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공예를 사랑하는 방법 느릿느릿 ‘시간 여행’

2019.05.20 공감 최신호 보기


l▶사직동 운경고택의 툇마루. 장응복 디자이너의 텍스타일 공예와 하지훈 교수의 현대화된 가구가 고택과 잘 조화를 이룬다.

불과 2년 전이다. 이 거리는 청소년 출입금지 거리였다. 음침한 실내조명과 찌든 술·담배 냄새, 퇴폐의 온상. 일명 ‘방석집’의 연속이었다. 거리를 따라 흐르는 방학천도 퀴퀴했다. 지난 20여 년간 퇴폐 술집 30여 곳이 모여 있던 유흥가. 서울 도봉구 도봉로 143길 18번지 일대 300m의 방학천 주변 도로는 대낮에도 이웃 주민들이 피해 갈 정도였다.
5월 11일 토요일 오전, 이 도로의 한가운데 섰다. 깔끔하다. 방학천 주변에는 봄날을 만끽하는 갖가지 꽃이 요란스럽게 피어 있다. 큼직한 학이 유유히 날아다닌다. 평화롭다.

카페가 손님을 기다린다. 햇살이 너무 좋아 길거리에 앉아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기다렸다. 가격이 착하다. 2000원.
“안으로 들어오세요. 햇살이 너무 강해 얼굴에 주근깨 생겨요.”
친절하다. 카페 내부에는 가죽 공예품이 수줍게 진열돼 있다. 지갑, 팔찌, 열쇠고리, 심지어 골프공 주머니까지 다양한 제품이 손님을 기다린다. “카페인가요? 공방인가요?” “애초 공방이었어요. 그런데 이 거리에 카페가 없어서 카페를 겸하고 있어요.”
이 카페는 방석집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각종 공예 전문점이 입주할 때 1호로 자리 잡은 집. 공방 ‘쓰임’의 이정희(48) 대표는 “문 열고 6개월은 거의 손님이 없었어요. 지금은 손님 걱정은 안 해요”라며 환히 웃는다.
이 거리는 별칭이 있다. ‘방예리’. ‘방학천 문화예술거리’를 줄인 말이다. 도봉구에서 방석집을 임차해 리모델링했다. 2017년 6월부터 2018년 1월까지 3차에 걸쳐 입주 작가 16명을 모집해 칠보공예, 목공예, 캐릭터 디자인, 판화 디자인, 반려동물 가구 등 15곳의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l▶운경고택의 마루에 놓인 세련된 소반이 정원과 현대화된 건물을 배경으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쓰임·쓸모연구소·상상이상 등 특이
5월 17일부터 26일까지 10일간은 전국적으로 열리는 공예주간 기간. 공예의 즐거움을 나누고자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마련한 공예와 관련된 다양한 행사가 전국적으로 펼쳐진다.
서울에서 맛볼 수 있는 공예의 진수를 미리 엿보려고 방예리를 찾았다. 이 씨는 “놀라워요. 봐요, 저 좁은 방학천에 학과 청둥오리, 원앙새가 날아다녀요. 새들도 아름다움을 알아보나 봐요.”
깔끔한 맛의 커피를 입에 머금고 옆 공방을 기웃거린다. 호기심이 잔뜩 발동한다. ‘쓸모연구소’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반려동물의 가구를 제작한다. 애완동물의 집을 목재로 지어 판다. 눈길을 끄는 것은 반려동물의 밥상. 반려동물의 밥그릇은 그냥 바닥에 두면 된다는 상식이 깨진다. “반려동물의 목 높이에 맞춰 밥그릇을 놓아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목뼈에 이상이 안 생깁니다.” 듣고 보니 그렇다.
 
