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환 주도 천도교 앞장 ‘어린이도 사람이다’

2019.05.20 공감 최신호 보기


l▶천도교 중앙대교당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장유유서’에 따라 천시의 대상이던 어린이의 인권이 주목을 받았다. 어린이 인권은 어린이운동을 통해 계몽되고 실현되었다. 어린이운동을 이끈 대표적인 단체는 천도교소년회였다. 천도교소년회를 만든 사람이 바로 방정환이다.
어린이에게도 인간으로서 권리, 즉 인권이 있다는 게 천도교 어린이운동의 출발점이었다. 천도교 지도자 이돈화는 수직적 상하관계가 지배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어린이가 약자로서 천대받고 있다며 어린이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모와 자식 간, 선생과 학생 간 수직적 관계의 일상화는 어린이의 개성 발달을 저해하고 자유와 활기를 꺾어 어린이에게 공포심과 위축감을 일으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천도교 지도자인 김기전 역시 어른과 어린이 간의 평등한 관계 형성을 주장했다.

그는 장유유서의 유교적 수직관계가 온존하는 문화를 비판하면서 몇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첫째, 어린이를 대하는 말투를 비롯해 태도를 고치자는 것이다. 어른이라면 감정적 기분을 되도록 드러내지 말고, 어린이의 주장이라 하여 무조건 무시하지 않고 잘 들어주어 어린이가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펼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둘째, 어린이를 천대하지 말고 하나의 독립된 인격으로 인정해 의복, 음식, 거처 등에서 어른과 똑같이 대우하자는 것이다. 셋째,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우선 학교에서 그런 문화를 만들자는 것이다. 넷째, 어린이 사이에서도 여전한 남녀 차별을 없애자는 것이다. 김기전이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어린이 또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방정환은 학교 교육에 대해 사회에 필요한 인물을 주문받아 똑같이 찍어내는 교육만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어린이가 자유롭고 재미있게 저희끼리 기운껏 활활 뛰면서 자라도록 이끄는 교육을 꿈꿨다. ‘어린이끼리 새 사회가 서고 새 질서가 잡혀야 하는 것이지, 기존의 것을 강요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저 어린이가 요구하는 것을 주고, 어린이에게서 싹이 돋는 것을 북돋아주고 보호하는 것이 교육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방정환은 그러한 교육의 실천을 위해 필요한 공간은 학교가 아니라 바로 천도교소년회 같은 어린이 단체라고 주장했다.

l▶손병희 천도교 교주

경어 사용 등 내세우고 남녀 불문 가입
어린이운동은 천도교청년회, 정확히는 천도교 교주인 손병희의 사위 방정환의 주도로 본격화되었다. 1921년 4월 천도교청년회 내에 조직된 소년부는 곧바로 천도교소년회로 발전했다. 천도교소년회는 ‘쾌활 건전한 소년’을 만드는 데 목적을 두고 발족했다. 천도교소년회의 회원 자격은 만 7~16세 소년으로 정했다. 남녀는 물론 한국인과 외국인을 불문하고 가입할 수 있었다. 또 천도교인이 아니어도 가입할 수 있었다. 천도교소년회 조직은 일단 남자와 여자로 나누고 이를 다시 연령별로 8~10세(제1부), 11~13세(제2부), 14~16세(제3부)로 편성했다. 소년회 간부인 위원은 회원 중에 공개선거를 통해 선출했다.
천도교소년회 운영 경비는 일반 유지의 찬조금, 실제로는 천도교의 지원으로 충당하고 일부는 나이가 어린 회원들이지만 최소한의 자립·자영 원칙을 구현하기 위해 각자가 부담하도록 했다. 천도교소년회에는 사회의 일상 문화와 다른 독특한 문화 규범이 있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회원 간에는 물론, 지도 위원인 어른과 회원인 어린이 간에도 반드시 경어를 사용한다는 원칙이었다. 천도교 어린이운동 지도자들이 가정이나 사회에 만연한 어린이 천대 문화를 바꾸기 위해 주장한 경어 사용을 천도교소년회를 통해 실천한 것이다.

