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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에 갈 때면 부모님께 인사드리기가 무섭게 옥상으로 올라간다. 계단마다 층층이 놓인 꽃나무 화분 구경하는 재미가 다할 무렵 육중한 철문이 나오는데, 그 문을 열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흙밭! 모두 합하면 대여섯 평 될까. 부모님의 텃밭은 옥상 여기저기에서 한껏 푸른 작물을 키워내고 있다. 믹스커피 한 잔을 홀짝거리며 아버지가 손수 만드신 평상에 앉아 푸른 하늘과 싱싱한 채소를 쳐다보면 이곳이 도시라는 생각을 깜박 잊기도 한다. 말수 없는 우리 가족이지만 그곳에서만큼은 저절로 대화가 샘솟는다. “엄마, 이거 언제 키우신 거예요?” “이번에 수세미가 많이 열려서 건강원에도 좀 팔았어.” “상추가 잘 자랐는데 먹을 사람이 없어 동네 할머니들 나눠드리니 그리 좋아하시네.” “약도 안 쳤는데 깻잎 잘 크는 거 봐라.” “와~ 부추가 너무 잘 컸네. 아버지, 저녁에 부추전 어때요?”
철 지난 화분들만 한구석을 메운, 그래서 더 썰렁했던 옥상이 부모님의 이른 하루를 기분 좋게 열어주는 도시형 텃밭으로 재탄생한 건 10여 년 전이다. 내가 첫아이를 막 낳았을 무렵, 엄마는 산후조리를 돕는다며 한 달 정도 맏딸 집에 계셨다. 밑반찬과 국을 넉넉히 준비해두고 아버지께 일일이 설명해가며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총각 땐 혼자 여러 해 자취를 하셨고, 결혼 후에도 수시로 우리 간식이며 별미 요리까지 만들어주셨던 아버지는 걱정 붙들어 매고 산후조리나 잘 돕고 오라셨단다. 예정했던 3주가 지나 4주 넘어갈 즈음 집으로 돌아간 엄마는 부지런히 집 안을 치우고 밀린 빨래 널러 옥상에 갔다가 깜짝 놀라셨다고 했다. 일명 ‘고무다라이’라고 하는 빨간색 초대형 그릇 대여섯 개 안에 작은 싹들이 오밀조밀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엄마가 안 계셨던 3주 동안 옥상에 텃밭을 꾸며놓은 것이었다. 이제 집에서 먹을 채소 정도는 충분히 키워낼 거라고 큰소리치셨다는 아버지, 시골 할머니 댁에서 흙을 공수해왔다는 아버지에게 엄마는 잔소리만 늘어놓으셨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과 저녁노을을 보며 천천히 텃밭 주변을 걸어본다. 그동안 뭘 더 심으셨나, 잘 자라고 있나 구경하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기도 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의 소중함을, 엄마가 아프고 나서 더욱 절실하게 깨달았다.
재작년 봄, 건강하시던 엄마가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전화를 받았다. 하혈과 복통이 심하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으며 눈앞이 캄캄했다. 대학병원에 예약을 하고 지루하게 반복되는 금식, 검사 그리고 수술을 받는 동안 몇 달이 훌쩍 지나갔다. 아무도 텃밭을 돌볼 수 없었다.
엄마가 아프시던 그해의 수확은 제로였다. 그렇지만 수술을 잘 마치고 난 그해 가을, 아버지는 맨숭맨숭한 흙 아래로 씨마늘을 심어두셨다. 겨울을 잘 보내고 얼었던 땅이 녹아 포근해지면 마늘 싹이 파릇파릇 올라온다며, 그때부터 다시 아버지의 텃밭 농사를 시작할 거라고 하셨다.
‘가시가 없으면 생선 맛이 덜하다’고 아버지는 늘 말씀하신다. 가시 같은 사람, 가시 같은 일투성이인 일상에서 가시를 가려내며 생선을 먹듯 가시를 잘 뽑아가며 사는 인생이 제맛이라고. 가시는 찔리면 상처가 되지만, 뽑으면 행복이 된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며 나는 옥상 텃밭에 앉아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무농약’이라는 이름으로 엄마의 식탁에 오르고 택배 상자에 꾸려 자식들에게도 보내는 우리 집 텃밭표 채소를 앞으로도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싶다.
권선미 경기 용인시 처인구 남곡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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