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지가 현실화 ‘세금 폭탄’일까?

2019.05.13 공감 최신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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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지가는 건물과 땅 세금을 매길 때 기준이 되는 가격이다. 그러니까 공시지가에 따라 재산세, 보유세,건강보험료의 부과 등급이 나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이 공시지가에 대한 현실화 방안을 추진하면서일부에서 ‘세금 폭탄’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공시지가를 급격하게 올리면서 부동산보유자들만 세금 폭탄을 맞게 됐다는 주장이다. 이게 과연 맞는 말인지 따져봤다.

총부채상환비율(DTI)이 처음 도입된 2006년, 비화가 하나 있습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은 2002년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 도입됐는데 DTI 도입이 지연된 것은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리 지갑’인 급여 생활자들은 그나마 소득이 파악되는데 자영업자와 전문직의 소득은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은행들은 자영업자와 전문직들이 세금을 낼 때 증빙하는 소득보다 실제 소득이 많다는 현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제 소득을 감안해 대출 한도를 증빙 소득보다 높게 잡아줬습니다. 실제 소득과 증빙 소득의 차이가 상당하기 때문에 DTI를 바로 도입할 경우 전문직, 자영업자의 대출 한도가 크게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을 정리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세금 낼 때는 소득을 축소하고 대출받을 때는 소득을 늘리는 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세금 낼 때 증빙하는 소득과 대출받을 때 소득을 맞추는 것이 형평성에 맞습니다. 그렇게 추진합시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소득으로 인한 혜택(대출 한도)과 부담(세금)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취지를 담아 DTI는 전격적으로 도입됐습니다.

공시가격이 실거래 가격보다 싼 이유는
정부가 부동산 공시가격을 현실화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정부는 4월 말 전국 공동주택 1339만 가구에 대한 공시가격을 발표했습니다. 공시가격은 ‘공식적인 부동산 가격’입니다. 부동산에 매기는 양도소득세, 상속세, 등록세, 재산세, 건강보험료를 비롯해 60여 가지 행정 절차에 활용되는 기준 가격입니다. 공시가격이 오르면 이를 기준으로 매기는 세금도 올라갑니다.
공시가격은 일반적으로 실거래 가격에 비해 낮습니다. 아파트는 20~30%, 단독주택은 60%까지도 낮습니다. 단독주택의 실거래 가격과 공시가격의 차이가 더 큰 이유는 단독주택은 거래가 많지 않아 가격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파트는 표준화된 주택이라 꼭 그 집이 거래되지 않아도 주변 시세로 가격을 매길 수 있습니다. 단독주택은 각각의 주택 특징이 다르기에 평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같은 10억 원짜리 주택인데 아파트는 8억 원, 단독주택은 4억 원으로 평가하고 세금 납부액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은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아파트든 주택이든 실제 부동산 가격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합니다.