l▶북촌에서 흑백사진을 고집하는 ‘물나무사진관’의 전시관. 한지에 인화하고 옻칠을 해 반영구적인 사진을 만든다.
다양한 높이의 반려동물 밥상이 진열돼 있다. 단순하다. 일정 높이의 밥상에 밥그릇을 고정할 공간을 만든 것. 예쁘게 색칠한 반려동물 집도 있다. “제 사진은 찍지 마세요. 인터뷰도 거절할게요. 아직 본격적으로 주문을 받을 수 없어요. 지금 주문받은 것 만들기도 바빠요.” 이 공방의 이우주 공동대표가 목재를 다듬으며 이야기한다. 보기에도 바빠 보인다.
근처에 본격적인 목공예 공방이 있다. 좁은 실내 공간에 빼곡하게 목공 도구와 나무 재료, 완성된 목공예품이 자리 잡고 있다. 빈틈이 없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좁은 목공예 공방일 겁니다.” 5평 남짓하니 좁긴 좁다. 이 ‘상상이상’ 공방의 주인 나석영(40) 씨가 수줍은 표정으로 마주한다.
건축 일을 하다가 목공예를 배우고 이 공방을 연 지 1년이 됐다고 한다. 주로 하드 우드(딱딱한 나무)를 소재로 실내 목재 소품을 만든다. 전동 톱, 자동 대패, 목선반 등 목재 가구를 만드는 데 필요한 공구는 모두 있다. “문을 열고 한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정말 고생했어요. 이제는 공방 운영할 정도의 매출은 있어요. 주로 인터넷 주문이 많아요.” 원목으로 만든 꽃병 접시와 촛대, 접시 그릇 등 단단해 보이는 나무 소품이 주인의 매서운 손맛을 웅변한다. “자기 집 꾸미기에 관심이 높아지며 목공예를 가르쳐달라고 오는 이들이 늘었어요.”

l▶방학천의 공방들은 하천을 두고 마주하고 있는 고물상의 지붕벽에 자신들의 공방 외벽을 그려 놓았다.

다시 골목을 걷는다. 길거리에 전시해놓은 가죽 공예품이 정갈하다. “기계보다 정교하게 한 땀 한 땀 손바느질로 고급 가죽제품을 만들어드립니다.” 마침 가죽 손팔찌를 사러 온 부부가 진열된 제품에 큰 관심을 보인다. 공방 안에서 작업하던 공방 ‘호즈’의 박용호 대표가 얼른 나와서 친절하게 제품에 대해 설명한다. “시간이 흐르면 가죽 팔찌의 색이 짙어지면서 더욱 품위가 생깁니다.” 안고 있던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가죽 팔찌를 손목에 차보던 아내가 마침내 결정을 했다. 박 대표는 아내의 손목에 맞춰 팔찌 길이를 조절한다. 남편이 말을 건넨다. “사장님, 자동차 키 가죽 케이스 좀 추천해주세요.”
전시된 가죽제품에는 유리 빨대를 휴대할 수 있는 가죽 케이스도 있다.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줄이기 위한 환경운동의 하나다. 경화 처리한 나만의 유리 빨대를 넣어 다닐 수 있는 가죽 케이스다. 이름도 새겨준다고 한다. “옆집 유리공방과 컬래버레이션해서 판매하는 제품입니다.”

l▶방예리의 가죽공방인 ‘호즈’의 박용호 대표(왼쪽)가 손님들에게 자신이 만든 가죽 팔찌를 설명하고 있다.

체험 프로그램 진행하고 전시·판매
서울에는 ‘방예리’처럼 유흥 주점을 공방으로 만든 곳이 한 곳 더 있다. 바로 강동구 성안로 108의 ‘엔젤공방거리’다.
강동구는 2016년부터 성안로 일대의 술집을 정비해 아이디어와 기술, 열정을 가진 청년들에게 창업 공간을 마련해주고 점포 리모델링 비용, 임대보증금, 첫해 월세 등을 지원하는 엔젤공방 사업을 추진했다. 현재 도예, 캔들, 금속공예 등 15개 공방이 운영 중이다.
공방 ‘시와저’는 독특하게 젓가락과 숟가락만을 취급한다. 진열장의 젓가락이 눈길을 끈다. 화려한 색에 크기도 다양하다. 유기로 만든 숟가락과 젓가락에는 칠보공예가 함께하면서 수저의 품격을 높였다. “우리가 흔히 쓰는 ‘수저’라는 단어는 한자 시(匙·숟가락 시)와 저(箸·젓가락 저)의 예스러운 말입니다. 특히 젓가락은 동아시아 문화의 상징이자, 정신문화의 원형이기도 합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숟가락과 젓가락이 짝을 이룬 우리의 식문화와 밥상머리 교육은 소중한 역사이자 문화입니다.”

