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텍 노사 조인식이 열린 4월 23일 서울 강서구 콜텍 본사 앞에서 42일간 단식한 임재춘 조합원(가운데)이 축하인사를 받고 있다.│한겨레
문재인정부가 출범 2주년을 맞았다. 성과와 한계를 냉정히 평가해 향후 3년을 새롭게 준비해야 할 때다. 세 차례에 걸쳐 문재인정부 2년의 주요 정책성과 우수 사례를 짚어본다. 첫 회로 장기 분규 사업장들의 합의 소식을 전한다.
100여 명 해고 이후 4464일 최장기 분쟁 마침표
최장기 노사분규 사업장이었던 콜텍의 노사 갈등이 해결되었다. 노사 갈등의 종지부를 찍는 데 4464일, 햇수로는 13년이 걸렸다. 4월 23일 콜텍 노사는 서울 강서구 한국가스공사 서울지역본부에서 조인식을 열고 합의서에 최종 서명했다. 이 자리에는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과 이인근 콜텍 지회장, 박영호 콜텍 사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합의에 따라 13년간 거리에서 복직 투쟁을 벌여온 이인근 지회장과 임재춘 조합원, 김경봉 조합원은 5월 2일부터 30일까지 약 한 달 동안 복직한 뒤 퇴사하는 ‘명예복직’을 하게 됐다. 콜텍이 국내 공장을 정리한 점을 고려한 조치다.
노사는 회사가 국내 공장을 재가동할 경우 복직 대상자 중 희망자를 우선 채용키로 합의했다. 복직자 처우는 부속 합의서에 따르기로 했다. 직접 투쟁에 참여하지 않은 콜텍지회 소속 노동자 22명도 해고 기간에 대한 보상을 받기로 했다. 무엇보다 합의서 첫 번째 항목에 2007년 정리해고 된 노동자들의 힘들었던 시간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명시했다.
국내 최장기 노사분쟁인 콜텍 사태는 2007년 시작됐다. 2007년 회사가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직원 100여 명을 정리해고 한 뒤 한국 공장을 폐쇄하고, 인도네시아와 중국 등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비롯되었다. 노동자들은 반발했다. 같은 해 12월 노조 대의원 이동호 씨가 분신을 시도했다. 2008년에는 노조가 30일간 한강변 송전탑에서 고공농성을, 2009~2010년엔 독일과 미국 등지로 해외 원정투쟁까지 벌였다. 이후에도 서울 강서구 등촌동 콜텍 본사를 시작으로 여의도, 광화문 등을 거치며 단식투쟁, 고공농성 등을 이어왔다. 그사이 2009년 정리해고 무효소송 항소심에서 승소 판결까지 받아냈지만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이던 2012년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혀 패소했다. 13년을 이어오던 콜텍 복직투쟁은 2018년 12월 노사 간 협상이 재개하면서 합의의 물꼬를 텄다. 1월 15일부터는 노사가 19일까지 5일 연속으로 교섭을 벌인 끝에 합의안을 도출했다. 콜텍 교섭 합의 조인식 당일 이인근 금속노조 콜텍지회장의 소회는 뜨겁게 울린다. “마음 놓고 노동하고 그 노동을 통해 자신의 삶과 꿈을 이뤄가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파인텍 노조 관계자들이 2014년 6월 경북 구미산단 스타케미칼 45m 굴뚝 위(왼쪽 사진)와 2018년 2월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모습│한겨레
426일 세계 최장기 굴뚝농성 극적으로 반전
2019년 1월 11일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426일 동안 고공농성 중이던 두 노동자가 마침내 땅을 밟았다. 세계 최장기 굴뚝농성을 이어가며 극한 대치로 치닫던 파인텍 노사 교섭이 1년 2개월 만에 극적으로 타결된 것이다.
노사는 전날부터 이어진 밤샘 교섭 끝에 손을 맞잡았다. 앞서 5차례 교섭에서 모두 빈손으로 돌아섰던 양측이다. 1월 3일에는 13시간에 걸친 교섭이 결렬돼 협상이 원점으로 돌아가고, 회사가 기자회견을 자청해 “노조가 들어오면 회사가 없어질 수 있다”고 발언하면서 대치가 심화하기도 했다.
