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인기 비결은 ‘쿨’한 감각의 뉴 노멀

2019.05.09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ㅣ▶4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방탄소년단(BTS)의 앨범 <맵 오브 더 솔: 페르소나(MAP OF THE SOUL: PERSONA)> 발매 글로벌 기자간담회가 열려 멤버들이 사진 취재에 응하고 있다.│한겨레

방탄소년단(BTS)은 2019년 5월, 월드 투어 ‘LOVE YOURSELF: SPEAK YOURSELF’를 미국에서 시작했다. 첫 공연은 미국 대학 풋볼리그 결승이 열리는 경기장이자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 홈구장인 로즈볼 스타디움에서 열렸는데, 9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2018년 10월 BTS의 북미 투어 피날레를 장식한 뉴욕 시티필드 경기장(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의 홈구장)은 4만 석 규모였으니 1년도 안 되어 두 배 이상 커진 셈이다. BTS의 월드 투어는 로즈볼을 시작으로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드 프랑스 등을 거치게 된다. U2, 마돈나, 콜드플레이 같은 월드 클래스의 슈퍼스타가 공연한 장소들이다.
음악 산업의 규모 면에서 미국은 가장 큰 시장이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의 2018년 리포트를 보면 미국은 165억 3400만 달러 규모로 2위인 일본의 46억 9200만 달러에 비해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참고로 독일은 43억 3500만 달러 규모로 3위이고, 한국은 8억 8800만 달러로 세계 11위를 기록했다.) 그런데 미국은 다인종 국가다. 국제음반산업협회가 2019년 4월에 발표한 최신 리포트에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음악 시장의 트렌드 변화가 담겨 있다.

‘미국 트렌드가 세계 표준’은 착시효과
세계 음악 시장은 4년 연속 9.7% 성장하고 있는데, 그중 스트리밍의 수익은 37%나 증가해 전체 음악 산업 수익의 절반을 차지한다. 피지컬 음반이 10.1%, 다운로드가 21.2%나 감소했지만 스트리밍 수익이 그보다 늘어나 전체 시장 규모는 더 커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브라질, 멕시코 등 라틴아메리카의 시장 규모가 급성장하고 있고, 이들은 미국 내에서 라틴 계열 음악의 유행을 견인한다. 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 중인 시장은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해 아시아와 호주 지역인데 그중에서도 한국은 17.9% 정도 증가해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시장이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BTS의 미국 진출은 단지 미국 시장에 진입한 것이 아니라 전체 음악 산업의 변화와 궤를 같이하는 현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알다시피 BTS는 전 세계에서 고른 인기를 누리는데 그 이유로는 뉴미디어, 특히 유튜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콘텐츠 전략을 꼽는다. 유럽, 아시아, 북미 지역에서 화제가 되는 이들의 콘텐츠는 주로 자존감과 같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투어 제목에서도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 말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미국은 로컬 트렌드가 전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사실상 비정상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이다. 미국의 시장 규모가 압도적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인데, 그러다 보니 미국 내 트렌드가 곧 세계 표준이 되어버리곤 한다. 나는 이것이 일종의 착시효과라고 보는데, 정작 미국의 대중문화 소비자들은 다른 지역의 대중문화에 별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그들 자체가 단일한 정체성으로 묶이지도 않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심화되는 내부 경쟁의 결과로 주도권을 나눠 갖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ㅣ▶4월 17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글로벌 기자간담회에서 멤버들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 성공과는 달라
무척 단순화하는 것이지만, 대중문화의 역사는 사실상 미국의 세대 간 헤게모니 투쟁의 결과에 좌우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압축해서 살펴보자면 1950~60년대에는 백인 중산층을 기준으로 전쟁 세대와 전후 세대의 갈등이 미국 주류 문화를 만들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이 주둔한 아시아에 미국 대중문화가 전파됐다고 할 수 있다. 이후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흑인 노동계급 청년 문화와 백인 노동계급 청년 문화가 주류 헤게모니를 두고 다퉜고, 2000년 이후에는 히스패닉 노동계급 청년 문화와 아시안 중산층 청년 문화가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하며 경쟁하는 구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매거진(롤링스톤)과 라디오(지역 라디오), 케이블 채널(MTV), 그리고 인터넷(유튜브)이 음악을 전파하는 핵심 미디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현상은 미국 내 인종 분포도와 깊은 관계를 맺으며 미국 대중문화 산업의 내부에서 인종적·문화적 차이를 만들어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 내 히스패닉의 인구수는 흑인과 맞먹을 정도로 증가했고, 현재는 그 영향력이 사회 전반에 미치고 있다.
그런데 BTS의 인기에 이러한 관점을 적용하면 조금 어색하다. 이런 논리라면 BTS의 인기는 미국 내 아시안(혹은 코리안) 비율과 비례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BTS의 팬들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권에 걸쳐 있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성공했을 때는 분명히 ‘이상하고 웃긴 아시안’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이 작용했고, 그로부터 생긴 호기심이 관심도를 증폭했지만 BTS의 성공에는 그런 게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다.
오히려 여기에는 ‘쿨(cool)’이라는 감각이 관여한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쿨’이란, 어른은 모르는(이해하지 못하는) 새롭고 낯선 감각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2010년 전후로 해외에서 소비되는 K-팝은 바로 그런 감각을 자극한다. 지금 BTS의 인기는 미국 내부에 존재하는 아시안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삼는 게 아니라, 밀레니얼과 제트 세대가 주축이 되는 뉴 노멀(new normal)의 라이프스타일을 기반으로 벌어지는 제너레이션 게임이다. 뉴 노멀, 그러니까 ‘새로운 기준’이 BTS의 인기를 견인한다.

