했다. 올림픽에서 단일팀이 구성된다면 여름올림픽으로는 처음이고, 1991년 지바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같은 해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평창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농구 등 4개 종목에 이어 통산 다섯 번째다.
과거 남북 대결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의 승리 지상주의가 지배했다. 그러나 이제는 경기장에선 뜨거운 승부를 펼치지만 경기가 끝난 뒤엔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며 우정과 화합을 다진다. 휴전선에 포염 대신 평화의 꽃이 피어오르듯 남북한 스포츠 교류에도 웃음꽃이 피고 있다.
김동훈_ <한겨레>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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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