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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면 전화벨이 울린다. 새벽 4시에 일어나는 부지런한 언니 전화다. “네 바지 만들었어. 이거 너무 예뻐.” “찍어서 보내봐. 보나마나 예쁘겠지만.”
나보다 여섯 살 많은 언니는 나를 연구하고 또 연구한다. 지하철 안에서, 거리를 걷다가, 또는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서 편하고 세련된 치마를 찾아내고는 변형해서 만들어낸다. ‘어떻게 하면 우리 동생에게 편한 옷을 입힐까?’ 시장이나 큰 마트에 가면 무릎 아래로 적당히 내려오는 치마를 사기가 쉽지 않다. 미니스커트 아니면 긴 치마다. 언젠가 내가 그렇게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었나 보다. 그 뒤부터 부지런히 색색으로 치마를 만들어 갖다주거나 내가 가지러 가곤 한다. “맘에 안 들면 버려.” 화끈한 그 말에 이렇게 대꾸한다. “버리긴 왜? 오래도록 입어야지. 어떻게 만들어준 건데….”
30여 년 전 사고로 왼쪽 다리 대퇴부를 절단한 나를 위해 한동안은 치마를 만들기 시작했다. 1년 내내 치마를 입다 보니 바지 입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바지는 의족이 끼어서 더 그랬다. 겨울이 돌아오자 아랫도리가 몹시 춥다. “언니, 나 바지 한번 입어볼까 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언니가 답한다. “그래, 한번 만들어보자.” 몇 주 후에 처음으로 바지를 만들어 왔다. 약간 넓은 바지여서 입고 벗기가 편했다. 한번 만들기 시작하면 여러 개를 만들어준다.
언니는 아는 모든 사람, 아니 아주 소수의 사람에게 치마며 바지를 만들어준다. 이를테면 신발가게 사장, 사우나 여인, 실면도 사장, 앞집 101호 엄마, 옷가게 주인 등. 그뿐인가. 패션 앞치마를 만들어 돌린다. 혹 돈을 주려고 하면 다시는 안 보겠다며 돌아서려 한다. 그네들은 언니의 진의를 안다. 즐거움이란다. 그래, 즐거움이다. 그들이나 내가 언니가 만들어준 옷을 입고 다니는 걸 보면 언니 얼굴에 희색이 퍼진다. 그래서 자꾸 만들어주고 싶어진단다.
제삿날이 돌아오면 30명가량의 가족들이 모인다. 집에 돌아가기 전에 장롱 문을 연다. 그동안 만들어놓은 긴바지, 반바지, 긴치마, 짧은 치마, 앞치마를 꺼낸다. 식구대로 여조카, 남조카, 큰시누, 작은시누 할 것 없이 감동이 넘친다. 서로들 입어보느라 방마다 만원이다.
재봉틀 방에는 시댁과 친정 그리고 이웃의 허리와 기장 치수가 빼곡히 적혀 있다. 심지어는 “언니, 나한테 아주 잘해주는 친구가 있는데 바지 하나 만들어줄 수 있어?”라고 묻자 대뜸 “원하는 색깔하고 허리, 기장 치수 재서 문자 메시지로 보내. 대신 빨리 받을 생각은 말라고 해”라고 답한다. 그러다 보니 천이 생기면 모두 언니에게 갖다준다. 그러면 헌 옷을 다시 몸에 맞게 고쳐주곤 한다. 온전히 주는 사랑에 나는 언니를 무척 존경한다. 올해 언니 나이 70이다. “울 언니 사랑해.”
송세숙 인천 부평구 원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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