10대 초반 자녀에게 K-팝 허락한 이유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K-팝을 들은 게 아니다. 시계를 8년쯤 뒤로 돌려보자.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이 파리에서 공연을 하고, 소녀시대가 미국의 인기 토크쇼인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 출연해 라이브를 한 게 2011년이었다. 이즈음에는 빅뱅의 싱글들이 영어권 국가의 아이튠즈 차트에서 1위를 하고, 피치포크 미디어나 스핀 매거진 같은 영미권 음악 전문 매체에서 현아의 ‘버블팝’에 대한 리뷰가 등장하고, 에픽하이나 아이유의 음악을 추천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2012년, 알다시피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터졌다.
2차 한류 혹은 ‘신한류’로 불리던 당시 현상은 KBS의 위성방송과 유튜브를 기반으로 중동과 동남아시아, 유럽 지역에서 확산되었는데, 이때 K-팝의 주요 소비자들은 10대 초중반 아이들이었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이 시기의 아이들이 취향을 기반으로 하는 소비 행태는 부모 의존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음반을 사든, 공연을 보든 부모의 허락이 필요한 나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K-팝의 특징이 중요해진다. 바로 ‘위협적이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노래와 안무, 비디오에 실제론 겸손하면서도 팬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가진 가수’로서 K-팝 그룹들이 인식되었고, 이 점이야말로 10대 초반 자녀를 둔 부모들이 K-팝을 소비하는 것을 허락하게 만든 이유였다. 반면 10대 후반 소비자들에게 K-팝은 다소 ‘유치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때 K-팝을 열심히 소비하던 소비자들은 지금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고, 지금 K-팝을 소비하는 아이들은 제트 세대로 불린다. 이들은 기존 세대와 달리 뉴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면서 고밀도의 네트워크 환경에서 인종이나 문화적 차이를 거의 느끼지 않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으며, 세계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한 세대다. 그리고 이들이 바로 BTS의 세계적 인기를 견인하는 주체다.

ㅣ▶4월 17일 오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BTS 기자회견이 열리는 동안 세계 각지의 팬들이 건물 밖에서 모여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한겨레

마이크로미디어 사용자 취향 ‘접속’
그래서 BTS의 미국 진출은 이전 K-팝 가수들의 미국 진출과 질적으로 달라진다. 물론 그들의 성공에는 원더걸스나 소녀시대, 싸이의 사례가 도움이 된 건 분명하지만 BTS가 소비되는 지점이 그보다 넓고 깊다는 점은 이례적이며 다른 의미를 가진다.
BTS의 인기에 대해서는 대체로 음악의 멜로디와 가사가 좋고, 유튜브나 사운드 클라우드, 트위터 같은 여러 플랫폼에서 다양하고 솔직한 모습을 접할 수 있는데 거기서 보이는 그들이 늘 겸손하고 팬에게 봉사하는 태도를 가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기존 K-팝이 기반으로 삼은 태도이자 방향성이란 점에서 시사적이다.
BTS가 소비되는 곳은 21세기의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실시간 업데이트와 자동 번역이 일상화된 세계다.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경계’를 지배하는 마이크로미디어 사용자들이 인종과 언어의 제약을 벗어나 취향과 관심사를 기반으로 연결되는 곳. 그 점에서 BTS의 미국 진출은 단지 세계 제1의 시장에 진출했다가 아닌, 다인종 다문화 커뮤니티로서의 미국이라는 상징적 장소에 가 닿았다는 점으로 주목받아야 할 것이다. BTS 팬들이 BTS를 소비하는 배경에는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 혹은 ‘세계인으로서의 보편성’이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지구적인 경험이 한국이라는 물리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특수한 상황에 놓인 ‘우리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좀 더 상대적이고 보편적인 가치관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차우진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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