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친척들과 모인 자리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임대주택에 살면 ‘휴거(휴□□□ 거지)’ 또는 ‘주거(주□□□□ 거지)’, 빌라에 살면 ‘빌거(빌□ 거지)’라 불리며 아이들 사이에 따돌림을 당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임대와 일반 아파트가 같은 단지에 있는 경우 ‘분리 교육’을 위해 놀이터와 출입구 이용을 막거나, 유치원 통학 차량이나 초등학교 학급을 따로 편성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친다는 소리에 마음이 씁쓸했다.
어떤 아파트에 사느냐가 빈부 격차는 물론 신분 격차를 나타내는 지표로 인식되는 것 같아 정말 안타까웠다. 문제는 초등학교 아이들마저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편가르기’에 물들어 상대를 조롱하고 멸시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에 대한 참교육이 절실해 보이지만, 잘못된 사회적 풍토를 우선적으로 개선하지 않는 한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 답답할 뿐이다.
주변 지인들에게 이 같은 현상을 얘기했더니 이제야 알았느냐며 한심스럽다는 표정이었다. 회사의 한 임원은 부동산 소유에 의한 소득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고가의 아파트와 중저가 아파트 같은 주거지로 사람을 나누는 ‘부동산 계급’ 현상이 두드러진 지 오래라고 했다. 그 임원은 최근 한 지상파 방송에서 서울의 한 초등학교가 신입생 반 배정표를 누리집에 게재하면서 일부 신입생 이름 옆에 아파트명을 표기해 논란이 됐던 것이 일부의 사례가 아닌 일상화된 모습이라 아이들 키우기가 너무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예를 들어 ‘강○서(자□)’ ‘강○서(리□□□)’ 식으로 구별해 표기한다고 한다. 그러니 부모와 어린 학생들 입장에서 거주 정보가 매우 민감한 사항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아파트 수준을 평가할 때 브랜드로 판가름하기 시작했다. 그 판가름은 고가 아파트냐, 저가 아파트냐는 분류다. 2000년대 접어들어서 건설사들이 저마다의 욕망을 가득 담은 각종 브랜드를 내놓기 시작한 것이 그 유래가 됐다고 알고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이 모 건설사 CF에서 언급한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문구다.
요즘에는 폐쇄형 아파트까지 등장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내 가족의 안전과 생활권 보장이라는 명분으로 아파트 정문·후문 등 주요 출입문을 제외한 모든 외부를 투시형 담장으로 둘러싸고 외부인의 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특별한 공간으로 만든다고 한다. 이처럼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어른들의 욕망을 결국 아이들이 보고 배우면서 ‘휴거’ ‘주거’ ‘빌거’ 같은 신조어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이런 행동은 타인을 배제하면서 자신의 특별함을 부각하려는 왜곡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지나친 물질주의와 출세주의를 좇는 어른들의 모습이 우리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사회관계를 ‘마음’이 아닌 ‘머리’로 계산하는 잘못된 풍토를 보여주지 않도록 어른들이 노력하면 좋겠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나.
이준호 경기도 파주시 동패로
<위클리 공감>의 ‘감 칼럼’은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바를 적은 수필을 전자우편(gonggam@hani.co.kr)으로 보내주세요. 실린 분들에게는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뉴스레터 구독신청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