차광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장과 김세권 파인텍 대표이사 내정자 등은 서울 양천구 사회적경제 지원센터에서 1월 10일 오전 11시부터 다음 날인 11일 오전 7시까지 20시간 넘게 마라톤협상을 벌였다. 1월 11일은 파인텍 노동자 박준호 씨와 홍기탁 씨가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의 75m 높이 굴뚝에 스스로를 가둔 지 426일째, 곡기를 끊은 지도 6일째였다. 굴뚝 위 농성으로는 최장기 기록이다. 차광호 지회장은 굴뚝 아래에서 33일째 단식 중이었다.
파인텍 노사는 11일 공장 재가동과 조합원 5명의 업무 복귀를 골자로 하는 협약서에 사인했다.
박준호, 홍기탁 씨의 굴뚝농성은 차광호 지회장의 굴뚝농성에 이은 두 번째다. 스타플렉스는 2010년 스타케미칼(한국합섬)을 인수했다. 그러나 회사는 공장을 돌린 지 얼마 되지 않아 2013년 초 실적 부진으로 폐업한다며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차 지회장은 이에 항의하며 2014년부터 2015년까지 408일간 경북 구미 공장 굴뚝에서 농성을 벌였다. 차 지회장의 농성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자 스타플렉스는 자회사를 세워 노동자를 고용하기로 했다. 파인텍은 스타플렉스 자회사 스타케미칼로부터 권고사직을 받은 뒤 노동자들이 반발하자 스타플렉스가 새로 세운 법인이다. 당시 회사와 노조는 새 법인을 세워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노사는 1월 10일부터 시작된 6차 교섭에서 20시간 넘는 밤샘 협의 끝에 김세권 대표가 경영과 고용을 책임지고 노조는 3년 고용 보장을 수용하면서 극적 타결에 성공했다. 합의안에 따라 박준호, 홍기탁 씨를 비롯해 5명의 파인텍 노동자는 파인텍 공장으로 복귀하게 된다. 김 대표는 스타플렉스 대표이사 자격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파인텍 대표이사를 맡기로 했다.
또한 파인텍은 이들 5명의 고용을 최소 3년간 보장하며, 임금은 2019년 최저임금(시급)+1000원으로 정해졌다. 또한 6월 말까지 6개월간 유급휴가로 임금 100% 지급도 약속했다. 이로써 2014년부터 이어온 830여 일간의 고공농성 등 장기 투쟁이 빚어졌던 파인텍 노사 갈등이 해결되었다. 다시는 굴뚝에 올라가는 일이 없기를 부디, 빈다.
▶2018년 12월31일, 이날 복직하는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전 지부장 김정우씨(맨 앞)가 먼저 복직한 조합원들과 주먹을 맞대어 인사하고 있다.│한겨레
2018년 마지막 날 71명 해고 10년 만에 출근
2018년 12월 31일은 노동자들에게 특별한 하루였다.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이날 평택 공장으로 복귀했다. 2009년 5월 정리해고된 지 10년 만이다. 이날 평택 공장으로 출근한 해고자는 71명. 2018년 9월 노사정 합의안에 따라 전체 해고자 119명 중 60%가 복직했다.
2018년 9월 14일 쌍용차와 쌍용차 노동조합,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4자는 서울 광화문 경제사회노동위에서 해고자 전원 복직에 합의했다. 합의서에 따라 나머지 해직 노동자 48명은 2019년 상반기 중에 복직한다.
쌍용차 사태는 2009년 4월 전체 임직원의 36%인 2646명이 정리해고되자 노조원들이 반발해 5월 21일 옥쇄 파업에 돌입하면서 촉발됐다. 77일간 이어진 파업 과정에서 한상균 당시 쌍용차지부장 등 64명이 구속됐고, 1700여 명이 명예퇴직 등으로 회사를 떠났다. 조합원 970여 명은 옥쇄 파업을 끝까지 버텼지만, 무급휴직(454명)이나 명예퇴직을 택해야 했고, 165명은 끝까지 선택하지 않아 결국 해고자 신세가 됐다. 거리로 나온 노동자들은 생업을 위해 일용직을 전전했다. 이 과정에서 30명의 해직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병으로 사망했다. 또 수많은 노동자들이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정신적 트라우마를 앓았다.
쌍용차 측은 2013년 무급휴직자 454명을 전원 복직시킨 이후 2015년 노·노·사 3자 합의에 따라 2016년 40명, 2017년 62명, 2018년 26명 등 세 차례에 걸쳐 희망퇴직자와 해고자 등을 단계적으로 복직시켰지만 119명이 회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지난 10년 해고자들은 대한문 분향소가 두 차례 설치와 철수를 반복하는 사이에 철탑 고공농성, 굴뚝농성, 선거운동을 하며 쉼 없이 정리해고의 부당함과 국가 폭력의 진실을 알려왔다.