l▶운경고택 응접실에 전시된 장응복 디자이너의 헝겁으로 만든 거북이 인형장식품

이 공방 유수혜 대표는 대학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하고 일본에 유학하다가 젓가락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남편도 모 대학 금속공예과 교수. 엔젤공방거리의 4호로 문을 열었다.
유 대표는 “목재 젓가락은 인체에 해로운 화학 도료로 코팅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젓가락에 천연 옻을 사용하면 항균과 살균, 혈액순환 등에도 도움이 돼서 선물용으로도 많이 나간다”고 말한다. 숟가락과 젓가락에 이름을 새기기도 한다. 고급스럽다.
이 거리의 끝에는 유명 대형 연예기획사가 자리 잡으면서 유동 인구가 많아졌다. 유 대표는 “이 거리에 술집이 가득 자리 잡았을 때는 대낮에도 주민들이 뒷골목 길로 다녀야 할 만큼 기피의 거리였다”고 말한다.
맞은편에 실내 벽이 유난히 화려한 공방이 눈에 띈다. 최근에 문을 연 공방 ‘블라블라아트’다. 프랑스 출신 작가로 국제 예술 비엔날레에서 다양한 일러스트 작품을 전시한 남편 드롤 씨와 설치 비디오 작가인 아내 조경화 씨가 아이와 놀고 있다. 티셔츠 등에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인쇄하는 등 어린이들의 창작 활동을 도와주고 싶단다.

l▶방학천 문화예술거리의 카페겸 가죽공방인 ‘쓰임’의 내부

이 거리에서는 공예주간 동안 각 공방에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5월 25일(토)과 26일(일)에는 엔젤거리 중간에 있는 강동구 온도도시 협동조합 전시장에서 작품 전시와 판매가 이뤄진다.
이제 서울의 전통 양반 집단 거주 지역이었던 북촌 한옥마을로 발길을 옮겨보자.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한옥 밀집 지역으로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의미로 북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풍수지리적으로 배산임수의 좋은 지역으로 조선시대 사대부와 권문세가, 왕족이 모여 살던 곳이다.
조선 왕실에 고급 공예품을 공급하던 경공업이 밀집된 지역이다. 지금도 천연 염색, 매듭, 단청, 한지, 목공예 등 전통공예 분야의 기술과 기능을 보유한 장인들의 공방이 곳곳에 자리한다. 북촌 한옥마을 한복판에 서면 몇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조선시대로 훌쩍 시간 여행을 떠난 느낌이 든다.

l강동구 엔젤공방거리의 수저와 젓가락 전문 공예점인 ‘시와저’의 제품 진열장

한지 인화하고 옻칠한 장인들 사진도
매듭 기능 전승자 심영미 작가의 ‘동림 매듭공방’에는 다양한 노리개가 손님을 기다린다. 흔히 일을 마무리할 때 ‘매듭을 짓는다’고 말한다. 매듭은 가장 마지막에 달리는 장신구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손으로 매듭을 지어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더 깊숙이 골목에 들어가니 ‘금박연’이 나온다. 얇은 금을 옷감에 붙여 갖가지 문양을 찍어내는 금박은 왕실 의복에 사용됐다. 문양마다 장수와 부귀, 행운을 기원하는데, 국가무형문화재 금박장 4대 장인인 김덕환 옹의 작품과 그의 아들이자 5대 장인인 김기호와 아내 박수영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북촌에서는 사진도 공예가 된다. 정통 아날로그 흑백사진을 고집하는 ‘물나무사진관’의 김현식(49) 대표는 “화질보다 중요한 건 사진의 촉감과 기억”이라고 한다.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사진에 담긴 현재를 떠올리기 위해서는 시간의 손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전통 한지에 인화를 하고 옻칠로 마감한다. 반영구적인 사진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북촌 공방의 장인들을 사진에 담아왔다. 이번 공예주간 동안 북촌 각 공방의 앞 골목길에서는 그가 찍은 장인의 흑백 모습을 볼 수 있다.

l▶엔젤공방거리의 ‘블라블라아트’의 조경화–드롤 부부가 자신들이 그린 화려한 살내 벽지 앞에서 딸과 포즈를 잡았다.

