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로서의 시작을 알리던 때의 빈센트 반 고흐
‘인생 체험’. 그의 작품을 보고, 만지고, 따라 해보고, 인생사를 듣고, 지냈던 공간을 체험하는 시간. 좋아하는 예술가를 만나는 최고의 방법 아닐까.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다〉 체험 전시는 기존 미술관의 수동적이고 정적인 경험을 몰입형 엔터테인먼트로 변신시켰다. 숱하게 열린 빈센트 반 고흐 전시들과 차별되는 지점이다.
▶한켠에는 고흐가 공부한 원근틀 사용법에 대해 배우며 직접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는 빈센트 반 고흐의 최대 컬렉션을 자랑하는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의 기획력과 기술력의 결과다. 네덜란드 태생의 후기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10년 동안 850여 점의 유화와 1200여 점의 소묘를 남겼다. 이 중 그의 동생 테오가 소장했던 700여 점의 작품과 주고받은 편지들이 ‘반 고흐 미술관’에 영구 전시되어 있다. 이번 체험 전시는 ‘반 고흐 미술관’이 직접 기획하고 제작한 것이다. 후지필름 유럽과 협업을 통해 3D 프린터 기술을 개발, 인터랙티브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고안했다. 체험 전시는 고흐의 삶의 여정을 따라 6개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고흐와의 시간 여행은 그가 남긴 위대한 유산을 확인하며 마무리된다. 한쪽 벽면에서 그가 만들어낸 작품 모두를 모아 놓은 미디어 월을 만날 수 있다.│곽윤섭 기자
영상, 오디오, 소품으로 생생히 재현
전시장에 입장하면 프로젝터 영상이 프랑스 북부의 바람 부는 노란색 밀밭 속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갑자기 총소리가 울린다. 밀밭을 담은 영상은 빈센트 반 고흐의 최후작 중 하나인 ‘까마귀가 나는 밀밭’(Wheatfield with Crows, 1890년,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으로 변한다. 밀밭 위 총소리에 까마귀들이 날아가는 듯한 이 작품은 마치 스스로 자살한 직후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린 듯하다. “나는 내가 느끼는 것을 그리고 내가 그리는 것을 느낀다네” (안톤 반 라파드에게 보낸 편지, 1885년 8월 18일). 모든 관람객에게 제공되는 오디오 가이드에서 고흐가 나직이 말한다.
오디오 가이드는 고흐가 썼던 수백 통의 편지를 토대로 한국인 성우가 녹음했다. 때론 고흐 자신의 입으로, 때론 동생 테오의 입으로, 때론 친구의 입으로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첫 번째 공간은 오디오에서 들려오는 총소리와 함께 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순간을 들을 수 있다. 고흐의 최후작 중 하나인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 보인다.
밀밭을 지나면 조명, 프로젝터 영상, 음향을 통해 네덜란드의 시골 풍경과 농부들이 나타난다. 이 풍경은 곧이어 파리의 거리와 카페로 변한다. 관객들은 고흐의 초기 대표작 ‘감자를 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 1885년,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속에 존재하는 식탁에 앉거나 몽마르트의 탕부랭 카페 의자에 앉아 고흐의 예술가로서 고뇌와 초기의 성취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아직 내 드로잉에서 내가 바라던 바를 보지 못했다. …전진한다는 것은 광부의 노동과도 같아서 원했던 지표만큼 나아갈 수 없구나”(테오에게 쓴 편지, 1883년 3월 11일).
▶두 번째 공간은 고흐가 '화가로서의 시작'을 알리는 공간이다. 큰 스크린과 군데군데 앉아서 체험할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그의 초기작 <감자를 먹는 사람들> 그리고 그가 본 파리의 거리와 카페를 화면으로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마스트엔터테인먼트
관객들은 그가 생전에 거닐었던 카페, 마을과 집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그의 천재적인 상상력과 불안했던 심리를 경험하게 된다. 실제와 똑같이 재현된 소품들과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인간 빈센트 반 고흐’를 한층 가까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프랑스 남부 아를(Arles)의 풍광에 매료된 고흐는 곧 그곳으로 이주해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펼친다. “이런 행운이 찾아오다니. 이곳의 자연은 경이롭게 아름답다. 모든 것이, 그리고 모든 곳이”(테오에게 쓴 편지, 1888년 9월 18일).
