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하나 하나와 대화하며 진정성 위해 불완전한 수리”

2019.06.05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20년 전 청년의 얼굴로 온 그는 장년이 됐다. 뜨거운 20년의 세월을 지낸 오늘의 미륵사 탑을 여러분께 다시 돌려드린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4월 30일 전라북도 익산시 미륵사터에서 진행된 익산 미륵사지석탑 보수정비 준공식에서 말했다. 국내 문화재 보수·복원 사례 중 최장 기록을 세운 미륵사지석탑 곁에 늘 함께한 김현용(43)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를 언급한 것이다. 19년간 보수정비에 힘쓴 김 학예연구사는 이날 점심을 먹다 몰래 눈물을 흘렸다. 원광대학교 건축학과 4학년이던 2000년, 익산 미륵사지석탑 해체 모형 관련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고 지원한 게 계기였다. 그때만 해도 19년의 시간을 미륵사지석탑과 함께할지 알지 못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미륵사지와 함께한 19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준공식 당일 갑작스럽게 눈물이 터진 것이다. 백제 무왕(武王, AD 600~641) 때 창건된 익산 미륵사지석탑은 국보 제11호로,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사람은 시간과 함께 흙으로 돌아가지만, 문화재는 남는다. 역사의 한 자락으로 남게 될 그를 5월 17일 미륵사터에서 만났다.

ㅣ▶5월 17일 익산 미륵사지석탑 앞에서 만난 김현용 학예연구사│박유리 기자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이력, 무게감에…”
“(준공식을 한) 그날은 행사 때문에 정신이 없었어요. 점심시간에 도시락 먹고 직원들 다 나간 뒤 혼자 남았는데 서글프기도 하고 좋기도 하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하더라고요. 지난 시간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고요. 제가 수리한 이력은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거잖아요. 그 무게감이라는 것은… 지금도 조심스러운 마음입니다.”
일제강점기였던 1910년 익산 미륵사지석탑 사진 촬영과 실측 조사가 실시됐고, 1915년 조선총독부 주도로 붕괴된 석탑에 콘크리트를 땜질했다. 이후 구조안전진단 결과 콘크리트 노후화와 구조적 불안정이 우려돼 1999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해체 수리가 결정됐다. 본격적인 수리 작업에 앞서 2000년 석탑 보호를 위한 가설 덧집 설치, 2001년 해체 조사 착수, 2002~2008년 해체 조사, 2009~2010년 사리장엄구 발견, 2010년 해체 완료, 2011년 조립을 위한 계획설계, 2012년 실시설계, 2013년 공사 착수, 2014년 기초보강 조사, 2015~2017년 가공 및 조립, 2019년 가설 덧집 철거 공사를 마치면서 20년간의 보수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 현장은 모든 사람에게 상시 공개됐어요. 보통 문화재 수리 현장은 유물이 나올 수 있고 화재 위험도 있어서 폐쇄적으로 운영하는데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 하기에 1년 365일 공개된 거죠. 일반 국민이 지켜보기에 항상 긴장했고, 욕도 많이 먹었어요. ‘너희, 언제까지 이걸 할 거냐. 저 돌덩이에 국민의 세금을 낭비한다’는. 현장에서 뭘 던지는 분들도 있었어요. 도둑놈들이라고.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이 있잖아요. 그런데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일이거든요. 돌을 해체만 하면 끝이 아니라, 세척도 하고 실측도 하고 보존 상태마다 다른 작업이 병행됩니다.”

ㅣ▶1992년 복원된 동탑(오른쪽)과 20년간의 수리를 마치고 4월 모습을 드러낸 서탑

자나 깨나 머릿속엔 탑이 앉아 있어
백제시대 쌓인 돌들은 해체 과정에서 하나하나 번호가 매겨진다.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다 같은 돌일지 모르지만, 그는 모양만 봐도 익산 미륵사지석탑의 어디에 있던 돌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깊이 들여다봤다. 학예연구사가 되기 전인 연구원 시절 그는 실측 전담을 맡았다. 돌 하나하나에 이름표를 붙인다. 석탑의 몇 층에 있던 돌인지, 방위·높이·번호 등 각종 정보가 새겨진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인터뷰에서 돌과 대화한다고 했는데요. 어떤 부재(돌)는 엄청 애를 먹여요. 돌도 세월이 오래되면 만졌을 때 흙처럼 되거든요. 토양화되는 거죠. 다시 쓰기에 애매한 돌 옆에 앉아서 ‘어떻게 해드렸으면 좋겠어요?’ 묻기도 하고. 오죽 답답하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돌이) 저보다 나이가 한참 많으니 존댓말을 쓰는 거죠. 국가 무형문화재 석장님도 ‘나도 고민된다’고 그러셨어요. 겉으로 보기에 볼품없는 돌이지만 이 돌이 다시 쓰이면 국보 11호인데, 우리 선택으로 쓰이지 않게 되면 천대받을 거 아니냐고.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죠.”

