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현대미술관이 2009년에 개최한 <굿 디자인은 무엇인가? MoMA의 메시지> 전시. 20세기 중반 뉴욕 현대미술관은 굿 디자인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좋은 취향을 계몽했다.
▶뉴욕 현대미술관이 2019년에 개최한 <굿 디자인의 가치> 전시. 10년 뒤에 열린 이 전시에서는 ‘굿 디자인이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문제의식을 다루고 있다.
봉준호 감독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고 얼마 안 있어 국토교통부가 ‘넥스트 프리츠커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프리츠커는 건축계에서 권위 있는 상이다. 해마다 뛰어난 성취를 이룬 건축가를 한 명 선정해서 10만 달러의 상금과 메달을 수여한다. 1979년에 처음 시작돼 건축계 상으로는 역사가 그리 길진 않지만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의 건축가 필립 존슨이 최초 수상자였고,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으로 유명한 프랭크 게리, 퐁피두 미술관을 디자인한 렌초 피아노와 리처드 로저스, 삼성의 리움미술관 설계에 참여한 장 누벨과 렘 콜하스 등이 수상했다. 넥스트 프리츠커 프로젝트는 이 상을 수상할 한국 건축가를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사업 개요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를 꿈꾸는 건축인에게 해외 설계사무소 또는 연구기관에서 연수를 수행하기 위한 국비 지원 사업.” 간단히 말해 해외 유명 설계사무소에서 연수하고 오면 프리츠커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발상이다.
▶2018 iF 디자인 어워드 수상작. iF 어워드는 우수 디자인 인증 마크 같은 역할을 한다.
정부가 나선 수상 프로젝트
이 뉴스를 읽고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 기사에서 지적하기를 이런 식으로 어떻게 프리츠커상을 받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나는 근본적으로 프리츠커상이니 노벨상이니 하는 상을 왜 받지 못해 안달인지 지적하고 싶다. 상이란 무엇일까? 우선 디자인계의 상을 떠올려보자. 디자인계 대표적인 상으로 독일의 iF 디자인상과 레드돗 어워드, 미국의 IDEA가 있다. 이것은 한 사람이나 한 작품에 주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이 준다. 이런 상은 일종의 인증 마크다. 한국의 품질 보증 마크인 KS 마크와 비슷하다. iF 마크가 달리면 디자인이 우수하다는 걸 인증하는 것이다.
이 상을 받으려면 일정한 금액의 돈을 내고 출품해야 한다. 수상을 하면 도록에 실리는 비용을 또 지불한다. 상을 받았다고 상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돈을 더 낸다. 그러니까 이런 종류의 어워드는 비즈니스다. 적지 않은 돈을 내고 이 상을 받으려는 이유는 그것이 상품 판매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수요와 공급이 만나 디자인 어워드 비즈니스가 형성된다.
디자인 어워드의 기원은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이 시행한 굿 디자인(Good Design) 전시회일 것이다. 현대미술관의 굿 디자인 제도는 비즈니스가 아닌 계몽주의의 일환이었다. 굿 디자인 전시회는 미술관을 운영하는 엘리트 집단이 그들의 디자인관을 대중에게 전파하는 역할로 기획되었다. 모더니즘을 숭상한 그들은 유행에 집착하는 디자인, 껍데기만 번드르르한 화려한 디자인, 싸구려 재료를 비싼 것처럼 속이는 기만적인 디자인 등을 경멸했다. 순수한 기하학 형태를 가진 절제된 모던 디자인을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마다 전시회를 연 것이다. 뉴욕 현대미술관의 굿 디자인 제도는 그 뒤 여러 나라로 전파됐고, 한국디자인진흥원도 굿 디자인 마크를 시행하고 있다.
이처럼 우수 디자인을 선정하고 그것을 알리는 시스템은 사적 기업이 진행하는 비즈니스든, 정부기관이나 미술관이 운영하는 제도든 일종의 권력으로 작용한다. 다시 말해 엘리트 집단이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을 나누고 그것을 대중에게 은근히 강요하는 것이다. 형태와 질감, 색채로 표현되는 디자인은 품질처럼 분명하게 좋고 나쁨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비교적 객관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기 쉬운 기능성이라는 문제 역시 그리 간단치 않다. 따라서 굿 디자인은 어쩌면 그것을 선정하는 사람의 주관이 강력하게 작용한다고 할 수 있겠다. 취향이 개입되는 분야에서 객관적으로 상을 준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의 굿 디자인 마크
창작 활동의 덤인데 집착이 문제
상은 대체로 사람들을 가르치고 길들이려는 경향이 있다. 뉴욕 현대미술관이 제시한 굿 디자인 기준이 그렇다. 순수한 형태의 최소주의 디자인. 그것은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다. 즉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것이지, 절대적이고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권력은 상을 통해 그것이 절대적 기준인 것처럼 말한다. 상을 받으려고 하면 그 취향에 맞춰야 한다. 광고제에서 상을 받으려면 광고제 심사위원들이 좋아하는 광고 형식에 맞춰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디자인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작품은 뭔가 특별해야 한다. 하지만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디자인이 현실에서는 영 쓸모가 없는 경우가 많다.
▶뉴욕 현대미술관의 굿 디자인 로고
상품의 프로모션을 위해 우수 디자인 인증 마크를 받고 자신의 창의력을 시험하고자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것이 뭐가 나쁘겠는가? 하지만 프리츠커상이니 노벨상이니 하는 유명한 상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은 문제가 다르다. 물론 그런 상을 받는 것 역시 좋은 일이다. 수상이란 창작 활동을 열심히 한 것에 따라오는 덤 같은 것이다. 하지만 수상을 목표로 창작 활동을 한다거나 수상을 위해 정부가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건 다른 문제다. 상 자체를 욕망하는 것은 상을 절대화하고 그것이 서열화하는 문화 권력에 끼지 못하는 것을 결핍으로 여기는 태도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상은 사회에서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 이런 경향의 작품이 좋다고 대중을 설득하는 것이다. 그러니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이 뭐 그리 부끄러운 일인가?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했다고 한국 문학이 열등한 것도 아니고, 칸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고 갑자기 한국 영화가 풍요로워지는 것도 아니다. 상에 집착하는 것은 소수 권력이 평가하고 서열화하는, 생명력 없는 사회의 단면이다.
김신_ 홍익대 예술학과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하고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 대림미술관 부관장으로 일했다. 현재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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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