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청춘의 특징은 방황이다. 흔들림이다. 반항이고 저항이다. 기존의 관념이나 통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게 왜 필요한지, 과연 그게 맞는지 의심하고 질문하고, 자기 나름의 철학의 뼈대를 세우는 과정이다. 당연히 중심축에 지식이 있어야 한다. 지식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런데 정보가 흔해지면서 지식이란 꼭 대학을 다녀야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학위를 따야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나름의 지식의 진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지식이란 무엇일까? 이를 아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는 어원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지식은 무언가에 대해 아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정확히 무슨 뜻인가? 한 번 본 것이 아는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얘기를 들은 것이 아는 것인가? 도대체 안다는 것이 어떤 뜻일까? 내가 생각하는 아는 것의 정의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표현할 수 있으면 아는 것이고, 표현할 수 없으면 모르는 것이다.
지식의 지(知)는 ‘화살 시(矢)+입 구(口)’다. 자신이 아는 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고 나는 해석한다. 일 잘하는 사람들의 특성이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을 거침없이 줄줄 얘기한다는 점이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고, 그 일의 핵심은 뭐고, 앞으로 이런 식으로 진행될 것이고, 이런 부분을 도와주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고…. 얘기를 들으면 머리가 맑아진다. 그가 하는 일을 그림처럼 그릴 수 있다. 반면 일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 일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횡설수설하고, 뭔가 얘기를 하는데 논리적이지 않고, 뭔가 미심쩍다. 설명을 들어도 자꾸 궁금한 것이 생기고, 저게 진실일까 의심하게 되고, 무슨 말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설명을 들을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내가 생각하는 지(知)는 아는 것을 제대로 말로 설명하는 것이다.
말로 표현하고 글로 쓰기
둘째는 지식의 식(識)이다. 식은 ‘말씀 언(言)+진흙 시(?)’, 혹은 새길 시다. 말을 진흙판에 새긴다는 의미다. 글쓰기를 뜻한다. 배우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글쓰기다. “이 조직에서는 위로 올라갈수록 글을 잘 써야 합니다. 글을 쓰지 못하면 위로 올라갈 수 없어요. 중요한 건 절대 글쓰기를 남에게 시킬 수 없다는 겁니다. 윤리 규정에 어긋나지요. 글을 쓰면서 자신의 생각, 철학, 관점 등을 다듬고 이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조직 경영진의 얘기다. 안다는 것은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아는 것이 아니다.
글은 아무나 쓸 수 없다. 아는 게 있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 가능하다.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돼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 글을 쓰다 보면 개념이 점점 확실해진다. 강의를 하는 난 이 변화를 자주 느낀다. 관심 가진 분야를 처음에는 맛보기 삼아 설명을 한다. 처음엔 나도 긴가민가한데 자꾸 얘기를 하면서 개념이 뾰족해진다. 어느 순간 글을 쓸 수 있다. 개념이 확실하지 않아도 말은 할 수 있다. 그런데 개념이 불명확하면 글은 쓸 수 없다. 지식의 두 번째는 글쓰기다.
셋째, 견(見)이다. ‘볼 견’이다. 의견의 견이다. 지식의 결과물이 무엇일까? 공부를 하고 책을 많이 보는 것이 사는 데 어떤 도움을 줄까? 난 그게 견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견은 다른 사람의 의견이 아닌 나만의 의견이다. 난 면접을 통해 사람을 평가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데 거기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 “자기만의 의견이 있느냐?”의 여부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의견이 없다. 별생각 없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그래서는 발전할 수 없다. 자기 의견이 없다는 건 어떤 뜻일까?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이고, 별다른 의문 없이 세상을 산다는 것 아닐까?
그럼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아무 생각 없이 쫓아가게 될 것이다. 부화뇌동하고 곡학아세하고, 어디서 한 가지 배우면 그게 세상의 절대적 진리인 것처럼 추종하고, 다른 의견 가진 사람을 배척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의견은 그냥 생기지 않는다. 배움의 결과로 얻어진다. 엄청난 양의 지식이 있으면 그 결과가 바로 견이다. 식견(識見)이란 단어가 그걸 말해준다. 지식이 있어야 견해가 생긴다는 말이다. 지식이 없으면 의견이 생기지 않고, 지식이 없는 의견은 일방적 주장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 사회가 쉽게 냄비처럼 끓었다 식었다 반복하는 가장 큰 이유도 지식과 식견의 부족 때문이다.
독자적 관점으로 문제 풀기
마지막은 해(解)다. ‘풀 해’다. 문제를 푼다는 의미다. 우리는 왜 배울까? 힘든 공부를 해서 왜 대학까지 가는가? 대학을 나온 뒤에는 왜 계속 공부를 해야 할까? 내가 생각하는 배움의 가장 큰 성과는 문제 해결 능력의 향상이다. 공부를 하면 복잡한 문제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능력이 있고 뛰어나다는 것은 결국 문제 해결을 잘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다양한 종류의 문제에 직면한다. 문제를 해결하면서 살아야 한다. 지식이 늘면 다양한 종류의 도구를 갖게 된다. 많은 경우의 수를 알고 해법까지 알게 된다. 당황하지 않는다. 불안하지 않다. 반면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한두 가지 도구만을 갖게 된다. 당연히 불안하고 두렵다. 문제 같지 않은 문제에도 걸려 넘어지고, 말이 되지 않는 사기도 당하고, 쉽게 현혹된다. 사리 분별력이 약해진다.
조지 오웰이 쓴 <1984>라는 소설을 보면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다. 생각하면 안 된다. 일기를 쓰면 안 된다. 표현하면 안 된다. 무엇보다 언어의 제한이 많다. 왜 그랬을까? 표현하지 못하게 되면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 수 있다. 바보들은 다스리기 쉽다. 이것의 역이 바로 지혜로 가는 길이다. 내가 생각하는 지혜의 발전 프로세스는 지식견해(知識見解)의 네 글자다. 아는 것을 자꾸 말로 표현하고 글로 써보고, 그런 과정에서 나름의 의견이 생기고 마지막 해법이 다양해지는 것이다. 시작은 말과 글이다. 표현이다. 여러분 생각은 어떤가?
한근태_ 핀란드 헬싱키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리더십센터 소장을 역임하고 기업 경영자, 청년들을 상대로 리더십과 성공 노하우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세리CEO의 북리뷰 칼럼을 15년 넘게 연재했고 《DBR》 <머니투데이> 등에 칼럼을 쓰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누가 미래를 주도하는가> <한근태의 인생 참고서> <경영의 최전선을 가다> <청춘예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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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