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6일 미국 테네시 내슈빌에서 열린 2019 NFL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애리조나 카디널스에 지명된 카일러 머리가 기뻐하고 있다.│연합
화려한 분홍색 줄무늬 양복을 차려입은 청년은 애리조나 카디널스의 빨간 모자를 쓰고 빨간 유니폼을 흔들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어릴 적부터 품어온 꿈이 실현됐다”며 감격해했다.
주인공은 4월 25일(현지 시각) 미국프로풋볼리그(NFL) 신인 드래프트에서 애리조나 카디널스에 전체 1순위로 지명된 카일러 머리(22)다. 이미 2018년 미국프로야구(MLB)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9순위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 지명된 머리는 MLB와 NFL에서 모두 1라운드 지명을 받은 최초의 선수라는 역사적인 이정표를 세웠다. 그는 한국 태생 외할머니를 둔 한국계로 알려져 국내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머리는 단신(177cm)인데도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야구와 풋볼을 병행한 운동 천재다. 대학풋볼 최고 영예인 하이즈먼 트로피를 받았고, 야구에서도 내·외야를 넘나들며 탁월한 운동 능력을 뽐냈다. 오클랜드는 지명 후 466만 달러의 계약금과 별도로 1400만 달러를 현찰로 주겠다며 머리의 환심을 사려 했지만, 이미 NFL 진출로 가닥을 잡은 그의 마음을 돌리진 못했다.
▶농구 선수 출신으로 2019한국배구연맹(KOVO) 여자부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제니퍼 햄슨│ 한국배구연맹
높이뛰기 도움 될까 배구하다 겸업
머리는 풋볼에만 전념하기로 했지만 풋볼과 야구를 섭렵한 선수도 있다. 1990년대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교타자 디온 샌더스는 야구 시즌이 끝나면 곧바로 풋볼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NFL 경기에 출전했다. 어떤 날은 애틀랜타 팰컨스의 풋볼 경기를 치르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홈구장으로 달려간 적도 있었다.
야구의 외야수와 미식축구의 쿼터백은 날아가는 공을 잡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샌더스는 빠른 발과 천부적인 감각으로 봄부터 가을까지는 야구 선수로, 겨울에는 풋볼 선수로 활약한 역대 68명 가운데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힌다.
스포츠계의 두 얼굴을 가진 ‘아수라 백작’은 또 있다. 5월 초 2019 한국배구연맹(KOVO) 여자부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제니퍼 햄슨(27·미국)은 2m의 큰 키에 농구 선수 출신이라는 이력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로스앤젤레스 스팍스, 인디애나 피버 등에서 센터로 활약했다. 2017~2018 시즌 독일 배구리그에서 뛴 그는 “대학 때 배구와 농구를 병행했다. 농구를 하면서도 배구 선수로 뛰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고 말했다.
7년 만에 국내 무대로 돌아오는 캐나다 출신 가빈 슈미트(33·한국전력·207cm)도 원래 농구를 했다. 배구는 2004년 고3 때 뒤늦게 시작했지만 캐나다 국가대표로 활약했고, 국내 리그에서는 삼성화재를 3번이나 정상에 올려놓았고 그때마다 자신은 MVP를 받았다.
2010년부터 세 시즌 동안 국내 여자프로배구 GS칼텍스와 IBK기업은행에서 뛴 데스티니 후커(32)는 높이뛰기 선수로 미국 대학 챔피언까지 지냈다. 그는 대학 시절 1~6월에는 높이뛰기 선수로, 7~12월에는 배구 선수로 활동했다. 데스티니는 “중학교 1학년 때 높이뛰기를 먼저 시작했고, 배구는 높이뛰기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같이 하게 됐다”고 했다. 그의 높이뛰기 최고 기록은 201cm로, 한국 신기록(193cm)보다 8cm나 높다. 스포츠 종목 간에는 이처럼 함수관계가 있다. 농구와 배구, 높이뛰기는 모두 점프가 중요한 종목이기에 햄슨과 가빈, 데스티니처럼 ‘양다리 걸치기’가 가능했다.
빙상스타 배기태 카레이서로 변신
세계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아시아인 첫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던 1980년대 빙상 스타 배기태(54)는 한때 카레이서로 변신해 화제를 모았다. 빙상과 카레이싱의 상관관계에 대해 배기태는 “카레이싱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코너워크인데 시야가 좁아져 속도를 줄이지 않을 수 없다. 빙상에서 코너를 돌 때도 시속 80~100㎞로 달리는데, 빙상에서 익힌 감각으로 코너링 때 브레이크를 늦게 밟을 수 있는 담력이 생기고 시야가 넓어져 기록 단축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나중에 여성 참의원으로 더욱 유명해진 하시모토 세이코(55)가 여자 사이클과 스케이트로 동·하계를 넘나들며 무려 7차례나 올림픽에 출전했다. 사이클 역시 스케이트나 카레이싱처럼 코너링 기술이 관건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과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여자 투포환 2연패를 달성하며 ‘아시아의 마녀’라는 별명으로 이름을 떨친 백옥자(68)는 은퇴 후 볼링에 심취해 국가대표를 위협할 정도로 실력을 쌓았다. 22년 동안이나 한국 신기록을 가지고 있던 ‘투포환 여왕’은 투포환을 움켜쥐고 투척 지점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눈매와 집중력을 볼링 핀으로 옮겼다.
한라급 몸무게로 백두급 선수들을 메다꽂으며 10년 가까이 모래판을 호령한 왕년의 씨름 스타 이만기(56) 역시 은퇴 후 배드민턴에 심취했다. 비록 생활체육 선수였지만 일본에 원정경기도 다닐 정도로 배드민턴 실력이 대단했다. 그는 샅바를 잡으면서 다진 팔근육과 팔목의 유연성을 배드민턴 라켓을 움켜쥐는 데 적용해 배드민턴 코트에서도 천하무적을 자랑했다.
스포츠 종목 중에 상관관계가 가장 큰 종목은 야구와 골프다. 국내 야구인 가운데는 백인천, 허구연, 김재박, 김성한, 선동열, 이종범 등 소문난 골프 실력파가 많다. 특히 강타자 출신인 허구연의 비거리는 최경주 프로와 맞먹는 270m이고 김성관, 최홍기, 인현배 등이 프로 골퍼로 직업을 바꾼 사례도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강타자 출신보다 교타자나 투수 출신이 오히려 골프를 잘 친다. 골프에서 타수를 줄이는 데는 멀리 날리는 드라이브보다 퍼팅이나 칩샷이 유리한데 투수 출신들은 투구할 때의 제구력이 퍼팅의 집중력과 통하고, 정교한 교타자 출신들이 칩샷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김동훈_ <한겨레>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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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