이제 옆 동네인 사직동으로 발길을 옮겨본다. 고택에서도 공예를 즐길 수 있다. 사직공원 옆에 자리한 운경고택은 국회의장을 지낸 운경 이재형(1914~1992) 선생이 살던 집. 조선 14대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이 살던 도정궁 터에 세워진 한옥으로, 인왕산 자락에 자리 잡은 전통 서울식 한옥이다. 여기에서는 텍스타일 디자이너 장응복 대표(모노콜렉션)와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 교수(계원예술대)가 고택에 어울리는 공예 작품을 전시했다. 전시 제목은 <차경(借景), 운경고택을 즐기다>. 주변의 자연경관을 소유하지 않고 잠시 빌려 즐긴다는 선비의 여유로움이 풍기는 제목이다. 고택의 전통과 현대 공예의 세련됨이 서로 부딪치지 않고 잘 어울린다.
도자기 제작의 현장을 보고 싶으면 필동으로 가자. 필동작업실(서울 중구 필동로8길 16)에서는 배세진, 윤상혁, 이혜미, 문혜진, 지경주 작가가 평소 작업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생활 식기에서 예술 자기까지 다양한 도자기 제작 현장을 바로 옆에서 보며 구입도 할 수 있다.

글·사진 이길우 기자

전국적으로 펼쳐지는 공예주간 가볼 만한 곳 공예주간, 이곳에 가면 ‘작품의 향기’ 흠뻑
<5.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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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서울 284
2019 공예주간의 서울 헤드쿼터인 문화역서울 284는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무대이자 교통과 교류의 관문이었던 구 서울역사의 원형을 복원해 2011년 개관한 복합문화공간이다. 르네상스 기법, 스테인드글라스, 붉은 벽돌의 과거 건축 양식과 현대적인 모습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과거와 현재의 다채로운 면모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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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청춘발산마을
6·25전쟁 피란민이 모여들었던 광주의 대표적인 달동네가 청춘이 발산하는 마을로 변신했다. 도심 공동화 현상과 방직공장의 쇠퇴로 빈집과 어르신들만 남았던 동네가 어떻게 청춘이 넘치는 거리로 변했는지 직접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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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세라피아 세계도자센터
경기도 이천시는 한국 도예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사고하는 손’을 주제로 20여 년간 한국도자재단이 수집한 소장품을 공개한다. 광주 경기도자박물관, 여주세계생활도자관, 분원백자자료관도 함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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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천 문화예술거리
유흥가 밀집 지역이던 방학천 주변이 문화예술거리로 탈바꿈했다. 근처에 둘리뮤지엄, 전형필 가옥, 창포원 등도 가족과 함께 나들이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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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한국공예관
과천관, 서울관, 덕수궁관에 이어 2018년 말 네 번째로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는 국내 최초의 개방 수장고를 보유하고 있다. 1999년부터 전통 공예와 현대 공예를 아우르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열리는 생활공예 도시 청주다.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공예품을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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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도자문화관
충남 공주 계룡산에는 조선시대부터 분청사기 제작기법 중 지역적 특색이 강한 철화 분청사기가 생산됐다. 소박하고 담백하며 활력이 넘치는 우리 민족의 미의식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계룡산 도예촌에서 철화 분청사기의 진수를 맛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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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과 전주시장인공방
전주 한옥마을은 일제강점기 일본 상인에 대항에 조성한 한옥촌으로 한식, 한복, 한지 등 한민족 문화의 참맛이 살아 있다. 공예주간에 전주 지역 공예의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전주 공예유람’이 전주 한옥마을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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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로 골목 마켓
충정로 높은 빌딩 사이의 좁은 골목길에서 열리는 골목 마켓. 가죽, 목공, 도자기 페인팅, 유리공예 등 개인 공방을 운영하는 동네 작가들이 참여한다.

이길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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