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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구들과 점심을 먹었다. 유난히 한 친구 얼굴이 어두웠다. “왜 그래? 얼굴이 엄청 안 좋아 보이네. 주말에 시어머니는 잘 내려가셨어?”
매년 두 차례 지방에 사는 시어머니가 서울에 올라와 둘째 며느리인 친구네 집에 며칠씩 머물다 내려가시고는 했다. 몇 해 전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시어머니가 적적함을 많이 느끼고 몸도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면서 유난히 살가운 친구 남편이 권했기 때문이다. 친구 남편은 지극히 효자였다. 시어머니가 올라오면 꼬박꼬박 휴가를 내고 하루 종일 어머니를 살뜰히 보살폈다. 덕분에 친구는 실제로 힘든 일은 별로 없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나가 구경시켜드리고 함께 산책하고 말동무가 되어드리는 남편 덕분에 식사를 챙기는 정도였다.
문제는 이번에 내려가면서 시어머니가 한 말이 친구를 내내 심란하게 했다. “아들을 보니 없던 입맛도 살아나고, 내가 기운이 나는 것 같다. 같이 살면 너무 좋을 것 같구나.” 친구는 이 이야기를 시어머니가 내려가신 뒤에도 계속 곱씹고 있었다.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너무 안 됐고 짠한 마음이 들지만 도저히 함께 살 자신이 없어. 나는 착한 며느리가 될 자신도 없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친구는 또 힘없이 말을 이어갔다. “재산은 다 첫째 아들에게 물려주고, 큰형님 내외는 어머니를 나 몰라라 하는데 둘째 아들만 의지하는 어머니에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야. 첫째 아들도 아닌데 병원비며 어머님 여행 등을 도맡는 남편한테도 불만이 많지만 이야기하기가 그래.”
함께 이야기를 듣던 친구들은 자신의 시어머니가 분양받았다는 실버타운 이야기도 들려주고, 한 집에 사는 일은 서로에게 힘들 거라 걱정한다. 바로 옆 동에 아파트를 얻어 가까이 사는 방법도 고민해준다. 모두 다 쉽지 않은 일이다. 실버타운이나 요양병원 비용도 상당한 부담이다. 우리나라도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고령 인구의 비중이 높아만 간다. 그러나 부모님을 부양하는 일은 개인의 부담이 크고 그 안에는 가족의 의무와 책임감,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전통적 가치와 개인의 삶을 우선시하는 현대적 가치관 등 여러 가치관과 이해관계가 부딪친다. 며느리와 시어머니라는 입장과 딸과 아들, 첫째 며느리와 둘째 며느리 등 위치에 따라서도 주변의 기대치 역시 달라진다.
시간은 흐르고 모두 다 나이를 먹는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혼자 척척 할 수 있던 것들이 점점 줄어든다. 몸도 달라질 것이고, 그러면서 쓸쓸함과 고독감도 커져간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누군가를 보살피고 책임지는 일은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 책임감을 알기에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다. 가족 간이라고 해도 예외일 수 없다. 친정 부모냐 시부모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하는 일에는 많은 이해와 시간,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자식들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부모님을 나 몰라라 하기도 쉽지 않다. 딜레마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를 받아드는 기분이다.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
신정희 서울시 서초구 신반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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