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인정 비율·산재 노동자 복직 사상 최고

2019.05.20 공감 최신호 보기


ㅣ▶근로복지공단은 1월 14일 공단 안산병원 대강당에서 심경우 공단 이사장(앞줄 가운데)이 참석한 가운데 ‘산재관리의사’ 임명장 수여식을 열었다.│근로복지공단

현 정부 들어 노동자 질병을 산업재해인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해준 비율이 지난 10년 이래 최고인 것으로 나타났다. 산재를 입은 노동자가 일자리로 복귀한 비율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2018년 업무상 질병 인정 비율은 전년에 비해 10.1%포인트 상승한 63.0%로 집계됐다. 이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업무상 질병 심의를 하는 업무상 질병 판정위원회가 발족한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업무상 질병 인정 비율은 2016년까지 30∼40%대에 머물렀으나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2017년 52.9%로 뛰기 시작했다.
현 정부 들어 업무상 질병을 폭넓게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근로복지공단은 2017년 9월 작업 기간과 위험 요소 노출량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반증이 없는 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해주는 ‘추정의 원칙’을 도입했다. 일정 기준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의학적 인과관계가 있으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한다.

장시간 노동 만성과로 인정 기준 개선
이와 관련해 백혈병에 걸린 전기원 노동자에게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결정이 3월 내려졌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광주전남 전기원지부에 따르면, 근로복지공단은 임 모 씨의 백혈병이 업무와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산재에 따른 요양·보험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임 씨는 1995년부터 한국전력 협력업체 전기원으로 일하며 고압전선을 다루는 업무를 해왔다. 전기원 노동자들의 경우 노후 전선을 교체할 때 손으로 직접 전선을 만지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는 2004년 만성 골수병 백혈병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단은 또 장시간 노동에 따른 과로사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 뇌심혈관계 질병의 만성과로 인정 기준을 개선했다. 만성과로 기준 시간을 3단계로 세분화해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60시간(4주 동안은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업무와 관련성이 강한 것으로 판단한다. 노동시간이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업무부담 가중요인에 해당하는 경우 업무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본다. 업무부담 가중요인은 7개 항목으로 △근무일 당일이나 전일에야 근무 일정이 정해져 일정 예측이 어려운 업무 △교대제 업무 △12주간 월평균 휴일이 3회(4주 평균 2회) 이하인 업무 △유해한 작업환경(한랭, 온도 변화, 소음)에 노출되는 업무 △하루 누적 중량이 250kg 이상으로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 △5시간 이상 시차가 있는 출장이 잦은 업무 △판매량, 사납금 등으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높은 업무 등이다. 야간 근무의 경우 과로 시간을 산출할 때 주간 근무의 30%를 가산해 반영한다.

최근 근무 도중 쓰러진 아파트 경비원이 이러한 기준에 해당해 산재 판정을 받았다. 업무 시간이 만성과로 기준을 초과하고, 24시간 격일제 근무에도 독립된 수면 장소가 없어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확인돼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공단은 근골격계 질병에 대한 ‘업무 관련성 특별진찰 제도’를 2017년 10월 신설해 재해조사 전문성을 향상시켰다. 재해조사 단계에서부터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등이 직접 업무와 질병 사이의 연관성을 조사하도록 했다.

