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경험과 젊은 시도 티격태격 오순도순

2019.05.16 공감 최신호 보기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옥천이란 지명에서 언제 들어도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정지용의 시 ‘향수’가 떠오른다. 경부고속도로 옥천IC를 빠져나와 차로 10여 분 달려 도착한 ‘옥천목장’. 누런 황소 수백 마리가 평온하게 봄날의 오후를 즐기고 있다. 우사가 여러 개 있는데도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충청북도 옥천군 동이면 세산리에는 소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40년 전 소 한 마리로 시작해 지금은 1만 평 규모의 목장에서 300여 마리를 키우는 김남용(63) 씨와 도시에서 직장 생활하다 7년 전 아빠를 돕기 위해 귀촌한 아들 종민(33) 씨 부자다.

ㅣ▶40년간 옥천목장을 일궈온 김남용 씨

조경 유학 준비 중에 집요하게 설득
아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물려주고 싶어 하는 아빠는 행복하다. “한우는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다. 잘 키우면 소 한 마리당 월 100~150달러 안팎의 수익을 낼 수 있다.” 한우에 대한 긍지가 높은 김남용 씨는 아들이 목장을 물려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ㅣ▶7년 전 귀촌한 아들 종민 씨는 든든한 동업자다.

그 무렵 종민 씨는 다니던 조경 회사를 그만두고 영국으로 가드닝 유학을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세계적인 가드너로 성장하고 싶어서였다. 그때부터 김남용 씨의 집요한 공작(?)이 시작됐다. 자신의 일을 이어받으라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거 하며 살라고 늘 이야기하시던 아빠였다. 그런 아빠가 유학 대신 목장 일을 제안했을 땐 솔직히 배신감이 들었다.” 아들이 원하는 일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빠는 다시 설득했다. “소 키우면서 조경을 하면 좋겠다. 조경 일이란 게 10~20년은 걸리잖니.”
아빠라고 살갑게 부르는 아들과 그런 아들을 웃으며 기다려주는 아빠. 이들 부자 사이에 뭔가 긴장감이 흐르려다가도 얼굴이 마주치면 웃고 넘어간다. 그렇게 서로를 이해한 걸까. “그때가 목장 운영에 아들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했다. 제 친구들에게는 언질을 주었더라. 아빠만의 빅 피처가 이미 있었던 거였다.” 결국 종민 씨는 아빠가 보여준 비전을 택했다. 2013년 봄부터 종민 씨는 목장 일을 시작했다.

ㅣ▶7년 전 귀촌한 아들 종민 씨는 든든한 동업자다.

젊은 종민 씨가 일을 시작하면서 목장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아빠는 40년간 목장 일을 했다고 자랑하는데 기록이 하나도 없었다.” 아들이 말을 꺼내자 아빠는 냉큼 받았다. “종민이 오고부터 모든 것을 기록하고 전산화하고 있다. 아들이 와서 목장 업무가 체계화되었다. 혼자라면 30년을 더 해도 예전 그대로였을 텐데.”

ㅣ▶대 이어 삶의 터전을 일궈 가고 있는 부자의 모습에 행복이 넘친다.

전산화해 기록하고 CCTV 설치
편리함과 효율성을 위한 종민 씨의 노력은 더 있다. 곳곳에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을 설치해 목장 관리의 효율성을 높였다. 사료배합기도 도입했다. “건강한 소를 만들자는 생각에 한 달 이상 숙성한 발효사료를 만들어 먹인다.” 베테랑 아빠 눈에는 일마다 한 박자 느린 초보 아들이겠지만 종민 씨의 목장 철학은 확실하다. ‘건강한 소, 행복한 소.’ 사료 통인 피드빈에 크게 붙여놓은 글귀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종민 씨는 마음의 상처로 남은 흔적을 사무실 벽면에 액자로 걸어두었다. “목장 일을 시작하던 해에 소 한 마리가 배가 부풀어 오르더니 죽었다. 배를 갈라보니 차광망 조각이 나왔다. 저 액자 속 물건이 그때 꺼낸 차광망 조각이다.”

ㅣ▶아빠의 첫 번째 소. 고등학교 졸업직후에 샀다. 왼쪽 두 번째가 아빠 김남용 씨.

이런 아들의 노력을 아빠도 인정하고 있다. “꿩 사냥이 취미인데, 처음 아들에게 목장을 맡겼을 때는 와봐야 하나 망설이곤 했다. 재작년부터는 맘 편히 겨울을 즐기고 있다. 굉장히 듬직하다.”

ㅣ▶건강한 소 행복한 소 안달린 소’ 이 서체는 녹색당 신지예 선거 포스터 작업으로 유명한 아트디렉터 박철희 씨 솜씨다.

