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북성초등학교 학생들이 서울특별시 소방재난본부 보라매 안전체험관 소화기체험장에서 호스로 물을 쏘고 있다.
재난 사고는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그만큼 평소 재난 대처 방법을 숙지해둔다면 재난 때 신속하고 안전하게 대처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전국 곳곳에 자리한 재난 안전체험관에서는 화재 등 각종 재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안전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안전체험관을 직접 찾아 가상 재난을 경험하고 대처 요령을 익혀봤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현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폭격이라도 맞은 듯 굉음이 들리고 놀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출구를 찾아 헤맸다. 발끝에서 느껴지던 진동은 순식간에 온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의 강도로 바뀌었다. 중심을 잃고 넘어진 순간, 지상 5층 지하 4층 규모의 건물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대피하던 수많은 인파의 모습도 희뿌연 연기와 함께 시야에서 사라졌다.
5월 8일 서울특별시 소방재난본부 보라매 안전체험관의 4D 상영관. 특수안경 너머의 생생한 화면, 요동치는 의자, 눈앞을 가리는 연기, 머리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 등이 사고 당시의 긴박함을 조금이나마 전달하는 듯했다.
이곳은 2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1995년 6월 29일 목요일 오후 6시께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이다. 이 사고로 사망 502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이라는,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인적 피해가 발생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설계·시공·유지관리의 부실에 따른 예견된 인재였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풍속 30m/s의 바람을 맞으며 태풍체험을 하고 있다.
인터넷 사전예약 받고 무료
보라매 안전체험관에서는 가상 재난 체험에 앞서 재난영화를 통해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이어 인적 재난 체험인 화재·교통사고, 자연 재난 체험인 지진·태풍, 전문 체험인 응급처치 실습과 소방시설 실습 등의 다양한 재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체험 대상은 6세 이상(초등학생 및 장애인은 보호자 동반)으로 인터넷으로 사전예약을 하면 누구나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체험 운영시간은 오전 10시, 오후 13시, 15시(재난 체험·응급처치 실습), 오전 11시, 오후 14시, 16시(소방시설 실습)로 하루 6차례다. 이 밖에 소방역사박물관과 어린이 안전체험관의 자유관람 시설 등도 마련돼 있다.
이날 방문 시간대인 오후 15시 재난 체험 프로그램 신청자는 모두 15명. 평소 평균 30여 명의 체험 인원이 신청하지만 이날은 외국인 사전 단체예약 등이 있어 소수로 진행됐다. 그런데도 가족 단위부터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참가했다. 그 가운데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건 아빠, 엄마와 함께 참가한 6세 어린이였다. 아이는 이미 2주 전에도 친구들과 안전체험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안전체험관을 다녀온 뒤 아빠에게도 보여주고 싶다고 졸라서 오늘 시간을 내 온 가족이 참가했다”고 말했다. 참가한 소감을 묻자 아이 아버지는 “평소 해볼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돼 좋았고, 가족이 함께 안전교육을 받을 수 있어 더욱 뜻깊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건장한 체격의 고등학생 무리도 눈에 띄었다. 전북 익산 원광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라는 5명의 남학생들은 전공이 소방학인데 수학여행 중 진로학습을 하러 안전체험관을 찾았다고 했다. 학생들은 “안전교육이라 딱딱한 수업을 생각하고 왔는데 직접 다양한 재난 체험을 할 수 있어 너무 재밌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한다는 여대생 2명도 “전공 필수 과제로 안전체험관을 오게 되었는데 막상 체험해보니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1분가량의 재난영화 관람이 끝나고 재난체험관으로 이동하기 위해 모였다. 재난 체험 프로그램은 김영도·나영화 두 소방장의 시범과 안내에 따라 진행되었다. 이들을 포함해 보라매 안전체험관에는 14명의 현직 소방관이 근무하고 있다. 안전체험관에서는 5년 이상의 숙련된 소방관이 직접 재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런 만큼 전문적인 안전교육 이론은 물론 재난 현장에서의 생생한 경험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재난 현장에서의 질서는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실제 재난 현장에서도 사고가 가장 잦은 곳이 출입문 인근인데요, 그런 만큼 재난 체험을 끝내고 다음 체험장으로 이동할 때에도 차례를 지켜 한 줄로 가겠습니다.” 화재 체험장 이동에 앞서 주의 사항과 화재 대피에 필요한 요령 3가지를 익혔다. 나영화 소방장의 설명을 종합하면 화재 발견 시에는 즉시 주위에 화재 발신기 또는 큰 소리를 통해 불이 난 사실을 알리고, 비상유도등을 따라 대피한 뒤 화재 신고를 해야 한다.
