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증평의 한 양돈농가에 아프리카돼지열병 유입을 막기 위한 차단막이 설치돼있다.│정현규
“외국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계속 확산되는 이유는 주로 야생 멧돼지를 통해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농장 주변에 차단막을 설치하는 것이 농장 자체 방역의 기본입니다. 저희 농장은 멧돼지가 농장 구역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차단막을 설치해 돼지열병 유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습니다.”
5월 3일 오전 충북 증평의 한 양돈농가 인근에서 만난 농가 대표 A씨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A씨는 “혹시나 우리 농가 돼지들이 감염이 될까 봐 항상 예방을 철저히 한다”며 “정부의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농가 스스로 바이러스 유입을 막기 위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이 질병에 감염된 멧돼지가 농장 가까이에 내려와 직간접으로 돼지들과 접촉해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곳곳으로 전파된 사례는 세계 각국에서 발생하는 아프리카돼지열병 전파의 가장 흔한 형태다. 많은 개체수의 멧돼지가 빠르게 이동하고 곳곳으로 퍼진 다음에 발견될 경우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을 가장 간단하면서도 철저하게 예방하는 방법은 멧돼지가 농장구역 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농장 주변에 1.5m 이상의 차단막을 설치하는 것은 농장 자체 방역의 기본이다.
▶4월 30일 세종시 세종호 수공원 제2주차장에서 열린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가상방역훈련에서 가축방역관이 시료채취 훈련을 하고있다.│연합
농장 외국인 노동자 방역관리도 철저히 해야
세계동물보건기구(OIE) 등 국제기구 전문가들이 가장 기본으로 강조하는 것이 멧돼지를 막는 차단막 설치로, 덴마크는 아예 독일과의 국경에 약 70km의 장벽을 세워 국가 간 멧돼지 이동을 통제하고 있다. 현재 국내 농가의 약 10%만 차단막을 설치한 것으로 집계된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으로든 차단막 설치가 중요하다.
농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방역관리도 중요하다. 현재 양돈농가에서 일하는 노동자 가운데 약 70%가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 지역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따라서 이 질병이 발생하고 있는 국가에서 유입된 외국인이 방역 없이 곧바로 농장 내에 들어가거나 질병 전파의 위험성이 있는 휴대품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전남 무안의 한 양돈농가 대표 B씨는 “농장에 들어가기 전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고 소독을 해야 하며, 휴대한 음식물 등은 농장에 들어가기 전 소독하고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런 방역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간을 입국 이후 5일로 설정하고 있다. 이 기간 외국인 노동자는 농장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농장 관계자와 접촉하지 않고 방역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이런 방역 작업이 철저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전문 수의사와 적절한 프로그램이 필요한 데다 비용 면에서 농가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B씨는 “현재 대부분의 농가는 외국인 노동자가 도착하면 농장 인근에서 농장 관계자가 직접 5일간 방역을 도와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곧바로 질병 전파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며 “정부의 지원과 농가의 비용 분담으로 모든 외국인 노동자가 철저한 방역을 받는 것이 우선적으로 실천해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이 잔반 사료의 금지다. 최근 정부에서도 잔반을 사료화하는 것을 금지하고자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는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돼지고기가 함유된 음식물을 통해 전파되고, 야생 멧돼지도 먹다 남은 고기나 잔반을 통해 이 질병에 감염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잔반이 돼지는 물론이며 멧돼지에게 가지 않도록 법제화하고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천국제공항에 설치된 아프리카돼지열병 유입 차단을 위한 안내문│정현규
감염된 북한 멧돼지 관리 강화도 중요
국경 검역의 강화도 중요하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공기 전파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돼지나 멧돼지를 통해, 또는 돈육이나 그 가공품을 통해 전염되기 때문에 국경 검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살아 있는 돼지가 들어올 경우 기본적으로 검역이 철저한 데다 이 질병이 발생한 국가의 돼지는 수입이 금지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을 통해서 넘어오는 멧돼지를 제외하면 살아 있는 돼지가 질병을 전파할 가능성은 낮다. 문제는 중국, 베트남 등 질병 발생국에서 생산된 돈육 함유 제품을 여행객들이 반입하는 상황이다. 이들 돈육 함유 제품은 잔반 사료를 통하거나 농장에 근무하는 사람과의 접촉을 통해 국내의 멧돼지나 돼지로 질병이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 이를 차단하기 위해선 질병 발생 국가로부터 입국 시에는 별도의 입구로 들어오도록 해 엑스레이 검사, 탐지견을 통한 검사 등이 필요하다.
