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 4월 18일 맨체스터 시티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두 번째 골을 터뜨린 뒤 세리머니 하고 있다.│연합
큰물에서 놀면 달라지는 것인가?
아시아 최고의 공격수 손흥민(27·토토넘)의 숨가쁜 득점 행진에 축구 팬들이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4월 중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2차전 활약은 기폭제였다. 토트넘의 새 구장에서 열린 맨체스터 시티와의 안방 1차전에서 손흥민은 결승골(1-0 승)을 넣었고, 2차전 원정(3-4 패)에서도 두 골을 책임졌다. 합계 4-4 동률이었지만, 손흥민의 발끝에서 터진 1·2차전 3골이 토트넘 4강행의 밑돌이 됐다. 1200만 파운드의 4강 진출 상금도 손흥민이 챙겨준 것과 다름없다.
기록도 쫓아왔다. 손흥민은 세계 클럽 최강전인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총 12골을 산출하면서 역대 아시아 선수 최다골 기록을 세웠다. 유럽 무대 각종 경기 통산 116골(함부르크 2부리그 1골 제외)로 1980년대 독일 분데스리가를 평정한 차범근 감독의 기록(121골)조차 위협하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 기관은 손흥민과 차범근 중 ‘누가 더 뛰어난가?’라는 설문조사까지 했다. 젊은 팬들이 차범근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이뤄져 여론조사의 한계가 있지만 손흥민 열풍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다.
“케인 대신이 아니라 해결사로 우뚝”
‘쏘니’의 무풍질주의 배경은 무엇인가? 〈한겨레〉 유럽통신원 마쿠스 한은 유럽 무대의 경험을 가장 먼저 꼽았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는 말처럼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부닥치면서 손흥민이 자신감과 여유를 갖게 됐다는 얘기다. 3월 국내에서 열린 볼리비아와 콜롬비아 평가전에서 손흥민의 그런 면모가 엿보였다. 마쿠스 한은 “콜롬비아의 하메스 로드리게스나 라다멜 팔카오가 세계적으로 유명해도 손흥민 앞에서는 그저 여러 선수 가운데 하나다. 리버풀이나 맨체스터 시티,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등의 포지션별 세계 톱 선수들과 상대하면서 손흥민의 자신감이 엄청 커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템포 빠른 프리미어리그에서 보면서, 뛰면서 배운 것은 그의 몸값에서 확인된다. 2009년 말 FC서울 유스팀을 거쳐,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19살 이하 팀에 합류한 손흥민은 10년 새 몸값이 130배 뛰었다. 선수들의 시장가치를 평가하는 트랜스퍼마르크트(transfermarkt.com)가 2010년 6월 평가한 손흥민의 가치(50만 유로)는 2019년 4월 현재 6500만 유로(834억 원)로 급등했다. 동급 선수로는 하메스 로드리게스(바이에른 뮌헨·6500만 유로), 알렉산드르 라카제트(아스널·6500만 유로) 등이 있고 가레스 베일(레알 마드리드·7000만 유로)과도 500만 유로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금메달로 병역특례 혜택을 받은 것도 몸값에 반영됐다.
소속팀이나 대표팀의 리더로서 심리적 변화도 손흥민 폭발력의 배경으로 꼽힌다. 토트넘의 주포 해리 케인의 잦은 부상으로 손흥민이 최전방 원톱이나 투톱으로 출전하면서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커졌다. 한국대표팀 주장을 맡을 때 팀원 전체를 신경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토트넘 안에서도 적극적으로 리더 구실을 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손흥민이 케인에 종속된 하위 파트너가 아니라 독립된 골잡이로서의 위상이 굳어지고 있다. 축구 전문 사이트 〈골닷컴〉(goal.com)은 “손흥민이 케인 대신에 나온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손흥민은 해결사로 우뚝하다”고 쓸 정도다.
물론 손흥민도 프리미어리그 적응기의 어려움은 있었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2015년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서 잘나가던 손흥민을 영입한 뒤 좀처럼 출전 기회를 주지 않았다. 자존심 상한 손흥민이 이듬해 감독을 찾아가 “독일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말할 정도로 힘든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공이 없을 때의 움직임과 배후 침투의 타이밍에 대한 포체티노 감독의 주문을 수용했고, 더욱 정진하면서 기회를 노렸다.
포체티노 감독의 능력도 평가를 받을 만하다. 보통 세계적인 팀을 지도하는 사령탑의 가장 어려운 문제는 선수 관리다. 유프 하인케스 전 바이에른 뮌헨 감독은 “바이에른 뮌헨까지 온 선수들에게 가르칠 것은 많지 않다. 대신 톱스타만 모인 팀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결국 포체티노의 신뢰를 얻어낸 것은 손흥민의 노력이었다. 손흥민은 3월 A매치 뒤 영국으로 복귀한 뒤 언론 인터뷰에서 포체티노 감독에 대해 절대적인 믿음을 드러냈다. “직접 경기를 하는 것과 밖에서 보는 것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감독은 선수의 모든 행동을 본다. 만약 어느 지역에서 공을 잡거나 동료를 위해 공간을 만들어줄 때 작은 디테일들이 중요하다. 포체티노 감독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되지 못했을 것이다.”
▶손흥민이 2018년 9월 1일(현지시각)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일본과의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에서 이긴 뒤 환호하고 있다.│한겨레
챔프리그 우승컵 향해 ‘진화 가속도’
아버지 손웅정 씨의 혹독한 기본기 훈련은 손흥민이 변함없이 활약할 수 있는 밑바탕이다. 운동 하나에만 집중하는 손흥민의 집념은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향이 클 것이다. 늘 밝은 얼굴로 동료와 소통하는 손흥민은 그가 톱 선수로 커가는 데 필요한 또 다른 자질이다. 더욱이 팀 내 비중감이 높아지면서 그의 상승세도 가팔라졌다. 이번 시즌 40여 경기 이상 출장하면서 20골 고지를 점령한 것은 그 방증이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근래 보기 드문 명승부였던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토트넘과의 경기 뒤 이렇게 말했다. “축구라는 게 그렇다.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축구는 이변의 스포츠이고 보는 팬들은 즐겁다.
손흥민은 이제 5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무대에 서는 꿈을 꾼다. 네덜란드 아약스와의 4강 1·2차전이 마지막 고비다. 아약스는 토트넘에 비해 선수단 구성이나 경험 측면에서 열세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손흥민이 4강 너머 결승에 진출해 골을 터뜨릴 수 있을지 팬들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예측할 수 없는” 축구이고, “진화 속도가 빠른” 손흥민이라서 기대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김창금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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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