▶지진체험장에서 식탁 아래로 몸을 피하고 있다.
비상유도등,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여기서 인상에 남았던 건 바로 ‘비상유도등’에 대한 설명이었다. 출입문 앞에 선 나 소방장은 머리 위쪽에 있는 비상유도등을 가리키며 물었다. “사고로 건물에서 대피할 때 왼쪽으로 대피해야 할까요? 오른쪽으로 대피해야 할까요?” 헷갈리는 것도 잠시, 나 소방장의 손끝이 향한 비상유도등 안 ‘녹색 인간’은 왼쪽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었다. 자신감이 느껴지는 대답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왼쪽입니다!” 나 소방장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자 다시 “오른쪽으로 가야 합니다!”라는 답도 나왔다.
그러자 나 소방장은 “비상유도등은 방향 표시가 아니다”라며 “유도등을 따라 대피할 때는 반드시 다음 유도등의 위치를 보고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유도등은 출구까지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나 소방장의 설명을 듣고 보니 다음 유도등이 어렵지 않게 시야에 들어왔다.
나 소방장의 설명을 곱씹으며 본격적인 재난 체험을 위해 노래방 화재체험장으로 이동했다. 노래방에 도착해 다 같이 동요 ‘곰 세 마리’를 합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그때, 갑자기 불이 나 정전상황이 연출되면서 주변이 암흑으로 변했다. 앞서 배운 대로 즉각 발신기와 큰 소리로 불이 난 것을 주변에 알리고 비상유도등의 방향을 따라 한 줄로 섰다. 선두에 선 사람이 유도등의 방향과 계단 등 장애물을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내용은 다시 뒤를 따르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전달됐다. 모두 앞서 배운 대로 왼손은 벽을 짚고 오른손은 코와 입을 막고 최대한 낮은 자세를 유지한 채 출구를 향해 빠르게 대피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과 긴박한 상황에서도 모두 무사히 화재 현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화재 현장을 빠져나온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즐겁게 시간을 보낸 노래방이 건물 2층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완강기(고층 건물에서 불이 났을 때 몸에 밧줄을 매고 천천히 땅으로 내려올 수 있게 만든 비상용 기구) 사용법에 대한 교육이 이어졌다. 나 소방장은 “사람은 머리 쪽이 무겁기 때문에 시선이 아래로 향하면 배부터 떨어져 장기를 다칠 수 있다”며 “완강기 벨트는 반드시 겨드랑이에 걸고 발부터 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진체험장 건물 붕괴상황에서 탈출체험을 하고 있다.