천도교소년회는 1923년 3월 1일 잡지 <어린이>를 창간했다. 방정환은 <어린이>의 편집 방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어린이>에는 수신 강화 같은 교훈담이나 수양담은 일절 넣지 말아야 한다. 저희끼리의 소식, 저희끼리의 작문, 담화 또는 동화, 동요, 소년소설 이것만으로 훌륭하다. 거기서 웃고 울고 뛰고 노래하며 그렇게만 커가면 훌륭하다. 그림을 많이 넣어 부드러운 감정을 유발하고, 한편 미적 생활의 요소를 길러주어야 한다.”

l▶소파 방정환 선생│한겨레

<어린이> 잡지 펴내고 어린이날 제정
천도교소년회가 어린이들에게 공동체의 울타리를 마련해주었듯, <어린이>도 비록 잡지지만 어린이가 자유롭고 즐겁게 뛰노는 놀이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이>는 어린이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끌어 1925년 무렵에는 3만 부의 판매 부수를 자랑하게 되었다.
천도교소년회 어린이운동의 백미는 어린이날 제정이었다. 첫 번째 어린이날 행사는 1922년 5월 1일에 열렸다. 이날 소년회원들은 경성 시내를 행진하며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라’는 제목의 전단 등을 배포하며 어른들에게 어린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고 사랑으로 대함으로써 어린이의 인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신장시킬 것을 호소했다.
천도교소년회는 1923년 어린이운동계의 맏형으로서 우후죽순 생겨나는 어린이운동 단체와 연대 활동을 추진했다. 천도교소년회 단독으로 개최하던 어린이날 행사를 어린이운동 단체 간의 연합 행사로 만들고자 했다. 천도교소년회는 불교소년회, 조선소년군 등과 함께 어린이날 행사 준비를 위한 기구인 조선소년운동협회를 결성했다. 그해 5월 1일에 펼쳐진 어린이날 시가행진이 경찰의 불허로 어렵게 되자, 행사에 참가한 어린이들은 ‘어른에게 드리는 글’ ‘어린 동무에게’ ‘소년운동의 기초 조건’ ‘어린이날의 약속’ 등의 제목을 단 전단을 배포했다. 이날 서울에 뿌려진 전단이 무려 12만 장에 달했다고 한다. ‘어른에게 드리는 글’과 ‘어린 동무에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른에게 드리는 글’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주시오.
어린이를 늘 가까이 하사 자주 이야기를 하여주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주시오.
이발이나 목욕, 의복 같은 것을 때맞춰 하도록 하여주시오.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하게 하여주시오.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에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히 타일러주시오.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 만한 놀이터나 기관 같은 것을 지어주시오.
대우주의 뇌신경 말초는 늙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젊은이에게도 있지 아니하고
오직 어린이 그들에게만 있는 것을 늘 생각하여주시오.

‘어린 동무에게’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보기로 합시다.
어른에게는 물론이고 여러분끼리도 서로 존대하기로 합시다.
뒷간이나 담벽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 같은 것을 그리지 말기로 합시다.
길가에서 떼를 지어 놀거나 유리 같은 것을 버리지 말기로 합시다.
꽃이나 풀을 꺾지 말고, 동물을 사랑하기로 합시다.
전차나 기차에서는 어른에게 자리를 사양하기로 합시다.
입은 꼭 다물고 몸은 바르게 가지기로 합시다.

l▶서울 중랑구 망우동 망우리공원 망우리공동묘지 내 방정환 기념비│한겨레

1만 명 거리 행진… 어른들도 동참
소박하고 따뜻한 말로 어른과 평등한 위치에 있는 어린이의 인권을 존중할 것을 전하고 있다. 어린이날 행사는 매년 규모가 늘어났다. 1928년 어린이날에는 전국에서 50만 명의 어린이가 참여하며 성황을 이루었다. ‘희망을 살리자, 내일을 살리자’라는 간절한 구호를 앞세우고 1만 명이 넘는 어린이가 서울 거리를 행진했다.
어른들도 어머니 대회, 아버지 대회 등의 집회를 열어 어린이날 행사에 동참했다. 행진이 저지되는 경우도 있었다. 붉은 글씨로 어린이날이라고 쓴 띠를 어깨에 두르니 붉은 글씨가 불온하다며 저지당했다. 무심결에 그 띠를 두르고 나갔다가 경찰에 빼앗긴 어린이도 있었다. 붉은색의 깃발을 들고 가려다 불온하다는 이유로 행진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암울한 시대에 어린이는 미래 세대였다. 어린이운동은 어린이의 인권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었고, 어린이날 거리로 쏟아져 나온 많은 어린이는 어른에게 희망의 내일을 기대하게 했다.

l김정인_ 춘천교육대 사회과교육과에서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다. 근현대 민주주의 역사와 현대 대학사를 연구하며, 주요 저서로는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 <독립을 꿈꾸는 민주주의> <역사전쟁, 과거를 해석하는 싸움> <대학과 권력> <오늘과 마주한 3·1운동>이 있다.

관련기사

페이지 맨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