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과학 부른 ‘게르마늄’ 열풍

2019.05.20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l▶러시아의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

2009년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천문의 해’였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한 지 400주년 된 것을 기념한 것이지요. 2005년은 유엔이 정한 ‘세계 물리의 해’였습니다. 2005년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3대 이론, 즉 광양자설, 브라운 운동 이론, 특수상대성 이론이 나온 지 100년이 되는 해이자 그가 서거한 지 50년이 되는 해였거든요. 그렇다면 올해는 무슨 해일까요? 유엔이 정한 ‘국제 주기율표의 해’입니다. 러시아의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가 주기율표를 발표한 지 꼭 15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불을 사용한 다음부터는 화학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청동기 시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원소의 이름을 붙였겠지요. 구리와 철을 어떻게든 불러야 했을 테니까요. 1718년까지만 해도 알려진 원소는 13개뿐이었습니다. 탄소, 인, 황, 철, 구리, 비소, 은, 주석, 안티몬, 금, 수은, 납, 비스무트가 바로 그것입니다. 1869년 멘델레예프가 주기율표를 발표할 때는 모두 63개를 알고 있었습니다. 멘델레예프의 위대한 점은 주기율표를 만들 때 빈칸을 그대로 두었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아직 모르는 게 많아.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원소가 있을 거야”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로 구성된 원자의 구조가 밝혀진 다음부터 인간은 창조자의 역할을 합니다. 없는 원소들도 만들지요. 지금 주기율표에는 118개의 원소가 있지만 우주에 원래 있는 원소는 94개뿐입니다. 나머지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자신이 발견하거나 만들어낸 원소에 이름을 붙일 권리를 갖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l▶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한겨레

인간이 만들어낸 원소 24개
처음에는 원소의 특성을 나타내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세슘(Cs)은 하늘색이라는 뜻입니다. 하늘색 불꽃을 내면서 타거든요. 자극적인 냄새가 나는 브로민(Br)은 ‘불결한 악취’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왔습니다. 과학자들은 자신이 존경하는 학자의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아인슈타이늄(Es), 페르뮴(Fm), 멘델레븀(Md), 노벨륨(No), 로렌슘(Lr) 같은 것들이죠. 각각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엔리코 페르미, 드미트리 멘델레예프, 알프레드 노벨, 어니스트 로렌스를 기린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자신이 연구한 도시와 나라의 이름도 많이 붙였습니다. 코펜하겐을 뜻하는 하프늄(Hf), 파리를 뜻하는 루테튬(Lu) 같은 것입니다만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가장 복받은 도시는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에 있는 작은 도시 이테르비입니다. 이테르비를 기념한 원소는 이트륨(Y), 이터븀(Yb), 터븀(Tb), 어븀(Er) 등 자그마치 네 개나 되니까요.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적이 있다’는 말이 있지요. 당연히 대륙과 지역 그리고 나라 이름이 붙은 원소도 많습니다. 유로퓸(Eu)과 아메리슘(Am), 스칸듐(Sc)은 어느 지역을 말하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프랑슘(Fr)과 저마늄(Ge) 역시 딱 봐도 어느 나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니호늄(Nh)은 어디일까요? 일본입니다.
일본 과학자들이 2003년에 만들어서 1.2초 동안 관측하는 데 성공했지요. 2016년부터 공식적으로 니호늄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코레아늄’이 없어서 아쉽지만 그래도 축하해야 할 일이지요.
지금까지 보신 글에 등장한 원소 가운데 괄호 안에 원소기호를 기입한 것은 총 18개입니다. 이 가운데 익숙한 이름이 하나 있을 겁니다. 바로 저마늄(Ge)이죠. 광고에도 많이 나오는 원소입니다. 들어보신 적이 없다고요? 하지만 ‘게르마늄’이라는 독일식 이름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몇 년 전부터 원소 이름을 독일식 대신 영어식 발음으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저마늄은 회백색의 광택이 나는 단단한 물질입니다. 금속과 비금속의 특징을 모두 지닌 특이한 원소죠. 그래서 규소(실리콘)와 함께 반도체에 많이 쓰이는 아주 중요한 자원입니다. 멘델레예프는 저마늄의 자리를 비워두었어요. 덕분에 독일인 화학자 빙클러가 1886년에 발견할 수 있었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화학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저마늄은 압니다. 게르마늄이라고 부르죠. 지구 지각에 50번째로 많은 원소니까 아주 많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엄청나게 많이 팔립니다. 어버이날 선물로 많이 찾거든요. 게르마늄 목걸이, 게르마늄 밥솥, 게르마늄 생수통 등 다양한 형태로 팔립니다. 게르마늄에는 여러 효능이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첫째, 통증을 줄여줍니다. 신경세포에 흐르는 전자기의 흐름을 조절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유해 산소를 줄여줍니다. 그 결과 바이러스 감염이 억제되고 면역력도 높아지죠. 셋째, 고혈압을 예방합니다. 산소 공급이 촉진돼서 혈액의 끈적거리는 성질을 줄여주거든요. 넷째, 암을 치료합니다. 마찬가지로 산소 공급을 늘리기 때문입니다.

l▶중국산 저마늄 라텍스 침대에서 측정된 방사능 수치│한겨레

멘델레예프가 울고 갈지도
유별난 효자, 효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부모님께 선물하고 자신도 하나쯤 갖고 싶은 물건입니다. 문제는 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지요. 게르마늄 목걸이는 수십만 원씩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건강에 좋은 물건은 의료보험을 적용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요? 보편적 복지 차원에서 60세 이상 노인에게는 소득과 재산을 따지지 말고 나라에서 하나씩 지급해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증진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도대체 정부와 의료계, 시민단체는 왜 이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을까요? 왜 관심이 없었겠습니까. 당연히 과학자들을 시켜서 효능을 검사했지요. 하지만 아무런 효능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게르마늄 목걸이는 그냥 돌멩이 목걸이입니다. 패션으로서는 가치가 있을지 모르지만 건강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게르마늄에서 원적외선이 나오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에너지는 우리 피부를 0.2mm밖에 침투하지 못합니다. 차라리 뜨거운 물주머니를 안고 자는 게 더 좋습니다.
저마늄은 주기율표의 빈자리를 채울 원소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멘델레예프의 예측을 증명한 고귀한 원소입니다. 그런데 저마늄이 우리나라에서는 사이비 과학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코레아늄 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을 겁니다. 멘델레예프가 울지도 모릅니다.

l이정모_ 현재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생화학을 전공하고 대학교수를 거쳐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을 지냈다. <250만 분의 1>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내 방에서 콩나물 농사짓기> 등 읽기 편하고 재미있는 과학 도서와 에세이 등 60여 권의 저서를 냈고 인기 강연자이자 칼럼니스트로도 맹활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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