▶세 번째 공간은 고흐가 사랑했던 남부 프랑스의 도시 ‘아를(Arles)’ . 그의 시선으로 아를의 풍경을 느낄 수 있다.
출구엔 미디어 월, 모든 작품 한눈에
관객들은 고흐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페이지로 구분되는 ‘아를’에서 탄생한 명작들의 풍경에 직접 들어가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그의 대표작 ‘노란 집’(The Yellow House, 1888년,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에 등장하는 커다란 짚 더미에 누워 머리 위로 하늘의 색이 변하는 것을 보고, 주변으로 스쳐 지나가는 꽃핀 과수원과 추수를 맞이한 밭을 바라본다. 특히 이 섹션에는 고흐의 개성 있는 색채를 칠해볼 수 있는 대형 터치스크린이 마련되어 있다. 인터랙티브 기술을 통해 그의 방식 그대로 붓질을 해볼 수 있다.
이어 펼쳐지는 그의 집 내부. 실제 크기로 재현한 ‘반 고흐의 방’(The Bedroom, 1888년,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에서는 아를에 화가들의 공동체를 세우려던 고흐의 희망과, 그와 교류하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고갱이 갈 거야. 그러면 형 생활에 큰 변화가 생기겠지. 형의 집을 화가들이 편안히 지낼 공간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성공하길 바라”(테오가 빈센트에게 쓴 편지, 1888년 10월 19일).
▶네 번째 공간 한편에는 그림으로만 봤던 고흐의 방을 실제 공간으로 꾸며진 공간이 있다. 그의 침대에 누워보고 방을 둘러보며 그의 삶으로 돌아가 볼 수 있다.
고갱과의 설전 후 조현병이 악화되기 시작한 고흐. 관객들은 고흐가 생레미의 정신병원에서 그렸던 유화와 소묘 속 풍경으로 걸어 들어간다. 정신병원의 작업실 창문 너머로 바깥을 바라보면서, 그가 회복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순간들을 이야기로 듣는다. “나는 억눌린 분노를 작업으로 표출하고 있고, 이것이 내 치료에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들어”(테오에게 쓴 편지, 1889년 9월 5~6일).
이어 생레미의 사이프러스나무와 올리브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고흐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던 프랑스 북부의 바람 부는 언덕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이곳에서 고흐의 삶의 여정은 그의 죽음에 대한 친구들의 회상으로 끝을 맺는다. 고흐와의 시간 여행은 그가 남긴 위대한 유산을 확인하며 마무리된다. 고흐의 작품 세계를 계승하는 화가, 음악가, 영화감독과 배우들이 프로젝터 영상으로 펼쳐진다. 이어 가장 최근 경매되었던 고흐 작품의 낙찰을 선언하는 망치 소리가 들린다.
▶다섯 번째 공간은 고갱과의 충돌로 인한 정신분열로 자신의 귀를 자르고 생레미의 정신병원에서 머물렀던 고흐의 삶을 느낄 수 있다.│마스트엔터테인먼트
“내 그림들이 팔리지 않는다면 나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사람들이 내 작품에서 우리가 쓴 비용, 물감값과 정말 얼마 안 되는 내 최저생활비 이상의 가치를 보는 날이 올 것이다”(테오에게 쓴 편지, 1888년 10월 25일).
아쉬움을 달래듯, 출구를 나서기 전에 고흐가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만들어낸 작품 모두를 모아놓은 미디어 월을 만날 수 있다. 모든 작품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기재된 미디어 월에서 작품을 하나씩 터치해볼 수 있다. 전시장을 나가기 전에 한 번 더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되새겨본다.
글 심은하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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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