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시테섬에 자리한 또 다른 고딕성당인 생트샤펠(Sainte Chapelle) 성당.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창으로 빛이 쏟아진다.
4월 15일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지붕이 불에 타는 사건이 터졌다. 나는 2월 3일 바로 그곳을 방문해 관광객으로서 미사를 드렸다. 그래서 그 사건이 더욱 놀라웠다. 대중은 수많은 인명 피해를 입히는 내란이나 자연재해, 테러보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에 더 깊은 걱정을 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그곳을 문학, 영화, 잡지, 사진, 그리고 관광으로 경험하면서 더욱 친근하게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이 아무리 고딕 성당을 느끼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중세 도시나 농촌에서 대성당이 가졌던 의미를 이해하려면 상상력이 필요하다.
고딕 성당은 12세기 무렵부터 지어졌다. 당시로는 최첨단 건물이었다. 그 이전 양식인 로마네스크 교회보다 몇 배나 크게 지었다. 초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샤르트르 대성당의 서쪽 탑은 100m가 넘는다. 당시 성직자들은 신을 모시는 성전을 장엄하게 짓고자 했다. 그것은 두 가지로 구현된다. 하나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의 수직적 높이다. 19세기 말 시카고에서 최초의 마천루 건물이 나타났을 때 그것을 ‘스카이스크래퍼(skyscraper)’라고 불렀다. 건물 꼭대기가 하늘을 긁을 정도로 높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초의 마천루 건물은 높이가 10층에 불과했다. 30m가 조금 넘는 정도다. 10층짜리 건물을 보고도 그렇게 감탄했을 정도니 그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고딕 성당을 본 중세인들이 얼마나 경탄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내부. 고딕 성당은 창이 넓고 많아서 내부로 빛을 최대한 끌어들인다.
높고 장엄하고 빛 가득한 공간
또 하나 고딕 성당의 큰 특징은 빛으로 가득한 공간이라는 점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은 창이 없거나 아주 작았다. 벽이 넓어서 그곳에 그림을 그렸다. 고딕 성당은 거대한 창이 둘러싸고 있어서 그림을 그릴 벽이 없었다. 고딕 성당의 등장으로 이젤화가 탄생했다. 피라미드 역시 높지만 그곳은 안이 꽉 차 있다. 반면에 성당은 텅 비어 있고, 벽은 창으로 가득하다. 따라서 오로지 기둥만이 건물을 지탱해야 하므로 훨씬 어려운 공학적인 문제를 낳게 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어려운 건축 공학의 난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그 특유의 고딕 양식이 탄생했다. 그것은 기존의 둥근 아치에서 끝이 뾰족한 첨두아치(pointed arch)로의 진보를 이끌었다. 첨두아치가 하중을 더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에 ‘버팀부벽(flying buttress)’이라는 고딕 성당만이 갖는 독특한 모양의 구조물로 보완했다. 이 두 가지의 특징은 기능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다시 말해 미적 효과를 높이려는 의도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얻어진 구조이고 모양이라는 점이다. 또한 건축 공간의 놀라운 혁신이자 성취이기도 하다. 유럽에 산재한 몇몇 고딕 성당은 100m가 넘는다. 1889년, 에펠탑이 세워지기 전까지 유럽 곳곳에서 가장 큰 건축물은 늘 고딕 성당이 차지하고 있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장미창
이런 위대한 건축적 성취가 절대적인 신앙심에서 나왔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신에 대한 중세인들의 관념은 현대인들이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녀재판에서 억울하게 마녀로 몰린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마녀로 몰린 사람은 자신이 마녀라는 것을 실토해야 한다. 그 실토를 받아내고자 모진 고문을 가한다. 마녀라고 실토를 해도 죽고 고문을 아무리 참아내도 결국 죽고 만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 고문을 끝까지 참을까? 자신이 마녀라고 자기 입으로 고백하는 순간, 그는 죽은 뒤 지옥으로 갈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교회가 가르친 세계관을 철저히 내면화하고 있었다. 그런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그 험난한 사업에 동원돼 신을 숭배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서쪽 탑. 높이가 69m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무뎌진 감각
또 하나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은 고딕 성당에 대한 중세인들의 전반적인 경험이다. 중세의 도시란 지금으로서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것으로 시골 읍내보다 못한 곳이었다. 높아봐야 2층 정도의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아주 궁핍한 마을이다. 그런 곳에 거대한 높이의 건물이 들어섰을 때 그들이 느꼈을 경험을 상상해보라. ‘압도한다’는 말의 실체를 그들은 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전율하면서 신의 위대함과 권능에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요일에 미사를 드리려고 성당에 들어선 순간을 상상해보자.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거대한 공간 안에 들어섰을 때 사람은 신 앞에서 극도로 왜소해진 자신을 느낀다. 어두컴컴한 자신들의 집과 달리 그 거대한 공간이 창문에서 쏟아지는 빛으로 가득한 모습을 보았을 때 중세인들은 신의 은총을 느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공간을 가득 채우는 오르간 소리와 성가대의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그들은 천국이 바로 이곳이구나 하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사람들은 일주일 내내 어떠한 음악도 감상할 수 없었다. 성당에 들어와서 듣는 천상의 선율은 그들의 감정을 휘저어놓는다. 그곳의 제단에 걸린 그림은 또 어떤가? 그들은 재현된 이미지 역시 성당에 들어갔을 때 비로소 볼 수 있다. 중세의 그림은 교회의 벽과 제단, 그리고 책에 있는 것이 전부다. 당시 책은 어마어마하게 비싸서 서민들은 평생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 그러니 거대한 건축, 음악, 조각, 회화에 대한 그들의 경험은 오로지 성당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장엄함에 대한 진실한 느낌은 중세인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피부로 느낄 수 있다.
현대인은 매일 음악을 듣고 이미지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고딕 성당보다 큰 건물을 매일 보고, 그곳의 안을 언제든지 경험할 수 있다. TV와 스마트폰, 영화는 사람들을 놀라게 해주려고 온갖 노력을 바친다. 그 결과 현대인은 더욱 감각이 무뎌졌다. 현대인은 경이로움이란 느낌을 잊은 지 오래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신자라고 해도 현대인의 믿음은 중세인의 그것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다. 교회에 가서 성가대의 음악을 들어도 심드렁할 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고딕 성당은 중세인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내가 중세인들이 고딕 성당에서 느꼈을 감동을 한 번만이라도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경이로운 것은 없을 것이다. 내가 지난 2월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태도와 중세인의 그것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큰 것이다.
김신_ 홍익대 예술학과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하고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 대림미술관 부관장으로 일했다. 현재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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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