19년간 보아온 탑이 때로 김 학예연구사의 꿈에도 나왔다. 먹고, 자고, 화장실에 갈 때도 그의 머릿속에는 1830여 t의 탑이 앉아 있다. 그는 “내 머리가 그래서 늘 무겁다. 딱 한 번만이라도 탑의 창건 원형이 꿈에 나오길 바란 적도 있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로 가서 카메라를 들고 찍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익산 미륵사지석탑은 9층 높이로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최초로 찍힌 탑의 형상은 6층 높이다. 2001년 석탑 해체 조사가 진행되면서 어디까지 수리 또는 복원할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여러 차례 논의 끝에 2011년 미륵사지석탑은 남아 있던 6층까지만 수리하기로 결정됐다. 7층 이상의 부재는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추론에 따른 복원을 지양하고 남아 있던 6층까지 보수해 ‘보수정비의 진정성’을 확보하기로 원칙을 세운 것이다. 석탑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훼손된 부재는 과학적 방법으로 보강해 재사용하고, 원래 기법과 재료는 최대한 보존 활용하기로 했다. 현대적 기술은 최소한으로 사용해 보완하기로 했다.

ㅣ▶익산 미륵사지석탑은 낮과 밤에 저마다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김현용

“수없이 반복하며 가조립, 원형탈모도”
“세계적으로 문화재 보존의 철학, 원칙 가운데 핵심이 진정성이에요. 우리나라에선 (이 말이) 어색하죠. 2005년 중반 이후 자리 잡은 개념인데, 추정에 의한 복원은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제도적, 철학적, 보편타당한 기준에서 봤을 때 지양해요. 기술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진정성을 위해 불완전한 형태로 수리를 하는 거죠. 그래서 문화재 복원이란 말을 쓰지 않아요. 복원이란 말은 ‘완성된, 완전한’이라는 뜻이 있잖아요. 오히려 이렇게 수리를 했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 계절에 따라 이 탑에선 다른 느낌이 들어요. 아침에 다르고 점심에 다르죠. 그리스나 이탈리아에서도 (진정성을 살리기 위해) 석조 문화재를 완전 복원하지 않아요. 수리를 하죠.”

미륵사지석탑은 부재 1627개를 짜 맞춰 새롭게 완성했다. 높이는 14.5m, 폭은 12.5m, 무게는 약 1830t이다. 석탑 보수에 투입된 연인원만 12만 명이 넘고 참여한 각계 전문가도 100여 명이나 된다.
아프고 다친 돌을 되살려 탑을 쌓는 일에 시간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1000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부재의 높이가 제각각 달라졌다. 기계를 사용해 부재를 똑같은 높이로 자르지 않았다. 어떻게 쌓아야 균형을 맞출까.
“쉽게 얹어놓은 것 같지만 굉장히 어려워요. 같은 층, 같은 켜의 돌도 다 높이가 다른데 작업 균형이 안 맞으면 부러져요. 깎아서 맞추기도 하는데 어떻게 오래된 돌을 깎겠어요? (오래된 부재가 아닌, 부재 사이에 들어가는) 신재를 가공해서 균형을 맞췄어요. ‘가조립’이라고 하는 공정을 거쳤는데 열 번 넘게 해체했다 말기를 반복했어요. 석장분들도 원형탈모 생겼다고 하시고.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이 처음이었던 거죠.”

ㅣ▶익산 미륵사지석탑은 낮과 밤에 저마다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김현용

“장인 한 분은 늘 마음 다잡고 정장 출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수리를 전담하기 전, 전북도청은 애초 2007년까지 수리를 완료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작업의 어려움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화재 수리는 계획대로 작업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조립하기 위해 설계를 해놓아도 결국 현장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한다. 설계 변경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사업 기간이 길어지면서 지역 언론이 의혹성 보도를 했고, 2007년 검찰 압수수색까지 받아야 했다. 결론은 무혐의. 2018년 7월 감사원의 조사를 받으면서 그는 “피가 마르는 심정이었다”고 회고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김 학예연구사와 석탑을 둘러보았다. 1992년 추정 복원된 동탑과 이번에 수리를 마친 서탑이 미륵산을 배경으로 양쪽에 나란히 자리한다. 연못 앞에 서 있으면 산과 석탑이 경이롭게 비친다. 불완전해서 아름답고, 불완전하기에 진실하다.

“같이 석탑을 수리하던 한 장인께선 흙먼지가 날리는 현장인데도 늘 정갈한 정장 차림으로 오셨어요. 그분 말씀이 아침마다 마음가짐을 정결하게 하고 현장에 오신다고 하더라고요. ‘아, 이런 마음으로 현장에 있어야 하는구나’를 느꼈죠.”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석탑의 모습도 다르다. 새벽에 동이 틀 때, 그리고 해가 질 때 탑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그는 말했다. 천 년이 넘는 낮과 밤을 보내온 돌들이 침묵 속에 말을 건넨다. 그도 돌들의 침묵을 들었을 것이다.

박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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