“죽여봐야 살릴 수도 있어, 지켜봐”
소를 키우는 일 외에도 종민 씨의 손길은 목장 곳곳에 닿아 있다. 우사 뒤쪽으로 사무실 겸 종민 씨와 직원이 생활하는 숙소 건물이 있다. 너른 앞마당과 나지막한 동산도 갖춰 있다. 종민씨는 집이자 일터인 목장을 가꾸기 시작했다. 조경학과 출신답게 목장 곳곳에 다양한 꽃과 나무를 심어 키우고 있다. 그뿐 아니다. 앞마당에는 미니 풀장에 바비큐장까지, 마치 캠핑장에 온 듯하다. 동산에 오르면 수선화가 펼쳐지고, 앉아서 석양을 바라볼 수 있는 벤치도 만들어놓았다. “이곳은 마을 사람들은 물론 멀리서 찾아오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도 열려 있는 공간이다. 누구나 와서 편하게 구경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 공간 가꾸기는 종민 씨에게 삶의 활력이다. “나만큼 하고 싶은 걸 하는 친구들이 많지 않다. 축복받은 삶을 살고 있다.” 

ㅣ▶사무실 겸 숙소 벽면에 걸려 있는 액자. 이 차광망조각을 먹고 소가 죽었다.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김종민

겉궁합은 ‘찰떡’인데 속궁합도 과연 그럴까. 아들은 “가족은 가족이고 일은 일이다. 아빠와 난 동업자 관계다. 아빠가 알고 있는 건 빨리 알려주길 원하는데 그냥 냅둔다. 그게 답답하다. 빨리빨리 피드백 주면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절약됐을 텐데 말이다”라고 속내를 드러냈다. 아빠는 인공포유(젖먹이 새끼를 어미로부터 격리하고 대용유를 먹여 기르는 일)를 처음으로 시도한 때를 떠올렸다. 아들 종민 씨가 목장에 처음 들어왔을 때다. “몇십 마리 죽어 나갔다. 본인이 죽여봐야 살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송아지가 태어나면 정상적으로 잘 살린다.”

ㅣ▶2013년 봄에 목장 일 시작하면서 아빠와 함께

살아온 세월만큼 성격도, 삶을 대하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는 아빠와 아들. 아빠는 “일곱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늘 혼자 결정하고 그 책임도 스스로 지며 살아왔다. 당연히 시행착오도 많았다. 부모로서 아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하고 싶었다. 아들은 이상적이다. 이상과 현실에서 헤쳐 나가는 부분이 크다고 생각한다. 형과 아우처럼, 때론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고성도 지르고 짜증도 내며 산다. 이 또한 행복이라 생각하고 다져나간다”며 속마음을 표현했다.

ㅣ▶옥천목장 곳곳에는 다양한 꽃과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모든 사람 와서 놀 수 있는 목장으로”
요즘은 목장을 찾는 아빠 김남용 씨의 발걸음이 크게 줄었다. 그만큼 종민 씨를 동업자로서 믿고 맡긴다는 뜻일 터다. 그런데도 아빠가 오는 소리에 종민 씨는 몸부터 반응한다. “가끔 오시는데도 잘못된 걸 한눈에 알아차린다. 아빠 차 소리에 개들이 짖는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허리부터 펴진다.” 화초 같은 아들이 바위처럼 단단해지길 아빠는 기다린다. “소는 같은 무게여도 등급이 다르다. 등급에 따라 가격이 배는 차이 난다. 내가 가진 노하우보다 아들의 치밀함과 침착성으로 개량화하면 더욱 업그레이드된 목장을 만들 수 있다. 사양 관리는 아주 잘되어 있다. 개량만 되면 좀 더 경쟁력 있는 목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ㅣ▶사료배합 중인 종민 씨

종민 씨가 그리는 목장에서의 삶은 뭘까. “나만의 목장보다는 모든 사람이 와서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종민 씨는 마을 청년들과 ‘옥뮤다’라는 이름의 모임을 만들었다. ‘옥뮤다’와 함께 올가을에 가수 이랑을 초대해 유료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무대는 퇴비 저장고에 꾸밀 생각이다. 옆에서 듣던 아빠가 지나가는 말로 보탠다. “소들이 놀랄 수 있으니 미리 스피커를 통해 소들을 소리에 단련시켜라.”

ㅣ▶앞마당에 설치되어 있는 미니 풀장

중학교 때 미국 서부극 <로하이드>를 보며 목장을 꿈꾼 아빠와 ‘호미’를 들고 흙을 일구는 아들의 동거는 오늘도 티격태격이다. 예전 코미디 프로그램 속 유행어가 떠오른다. “소는 누가 키울 거야? 소는?”

ㅣ▶아들 종민 씨가 오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목장의 전산화와 개량화다. 소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는 기본이고, 우사 곳곳에 CCTV를 달아 목장 관리에 최신 기술을 도입했다.│김종민

글 심은하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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