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 운영자 이용상 씨가 4월 30일 ‘이 세상 괜한 걱정’에서 살롱을 소개하고 있다.
‘퇴사하기로 마음먹었는데 그만둔다는 말을 못해 걱정인 사람들’ ‘지금 행복한 순간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질까 봐 걱정인 사람들’ ‘친절하게 웃으며 잘해줬더니 만만하게 봐서 걱정인 사람들’….
이런 걱정을 담아내는 살롱이 있다.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 자리한 ‘이 세상 괜한 걱정’은 매주 다양한 걱정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품는 공간이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자신의 걱정을 메모지에 적어 유리병에 담으면 살롱 주인은 선반에 차곡차곡 올려둔다. 메모지에 적힌 내용은 ‘이 세상 괜한 걱정’ 인스타그램에 게재되는데 방문자들은 서로의 걱정에 댓글을 남기며 위로한다. 살롱 주인은 매주 ‘이 주의 걱정’을 인스타그램에 소개한다. 낯선 타인들이 조용히 맥주 한잔을 마시고 돌아가지만, 어쩌면 이 공간을 찾은 이름 모를 사람들은 같은 걱정을 가진 이들일지도 모른다.
살롱의 운영자는 <국민일보> 현직 기자인 이용상(37) 씨다. 낮에는 공적인 주제를 보도하는 신문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이곳에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듣는다. 사람들이 수많은 날들의 밤에 남기고 갈 걱정을 책으로 출간하기 위해 2018년 12월 7일 ‘이 세상 괜한 걱정’을 열었다. 친형이 이 공간의 주인이지만, 실제 운영은 이 기자가 맡는다. 이 기자는 어떤 사람들이 올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12월 7일 첫 손님을 맞았다. 그날 지인 7명이 공간에 모였다. 7명 가운데 남녀 두 사람이 처음 결혼을 발표한 곳도 이 공간이었다. 이 기자를 4월 30일 ‘이 세상 괜한 걱정’에서 만났다. 기자인 그가 어쩌다 살롱을 열었을까.
▶살롱 선반에 놓인 걱정 유리병들
“걱정 대개 거기서 거기, 네댓 개”
-‘이 세상 괜한 걱정’을 열기로 결심한 이유가 뭔가요?
=휴가 때마다 제주도에 가는데 여행을 하면 늘 하는 게 있어요. 제가 ‘계획충’이거든요.(웃음) 1년, 5년 후 계획을 짜는데, 계획을 세우려면 삶의 방향성을 정해야 하잖아요. 행복 리스트 가운데 이런 게 있었어요.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 출판 그리고 강아지. 가게를 차리면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출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삶의 목표는 행복인데, 나한테 행복을 주는 게 뭔지 정리해보니 그리 많지가 않더라고요. 이조차 안 하고 살면 안 되겠다 싶어서 무턱대고 이 공간을 열었어요.
자신에게 행복을 주는 몇 가지 일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저 주어진 상황에 끌려가는 삶을 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열게 된 공간의 콘셉트는 이 기자의 습관과 닮아 있다. 바로 낙서다. 취미나 특기를 묻는 질문에 그는 낙서라고 답할 정도로 늘 무언가를 끄적인다. 걱정거리를 적다 보면 조금은 마음이 정리된다.
-방문객들은 어떤 걱정을 쓰던가요?
=다양한 걱정이 있을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걱정하는 게 거기서 거기더라고요. 대부분 네다섯 유형의 걱정을 안고 살아가죠. 결혼, 취업, 인간관계 같은 거요. 우린 동일한 걱정들을 하며 살더라고요. 걱정마다 뚜렷한 해결책이 있는 건 아니지만, 같은 걱정을 안고 사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해결될 수 없는 걱정이라면 가장 큰 위로는 해결점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같은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 그게 큰 위로가 될 거라 생각했어요. ‘괜찮아, 괜찮아, 걱정하지 마’ 그렇게 말하는 것보다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곁에 있어주는 거죠. ‘이 주의 걱정’ 테마를 정하는 것도 그런 이유예요. 나는 여기 앉아서 술을 마시고 저 사람은 저기에 앉아 있지만, 둘은 암묵적으로 ‘저 친구도 같은 걱정을 하는구나’ 느끼는 공간이에요.
처음에는 이 공간의 목표가 출판이어서 걱정을 손 글씨로 쓰게 하자는 생각이었어요. 물론 출판 때문이기도 하지만 걱정을 어딘가에 적으면 편안해지는 느낌이 있잖아요. 이 공간의 첫 번째 목적이 출판이었는데 지금은 두 번째 목적으로 바뀌었어요. 그사이 다른 목적이 생긴 거죠. 사람들이 적어놓는 걱정을 보면서 바뀐 건데, 걱정 있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게 첫 번째 목적이에요.
“걱정 말라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요청”
이 공간의 귀퉁이에는 걱정 유리병을 진열하는 선반이 있다. 선반 앞에는 앉아서 걱정거리를 쓰기 위한 작은 탁자, 그리고 거울이 있다. 어느 날, 걱정거리를 적으려고 어떤 이가 탁자에 앉았다. 그런데 한동안 적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눈물을 쏟아낸 것은 아니지만 눈시울이 붉어진 그가 이 기자에게 말했다. “눈물이 나서 못 적을 것 같아요.” 어쩌다 보게 된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이 안쓰러울 때가 있다. 타인들의 얼굴을 보고, 타인의 표정에 민감해하며, 때로는 그들의 얼굴이 찌푸려지지 않게 애쓰며 살아가면서 정작 나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은 많지 않다. 세면대 앞에 섰을 때,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고칠 때에야 나의 얼굴을, 걱정을 마주한다.