25kg 이하 어린이 가방 메고 혼자 타게
또한 “완강기의 사용 권장 몸무게는 25~100kg 사이”라며 “몸무게가 적게 나가는 어린이라면 어른이 안고 타는 것을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질식의 위험이 있어 대단히 위험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나 소방장은 “이런 경우에는 어린이가 무거운 가방 등을 메게 해 탑승 무게를 맞춰 반드시 1명씩 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완강기의 밧줄 길이는 건물 1층당 3m(3층 건물은 9m의 밧줄)로 건물 층수에 맞는 완강기 설치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화재 현장을 완전히 탈출한 뒤 소화기 사용법도 익힐 수 있었다. 화재는 1~2분이면 방 전체에 불이 번질 만큼 확산 속도가 빠르므로 초기 진압이 매우 중요하다. 이때 불의 아래쪽부터 빗자루로 쓸 듯이 차례로 덮어나간다는 생각으로 불을 끄는 것이 요령이다. 야외 화재의 경우, 바람을 등지고 호스의 노즐을 불쪽으로 향하게 해 불길이 자신에게 오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화재체험관 프로그램의 마지막은 지하철 화재 대피 요령이었다. 나 소방장은 “지하철 화재 시 먼저 벽에 설치된 무전기로 기관사에게 화재 소식을 알리는 것이 중요한데, 이때 지하철 내부에 표기된 차량번호를 함께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열차 밖으로 탈출할 때는 출입문 옆 비상 개폐장치의 커버를 열고, 비상 핸들을 화살표 방향으로 돌리고 출입문을 개방하면 된다. 지하철 외부에도 불이 났을 경우 화재 발생 장소의 반대 방향으로 대피하는 것이 좋고, 통로에 연기가 많아 대피가 불가능하면 선로 쪽으로 대피해야 한다.
이때 열차가 선로에 진입할 수 있으니 직원의 안내를 받거나 잘 확인한 뒤 대피해야 한다. 대피할 때는 지하철 구호용품 보관함에 있는 화재 대피용 마스크를 착용한다. 나 소방장은 “마스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젖은 손수건이나 옷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자세를 낮춰 비상유도등을 따라 출구로 나오면 된다”고 말했다.
안전체험관에서는 지진에 대비한 여러 시뮬레이션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환태평양지진대와 조금 떨어져 있어 그동안 지진의 안전지대로 알려져왔다. 그러나 지진의 원인이 되는 판 내부의 활동이 매우 불규칙해 예측할 수 없으므로 우리나라도 안전 지역이라고 할 수 없다. 특히 최근 잇따라 한반도 동쪽에서 비교적 큰 규모의 지진이 일어나면서 국민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김영도 소방장은 “지진 규모가 1 증가할 때마다 지진 에너지는 약 30배 이상 커진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규모 3.1 지진의 위력은 규모 2.1의 위력보다 30배 이상 강력하고, 규모 1.1 지진보다는 1000배 정도 강력한 것이다.
1시간 30분 동안 5가지 재난 겪어
김 소방장의 설명이 끝나고 규모 7.0의 강진 체험을 앞두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흘렀다. 최연소 참가자인 6세 어린이도 앞선 씩씩한 모습과 달리 겁먹은 듯 엄마 품에 안겼다. 긴장된 분위기에 김 소방장은 “재난 발생 시 차분한 대처가 가장 중요하다”며 “지진이 나면 가장 먼저 재빨리 책상이나 식탁 아래로 들어간 뒤, 방석이나 가방 등 푹신한 것으로 머리를 감싸는 게 안전하다”고 말했다.
김 소방장의 안내에 따라 3개 팀으로 나눠 한 팀씩 지진 체험장으로 들어갔다. 마음의 준비를 마친 뒤였는데도 막상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흔들림이 느껴지자 교육받은 대로 쉽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외부 지진 체험에서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실제 상황이라면 손쓸 틈도 없겠다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이어진 태풍 체험에서는 풍속 30m/s의 바람과 400mm의 비바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에 밀려 앞으로 나가기가 힘들었고, 급기야 대피요령 안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모든 재난 체험을 끝내고 한자리에 모였다. 1시간 30분 동안 5가지의 재난 체험을 겪은지라 몸은 만신창이가 된 기분이었다.
김 소방장은 참가자들을 향해 “체화라는 말이 있는데 ‘이론 등이 몸에 배어 자기 것이 된다’는 뜻”이라며 “재난 체험을 한 번에 끝내지 않고 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즉 평소 몸이 기억할 수 있을 만큼 재난에 완벽히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었다. 김 소방장은 그러면서 “안전체험관은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므로 산책하듯 자주 들렀으면 좋겠다”라는 바람도 밝혔다.
글 강민진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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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