ㅣ▶울산광역시 중구 종가로에 위치한 근로복지공단 본부건물│근로복지공단

직장 갑질·성희롱 피해 등 인정률 높아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병 에피소드’ 등 정신 질병이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에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이에 따라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진 직장 내 갑질과 성희롱 등으로 인한 노동자의 심리적 외상에 대한 산재 인정률도 높아졌다. 이와 관련해 2018년 2월 설 연휴 첫날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서울 모 병원 간호사 고 박 모 씨가 산업재해 피해자로 인정됐다. 박 씨는 당시 병원 내 가혹 행위에 못 이겨 투신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경찰은 이른바 ‘태움’이라 불리는 가혹 행위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근로복지공단은 박 씨 유족의 유족 급여와 장의비 청구에 대해 업무상 질병 판정위원회 심의를 거쳐 박 씨 사건을 산재에 해당하는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3월 6일 심의회의에서 “재해자는 매우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로, 업무를 더욱 잘하려고 노력하던 중 신입 간호사로 중환자실에서 근무함에 따라 업무상 부담이 컸다”면서 “직장 내 적절한 교육체계나 지원 없이 과중한 업무를 수행해 피로가 누적되고 우울감이 증가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판단했다. 공단은 “간호사 교육 부족 등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과중한 업무와 개인의 내향적 성격 등으로 인한 재해자의 사건에 대해 산재를 인정한 것”이라며 “향후 동일·유사 직종 사건의 판단에 선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재 신청 절차를 간소화하면서 산재 신청 건수도 급증했다. 2018년 근로복지공단에 접수된 산재 신청은 13만 8576건으로, 전년(11만 3716건)보다 21.9% 증가했다. 2017년까지만 해도 노동자가 산재 신청을 하려면 재해 사실관계에 관한 사업주의 확인을 받아야 했으나 2018년부터 이 절차를 없애 노동자가 사업주 눈치를 보지 않고 산재 신청을 할 수 있게 됐다.
2018년부터 출퇴근 사고를 산재 대상에 포함하고 산재보험 적용을 전체 사업장으로 확대한 것도 산재 신청 건수 증가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심경우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은 “일하다가 사고로 다치거나 직업병에 걸린 노동자들이 빠짐없이 산재보험의 적절한 치료와 재활 서비스를 제공받아 다시 일할 수 있도록 산재 신청 서식을 대폭 간소화하고, 입증 부담을 완화해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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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대체인력 고용 땐 임금 50% 지원
한편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가 일자리로 복귀한 비율이 2018년에 사상 처음으로 65%대를 넘어섰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2018년 요양이 끝난 산재 노동자 8만 4011명 가운데 65.3%인 5만 4817명이 일자리로 복귀했다. 산재 노동자의 직업 복귀율은 2016년 61.9%에서 2017년 63.5%로 상승했고 2018년에 연도별로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일하다 갑작스러운 업무상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노동자가 다시 직장에 복귀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근로복지공단은 ‘개인별 맞춤 재활 서비스’가 직업 복귀율 상승에 기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서비스는 중증 장해로 직업 복귀가 어려운 산재 노동자에게 재활 전문가인 ‘잡 코디네이터’가 일대일 맞춤 서비스를 요양부터 직업 복귀 단계까지 제공한다.
공단이 실시하는 산재 노동자에 대한 재활 사업은 다양하다. 요양 초기부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재활인증 의료기관을 53개소에서 111개소로 크게 확대해 집중 재활치료를 강화했다. 중대 재해로 인한 심리불안(트라우마) 해소를 위해 심리상담, 희망찾기 프로그램 등의 사회 재활 서비스를 제공해 신체 회복과 함께 마음 치유도 지원한다. 공단은 “직업 복귀율을 지속적으로 높이기 위해 산재 노동자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최적의 재활 서비스가 제공되도록 발전시켜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업에 대한 제도적 지원도 강화했다. 산재 노동자가 업무 공백 걱정 없이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사업주가 대체인력을 고용하면 신규 고용인력 임금의 50%를 지원하고 있다. 산재 장해인(장해 1~12급)을 원래 직장에 복귀시켜 고용을 유지하는 사업주에게는 지원금을 최대 12개월까지 지급한다.
근로복지공단은 선진국 수준의 직업 복귀율 달성에 다가가고자 제도 개편을 지속해나가고 있다. 산재 노동자에 대한 임상 경험이 있는 전문의를 임명해 고급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재관리의사’ 제도를 도입했다. 공단은 1월 14일 의료기관 12곳에 임호영 공단 안산병원장 등 전문의 39명을 국내 최초로 산재관리의사로 임명했다. 산재관리의사는 산재의 특성과 제도를 깊이 이해하고 산재 환자에 대한 풍부한 임상 경험을 갖춘 숙련 전문의다. 산재 환자의 초기 치료 단계부터 전문 재활치료, 직장 복귀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체계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산재관리의사는 독일의 산재 전문의 제도를 국내 현실에 맞게 적용한 것이다. 독일에서는 2015년 기준으로 약 4100명의 산재 전문의가 활동 중이며 연간 약 300만 명의 산재 환자를 치료한다. 공단은 산재관리의사 활동에 대한 평가 등을 거쳐 운영 의료기관과 의사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2020년부터는 이 제도를 전면적으로 시행할 방침이다. 심경우 이사장은 “산재 환자의 조기재활 활성화와 장해 최소화, 원활한 직업 복귀 촉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요양 중에도 직장 적응훈련 가능
요양이 끝난 뒤에 지원하던 직장 적응훈련을 요양 중으로까지 확대해 산재 노동자의 직장 복귀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공단은 2018년 12월부터 산재 노동자가 요양 기간에도 직장 복귀를 위한 ‘직장 적응훈련’을 할 수 있도록 지원에 나섰다. 기존 법규상 공단은 산재 노동자의 요양 기간이 끝난 뒤 직장 적응훈련을 실시한 사업주에게 비용을 지원했으나 산재보험법 개정으로 요양 중에도 비용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산재 노동자가 직장 복귀 뒤 다시 휴가를 내는 등 적응에 애를 먹고, 사업주도 근무 중에 적응훈련을 별도로 시키는 게 어렵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수렴한 결과다. 공단은 “요양 치료와 적응훈련 병행으로 산재 노동자는 직장 복귀를 준비할 수 있고, 사업주는 근무 중 적응훈련 실시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됐다”고 설명했다.

공단은 산재 노동자의 직장 적응훈련 신청서를 제출한 사업주에 대해 관련 절차를 간소화하고 직장 적응훈련 정보를 제공한다. 산재 노동자의 직장 적응훈련 기간은 취업 치료로 간주해 부분 휴업급여를 지급하기로 했다.
고용기간 만료, 장해 등으로 원래의 직장에 복귀하지 못한 산재 노동자에게는 구직 등록, 취업 설명회, 무료 직업훈련 등을 통해 재취업을 지원한다. 권역별로 재활지원팀(8개소)을 신설해 산재 노동자의 재취업을 통합해 집중 지원하도록 현장의 기능을 개편했다.

한광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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