한국에 계속 살지, 외국으로 떠날지를 고민하던 이도 이 공간을 찾았다. 만약 한 달 후 이곳에 온다면 한국 거주를 결정한 것이고, 오지 않는다면 외국으로 떠났을 거라는 내용을 적어놓았다. 그 방문객은 시간이 지나 다시 ‘이 세상 괜한 걱정’을 찾았다. 이 기자는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찾아오는 사람들 곁에 늘 함께한다.
-우리에게 위로란 뭘까?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의 노래를 들으면 가끔은 거부감이 들어요. 걱정은 안 할 수가 없는, 숨 쉬는 것처럼 매일 해소될 수 없는 건데 걱정하지 말라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요청일지 몰라요. 다만 걱정을 들어줄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게 위로 아닐까요? 어떤 분들은 상담사나 멘토 같은 이를 두어서 걱정을 해결할 수 있는 기능을 넣으면 어떻겠냐고도 했어요. 제가 지향하는 바는 아니었어요. 저도 걱정을 들을 때 평소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싶곤 해요. 그런데 억지로 참으려 하거든요. 해결책이 되지 않는 조언을 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서예요. 그냥 들어주는 거, 그런 게 위로가 아닐까요?
▶살롱 선반에 손님들의 걱정을 담은 유리병들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다.
“라디오 좋아해 원래 꿈은 라디오 피디”
이 기자는 최근 운영 방법에 변화를 주었다. 일주일에 하루 또는 이틀 날짜를 정해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의 예약을 받아 만남을 진행했다. 4월 29일에는 손님 세 사람이 모여 서로의 고민을 나눴다. 꼭 무겁고 심각한 고민이 아니어도 좋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데 살이 쪄서 걱정인 사람, 설 연휴에 할 게 없어 고민인 사람들. 이런 소소한 고민을 나누는 자리를 앞으로도 종종 만들 생각이다.
고민을 노래로 담아내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한 사람의 고민을 노래로 만들어 음원을 발표하는 것. 이 기자의 지인 가운데 낮에는 페이스북 코리아에서 일하고, 틈틈이 음악 작업을 하는 형이 있다. 이 기자가 손님의 걱정을 노랫말로 쓰면, 음악하는 형이 멜로디를 만드는 작업이다. 한 달에 ‘이 세상 괜한 걱정’을 찾는 손님은 80~90명 정도다.
-어떤 분들이 방문하나요? 걱정을 듣는 일이 때로는 부담되지 않나요?
=대부분 인스타그램을 보고 오시는데, 자신의 걱정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찾는 경우가 많아요. 아직까지는 되게 좋아요. 라디오를 좋아하는데, 독자의 사연을 읽어주고 청취자와 전화 통화하는 게 특히 좋더라고요. 이야기를 같이 나누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원래 꿈은 라디오 피디였거든요. 지금은 신문사에서 일하는 것도 만족도가 높지만요. 기자와 취재원으로 만난 사람들과는 주로 공적인 이야기를 나누지만 이곳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해요. 평소 만나는 사람들과도 걱정을 나누지 못할 때가 있잖아요. 여기서는 다양한 이야기를 하죠.
“정작 아버지 이야기는 하나도 몰라”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쉼표가 찍히기도 하죠.
=그 말이 좋은 것 같아요. 마음의 쉼표. 제 행복의 우선순위 중 하나가 소중한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몇 년 전에 ‘상수동 사람들’이란 제목의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어요. 평범한 사람들. 우리 옆집, 편의점, 꽃집 누나, 이런 사람들에 대한 글을 썼어요.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잖아요. 몇 년 전에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려는데 아버지가 같이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함께 이런저런 얘기 하며 숲길을 걷는데 ‘용상아, 고맙다’ 그래요. 아무 맥락 없이. ‘뭐가요?’ 하니까 ‘그냥’이래요. 그렇게 걷다가 ‘용상아, 고맙다’ 또 그러시는 거예요. 되게 죄송스럽더라고요. 아버지는 당신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인터뷰한답시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어주면서 정작 아버지의 고민이 무엇인지,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떻게 결혼하게 됐는지 등 아는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인스타그램 등 수많은 SNS를 하지만 정작 ‘사소한 이야기’에는 귀 기울이지 못하고 사는 게 아닐까요?
=이야기를 하기 힘들 때가 있죠. 살롱 이름이 ‘이 세상 괜한 걱정’이잖아요. 인스타에 방문객들의 걱정 메모를 올리고 해시태그를 쓰는데 ‘이 세상 괜한 걱정’이라는 상호를 쓰기가 조심스럽더라고요. 시간이 해결해주는 걱정일 수도 있지만, 이 걱정을 쓴 사람에겐 ‘온 우주의 걱정’일 수 있잖아요. 그가 느끼는 힘듦의 무게를 알 수 없는데, 괜한 걱정이라고 쓰는 게.
출판을 목적으로 한시적으로 운영하려고 시작한 이 공간을, 이 기자는 계속 꾸려나가려 한다. 어렵게 말을 꺼내고 돌아서는 이들의 등을 무심히 바라본 적이 있는지. 해가 저물면 이곳에 머물러 걱정을 내려놓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등이 조금은 가벼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공간은 원래 운영하려던 예정 기간보다 오래 유지될 모양이다.
글 박유리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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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