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싱어송라이터 샘 스미스가 2018년 10월 9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H카드 슈퍼콘서트 23 샘 스미스’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다.│현대카드
마케팅이 중요한 시대다. 곳곳에서 마케팅 관련 콘텐츠나 기획, 수업, 포럼 등이 열린다. 그래서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사실 예전엔 마케팅이라는 말에 모종의 거부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마케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데 동의하고 그 개념이 바뀐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덕분에 조금 더 진지하게 마케팅을 들여다본다. 특히 음악과 관련된 마케팅에 대해 좀 더 생각하게 된다.
마케팅과 음악의 영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건 광고음악이다. 상식적으로 광고음악의 목적은 오직 하나, 광고를 각인시키는 데 있다. 제품이든 장소든 서비스든, 결국 광고의 목적은 사람들이 그 브랜드와 제품을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광고음악은 매우 단순한 구조에 기억에 남을 만큼 강력한 훅(hook)을 강조한다.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음악, 그게 광고음악이다. 극단적으로 기능화된 음악이랄까.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상식이 조금씩 깨지는 것 같다.
최근 광고음악은 기능성보다 음악적 완성도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왜일까? 아무래도 미디어 환경이 변하면서 마케팅의 접근법도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매스미디어 시대에는 브랜드의 인지도가 중요했다면, 마이크로미디어 시대엔 브랜드를 경험하는 게 중요해졌다고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최근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인다. 광고는 물건을 홍보하는 게 아니라 브랜드의 가치를 제공하는 것으로 변한다. 여기에는 제품의 완성도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 제품을 쓰는 사용자의 감각도 중요하다. 감각을 다루는 것. 음악이 중요해지는 것은 이 접점 덕분이다.
전문가 선곡 음악 흐르는 리조트
수년 전, 몰디브로 출장을 다녀온 적이 있다. 가장 비싸다고 하는 W리조트에서 며칠을 묵었는데, 도착하자마자 풍경에 반했고, 하루 만에 인도양을 바라보는 풀 빌라에 보스 스피커가 설치된 스위트룸에 반했다. 그런데 이틀째가 되자 리조트 곳곳에서 들리는 음악이 신경 쓰였다. 빌보드 차트 히트곡이나 클래식이 아닌, 북유럽 근방의 인디 록이었기 때문이다.
리조트 홍보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그는 굉장히 뿌듯한 표정으로 “W호텔은 고객들에게 트렌디한 감각을 제공하고자 매년 전문 디제이가 선곡한 컴필레이션 앨범을 제작하고 있어. 이 음악도 그가 선곡한 올해의 플레이리스트야. 우리만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지”라고 말했다. W호텔 고객들은 최고의 전망과 함께 여기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제공받는다는 데 놀랐다.
디지털로 재편된 현재에도 이런 경향은 더 강화된다. 브랜드는 광고용 음악뿐 아니라 브랜드 가치를 전달하는 데 음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H카드의 슈퍼콘서트다. H카드의 이 이벤트는 막대한 자본을 들여 최고의 아티스트를 섭외하는데, 어떤 음악 팬들은 이 콘서트를 보려고 H카드를 만들기도 한다.
미국의 A카드도 비슷한 이벤트를 벌인다. 이 신용카드 회사는 최근 호주 음악 시장을 위해 100만 달러의 펀드를 조성했다. 호주는 대대로 스포츠 경기의 메카로 알려졌지만, 최근의 조사 결과 호주 시민과 관광객들은 라이브 공연을 더 많이 본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맥락에서 A카드는 시드니의 유서 깊은 공연장인 셀리나스(Selina’s)에 투자를 결정했고, 앞으로 이런 장소들에 재정적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음악 소비·생산까지 적극 개입
보드카 브랜드인 S도 음악을 활용한 마케팅에 열심이다. 세계 최고의 사용자 규모를 확보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포티파이(Spotify)와 함께 음악 플랫폼에서 성비 균형을 맞추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는 중이다.
S가 론칭한 서비스는 스포티파이 이용자가 지난 6개월간 들은 곡들의 통계를 기반으로, 남성 아티스트 중심의 음악을 듣는 이용자들에게 남녀 성비 균형을 맞춘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한다. 동시에 S는 2020년까지 페스티벌에서 여성 헤드라이너 수를 두 배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이퀄라이징 뮤직(Equalizing Music) 캠페인도 전개하고 있다.
이런 활동들이 흥미로운 건 사운드 마케팅을 넘어 음악 소비 자체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어떤 브랜드의 고객은 단일한 정체성을 가지지 않는다. 온갖 종류의 음악을 소비하는 헤비 유저가 동시에 가벼운 마음으로 위스키를 좋아하는 소비자이거나, 핸드 드립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이런 소비자에게 ‘우리 브랜드는 최고다!’라는 메시지만 주어서는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브랜드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이런 점에서 음악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단지 광고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브랜드의 가치와 고객 경험을 향상시키면서, 궁극적으로는 고객 충성도를 높이는 목표를 가진다. 그중 음악은 가장 직관적이면서 감각적인 요소다. 일차원적으로는 광고에 사용되는 음악을 잘 고르는 일, 고차원적으로는 음악의 소비·생산 환경에 브랜드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식까지. 21세기의 광고음악은 제품이나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정의하는 목적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맥락으로 최근 여러 브랜드가 음악가들과 함께 하는 컬래버레이션도 살펴보게 된다. 신제품의 론칭 파티에는 요즘 힙한 음악가들이 대거 등장한다. 작은 카페는 커피의 질만큼이나 공간에 흐르는 플레이리스트에 신경 쓴다. 소비자들은 자기 취향의 공간을 발견하는 걸 좋아하고, 거기에서 자기 스타일의 음악이 나오면 더 좋아한다. 어쩌면 21세기는 마케팅뿐 아니라 음악 자체의 재정의를 요구하는 시대인지도 모르겠다.
차우진_ 음악평론가. 미디어 환경과 문화 수용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청춘의 사운드> <대중음악의 이해> <아이돌: H.O.T.부터 소녀시대까지…> <한국의 인디 레이블> 등의 책을 썼고, 유료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에서 <음악 산업, 판이 달라진다> 리포트를 발행했다. 현재는 ‘스페이스 오디티’라는 스타트업에서 팬 문화, 콘텐츠, 미디어의 연결 구조를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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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