북한과 접경지역 관리 강화도 중요하다. 중국에서 이 질병이 확산되면서 북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감염된 북한의 멧돼지나 돼지가 휴전선을 직접 넘어오거나 휴전선 인근에서 폐사한 뒤 야생동물이 이를 접촉하고 남한의 멧돼지나 농장과 다시 접촉하는 방식으로 전파되는 것도 우려된다. 실제로 간접적인 방법으로 전파된 사례들이 각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북한을 통해 이 질병이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려면 휴전선 인근의 멧돼지에 대한 선제적인 검사를 더욱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환경부가 군부대 등과 협력해 포획된 멧돼지의 전수검사, 비무장지대 내 멧돼지에 대한 남북 합동조사, 군부대 등에서 잔반을 멧돼지에 급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 여러 관련 기관 간의 협조도 중요하다.
정부도 아프리카돼지열병 유입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는 4월 30일 처음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다는 것을 가정하고 기관별 상황 대응 훈련을 실시했다. 현장 훈련 상황을 요약하면, 한 농가에서 키우던 돼지가 출혈과 마비 증상을 보인다는 신고에 초동 방역팀이 출동했다. 농가 주변에 황급히 통제선이 설치되고, 방제 차량이 동원돼 긴급 소독을 진행했다. 하늘엔 역학검사를 위한 드론이 띄워졌다. 무엇보다 추가 확산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전국 돼지농장에 대한 이동중지 명령이 내려지고, 발병 지역 돼지에 대한 안락사 처분도 실시됐다. 거점마다 설치된 방역 시설은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비상 가동됐다. 오순민 농림축산식품부 방역정책국장은 “이번 훈련을 통해서 지자체 등 일선 방역기관의 초동 대응력이 향상되고, 협력 체계도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도드람양돈농협 관계자가 양돈농가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소지품을 검사하고 있다.│정현규
정부도 가상훈련 등 총력 예방 나서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5월 3일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가축전염병의 국내 유입 방지를 위해 국경 검역 강화 현장을 점검하고, 대한한돈협회와 합동으로 홍보 캠페인을 펼쳤다. 농식품부는 2018년 8월 중국의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이후 발생 국가 항공노선에 대한 탐지견 투입 확대 등 국경 검역을 강화해왔다. 최근에는 중국 주변국인 몽골·베트남·캄보디아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하면서 세관 등 유관 기관과 협업해 불법 휴대 축산물 차단 및 홍보 등 국경 검역 강화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로 입국하는 모든 항공기에 기내 방송을 통해 축산물 휴대 반입 금지 및 입국 시 자진신고를 독려하고, 해외에서 귀국 시 돼지고기 및 돼지고기가 포함된 제품 등 축산물을 절대 반입하지 않도록 일반 여행객에게 주의를 촉구했다. 또한 해외여행객들의 불법 휴대 축산물을 통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유입 가능성이 높아지고 유입될 경우 양돈산업에 막대한 경제적 피해, 돼지고기 수급에 심각한 차질이 예상되는 만큼 축산물 미신고 시 최대 10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계획이다.
현장 훈련에서는 방역의 주체인 농장주와 방역 공무원, 외국인 노동자가 함께 아프리카돼지열병 국내 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방역 준수 다짐을 했다. 한돈협회와 농협중앙회, 양돈 수의사회는 각자 역할을 통해 양돈농가의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국가 방문 자제와 소독 등 차단 방역에 대한 지도·교육을 통한 방역 강화에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아울러 전체 훈련 상황에 대해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생중계를 통해 대국민 경각심 고취를 위한 아프리카돼지열병 유입 예방 홍보도 실시한다. 농식품부는 이번 가상 방역훈련을 통해 지자체 등 일선 방역기관의 방역 의식과 초동대응 역량을 키우고 유관 기관과의 방역 협력체계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의 국내 유입 우려가 높아짐에 따라 해외여행자들은 중국·베트남 등 발생국 여행을 자제하고, 부득이 여행할 경우 절대 축산농가를 방문하지 말아야 한다”며 “입국 시에도 소시지나 햄 등 축산물 가공품을 가져오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특히 축사 내외 소독 실시, 농장 출입차량 및 출입자에 대한 통제와 함께 사육 돼지에 대해 매일 임상 관찰을 실시하고 돼지가 발열이나 갑자기 폐사하는 등 아프리카돼지열병 의심 증상 발견 시 방역기관에 신속히 신고해달라고 강조했다.
강민진 기자
도움말 정현규 한수양돈연구소 소장(수의학 박사)
“해외 다녀올 때 육류·소시지 반입 안 돼요”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지만, 유입 시 국내 양돈산업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됩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의심 증상 발견 시 반드시 가축방역 기관(1588-9060)에 신고해주시기 바랍니다. 해외여행을 할 때 중국·베트남 등 돼지열병 발생국 여행을 자제해주시고, 여행 국가에서 육류나 소시지 등 축산물을 휴대해 국내에 반입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민 여러분과 축산농가에서도 행동 수칙을 지키며,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예방을 위해 적극 협조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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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