공시가격이 실거래 가격보다 싼 이유는 처음 공시가격 제도가 도입된 배경과도 관련 있습니다. 현재의 공시가격 제도는 1989년 노태우정부 때 지가공시법을 제정하면서 도입됐습니다. 당시 건물이나 토지가 정부에 수용될 때 보상을 해주는 기준지가와 지방세를 낼 때 적용하는 시가 표준액, 국세청의 기준지가가 모두 달랐습니다. 이를 개선하고자 만든 것이 표준화된 공시가격입니다. 어떤 가격을 표준가격으로 산정하느냐에 따라 세금을 얼마 내느냐가 달라졌기 때문에 부동산 자산이 많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심했습니다. 최대한 낮은 가격이 공시가격의 기준이 됐고, 실제 부동산 가치보다 공시가격이 낮은 기조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강북70%·강남60%·고가단독50% 시세반영 역전
공시가격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논의는 꾸준히 이어졌지만 어느 정부도 함부로 손댈 수 없었습니다. 공시가격 현실화는 곧 증세였고, 세금을 더 내라고 하면 좋아할 사람이 없습니다. 특히 여론 주도력이 높은 자산가들의 반발이 더 심하다는 점도 영향이 있었습니다. 재산세만 오르는 게 아니라 장학금 지원이나 기초연금, 기초생활수급 기준도 영향을 받습니다. 경계선에 있는 저소득층이라면 복지 혜택이 끊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습니다.
2018년 7월 국토교통부 관행혁신위원회는 공시가격의 실거래가 반영률을 높일 것을 권고했습니다. 당시 혁신위는 고가 단독주택의 현실화율이 시세의 50%에 불과하고, 공동주택의 경우 서울 강북은 70%인 반면 강남은 60% 수준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공시가격이 시세의 90% 이상은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혁신위의 권고안이 나오자 어김없이 ‘세금 폭탄’이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공시가격 현실화로 세금 부담이 너무 커지는 것이 문제라면 세율을 낮추면 됩니다. 세금 부담 때문에 부동산 가치가 얼마인지를 불투명하게 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저소득층에게 적용되는 기준 역시 마찬가집니다. 부동산 가격 때문에 지원을 받아야 할 저소득층이 받지 못한다면 부동산 가격을 불투명하게 둘 것이 아니라 투명하게 하고 복지의 기준을 바꿔야 합니다. 가치 평가를 투명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고 각종 행정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그다음입니다.
그리고 4월 드디어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택의 공시가격이 최종 결정됐습니다. 전국 아파트 평균 5.2%가 올랐고 서울 아파트는 14% 상승했습니다. 공시가격에 대한 이의신청은 2018년에 비해 무려 22배가 늘어난 2만 8735건이나 접수됐습니다. 대부분은 공시가격을 낮춰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중 6000여 건이 반영됐는데 이의신청 전보다 0.08%포인트 정도 낮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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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오른 3억 원대 주택 보유세 7만 원 올라
공시가격 인상은 세금 폭탄으로 이어졌을까요? 공시가격이 41% 오른 23억 원대 한남동 단독주택의 보유세는 약 375만 원이 올랐습니다. 8% 오른 불광동 3억 원대 주택은 약 7만 원이 올랐죠. 공시지가가 1년 만에 41%나 올랐다는 것은 공시가격의 시가 반영률이 낮아 그동안 내야 할 세금을 덜 내왔거나, 가격이 급격히 올라 자산 가치가 높아졌다는 의미일 겁니다. 당장 부담이 커진 것은 분명하지만 이전에 정당한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서민의 부담이 커진다, 복지 혜택을 못 받게 된다는 우려는 말 그대로 기우였습니다.
또 1주택 소유자는 2018년에 낸 보유세의 1.5배 이상은 부과하지 못하도록 상한선을 정해뒀습니다. 보유세 100만 원 내던 사람은 150만 원으로, 월로 환산하면 4만 2000원 정도를 더 부담하게 됐습니다. 건강보험료 폭탄이라는 지적도 과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공시지가가 30% 인상될 경우 건보료 평균 인상률은 4%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고가의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한 사람의 부담은 커졌고, 앞으로도 커질 전망입니다. 종합부동산세에 적용되는 공정시장가액 비율의 경우 2019년 85%, 2020년 90%, 2021년 95%, 2022년 100%로 점차 올라갑니다. 또 9·13 대책 이후 조정 지역 2주택자의 세부담 상한은 200%가 적용됩니다. 1년 후 2배, 2년 후 4배, 3년 후 8배가 되기 때문에 부담은 상당히 커질 전망입니다. 사실 세금이 8배가 늘어난다는 의미는 그동안 보유한 부동산 가치에 따라 내야 할 세금의 1/8만 납부해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현재 종합부동산세를 내는 사람은 26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5160만 명)에 비하면 소수입니다. 그들에게 정부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너무 비싼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하지 말라는 거죠. 실제 상당수 부동산 투자자는 9·13 대책을 전후해 조정 지역을 피하거나, 9억 원 이하 주택으로 포트폴리오를 변경하는 등 투자 방식을 바꿔가고 있습니다. 투자는 제도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큰손 부동산 투자자들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배려하기 위해 공시가격을 불투명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해 보입니다.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는 부동산 가격 인상을 억제하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맞물려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증세가 환영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로 보유세 부담이 커지면 매물이 더 많이 나와서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조세 형평성의 원칙이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동산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동산 가격을 투명하게 파악하는 일은 설사 세율을 낮춰 실질 부담을 유지하는 한이 있어도 추진돼야 할 숙제입니다.
세금을 더 내게 된 사람들의 저항은 상당합니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시점이 공시가격을 현실화하기에는 그나마 좋은 시점입니다. 자산 가치가 올라갈 때 세금을 더 내면 불만이 덜합니다. 자산 가치가 떨어졌는데 세금을 더 내라면 정말 화가 날 겁니다. 좋은 시점에 시작한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은 혹시나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저소득층을 세심하게 배려하면서도 큰 흐름은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

권순우 <머니투데이방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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