10년 가까이 이어져온 쌍용차 사태 해결은 2018년 7월 급물살을 탔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 방문에서 아난드 마힌드라 마힌드라앤마힌드라 회장에게 “쌍용차 해고자 복직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언급하면서다. 마힌드라앤마힌드라는 쌍용차의 최대주주다. 이로써 ‘해고는 살인’임을 보여준 쌍용차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2018년 9월 문성현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중재에 나서면서 노사 합의까지 이어지게 됐다.
그러나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남았다. 양승태 사법농단 의혹 진실 규명, 노조와해 시나리오를 토대로 이명박 정부가 직접 쌍용자동차 해고를 승인했다는 의혹, 국가손배소 철회 등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모두 함께 웃을 그날까지 연대는 계속되어야 한다.
▶김승하 전 KTX 지부장(앞줄 오른쪽 첫째)과 동료들이 2018년 11월1일 경기 의왕 코레일인재개발원 연수관 앞에서 장기투쟁 뒤 복직해 첫 출근을 앞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한겨레
4대 종단 중재로 12년 투쟁 끝에 ‘복직 탑승’
햇수로 13년째 투쟁을 이어온 KTX 해고 여승무원들의 정규직 복직이 성사됐다. 전국철도노동조합과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2018년 7월 21일 오전 10시 해고 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노사 합의서 3개 항과 부속 합의서 7개 항에 합의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코레일은 정리해고로 인해 해고 승무원들이 겪은 고통에 유감을 표명하고, 정리해고된 승무원 중 코레일 자회사에 취업한 경력이 있는 승무원을 제외하고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을 제기한 승무원들을 대상으로 경력직 특별채용을 시행하기로 했다.
채용 시기는 2019년 상반기까지 세 차례에 걸쳐 채용하고, 다만 철도공사의 인력 수급상 불가피할 경우 2019년은 2회로 나누어 하반기까지 채용을 완료하기로 했다.
해고 승무원들이 코레일을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 대한 재심 절차가 진행될 경우 코레일은 해고 승무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협조하기로 했다. 또한 코레일은 정리해고와 사법농단으로 유명을 달리한 승무원에 대해 애도를 표하고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KTX 해고 승무원 복직 교섭은 ‘KTX 해고 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에 참가하고 있는 4대 종단의 중재로 성사됐다. 교섭은 2018년 7월 9일 첫 번째 교섭을 시작으로 5차례 진행됐으며, 16일과 20일엔 밤샘 교섭을 벌여 마침내 21일 새벽 잠정 합의에 도달했다. KTX 열차 승무지부는 21일 오후 2시 서울역 서부광장에서 교섭 보고대회와 두 달 동안 진행해온 천막농성 해단식을 가졌다. 전국철도노동조합 측은 “이번 교섭을 통해 KTX 해고 승무원들이 철도공사 직접고용 정규직 복직은 성사됐으나, KTX 열차승무원으로의 복직은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고 밝혔다.
코레일은 2004년 경부고속철도를 개통하면서 차내 여승무원 350명을 채용했다. 이들은 ‘2년 내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고 코레일 자회사인 홍익회(현 코레일유통) 소속으로 근무에 들어갔다. 하지만 2년 후 정규직이 아닌 계약 만료로 위촉을 해지했다.
이에 승무원들은 2006년 3월 1일부터 철도공사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코레일을 상대로 파업을 진행해왔다. 코레일은 자회사로 이적을 거부한 승무원 280명을 업무 복귀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2006년 5월 21일자로 정리해고했다.
2008년 해고 승무원 34명은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2심에서 승소했지만 2015년 대법원은 “코레일과 KTX 승무원 사이 직접 근로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코레일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다 문재인정부 들어 복직의 신호탄이 쏘아 올려졌다. 2018년 5월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 거래’ 의혹이 일면서 극적인 반전을 맞았다. 2018년 7월 해고 승무원 180명이 회사 쪽과 정규직으로 복직하는 데 합의했다. 이로써 여러 화제와 안타까움을 남겼던 KTX 여승무원 해고 문제가 12년 만에 일단락됐다. KTX 해고 승무원들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찾아들었다.
심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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