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통해 미래 만나는 뉴트로

2019.04.22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l▶을지로

최근엔 을지로에 자주 간다. 평일에도, 저녁에도 보통 을지로에서 약속을 잡는다. 골목 곳곳에 숨어 있는 가게들을 만나는 게 즐겁기 때문이다. 을지로가 ‘핫 플레이스’가 된 것에 대해선 많은 분석과 의견이 있다. 보통은 ‘레트로’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레트로는 레트로스펙트(Retrospect)의 줄임말로, 과거의 전통을 그리워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상회’ ‘??당’처럼 옛날, 그러니까 1960~80년대의 한국 상점 느낌을 풍기는 경우도 있고, 그보다 더 오랜 과거, 개화기가 연상되는 서체나 가구로 인테리어를 한 경우도 있다. 을지로의 ‘커피한약방’이란 카페는 오래된 자개장을 인테리어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런 장소들은 SNS에 사진을 올리며 ‘인증’하는 곳이 되면서 핫 플레이스로 등극한다.

l▶을지로

그런데 이제는 이것을 레트로가 아닌 ‘뉴트로’라고 재해석하는 분위기다. 뉴트로는 ‘뉴(New)+레트로(Retro)’가 합쳐진 합성어로 과거의 향수 어린 소품이나 기기를 새롭게 재해석하는 문화를 일컫는다. 그러니까 뉴트로는 과거의 것을 그대로 가져오는 게 아니라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면서도 동시대의 테크놀로지가 결합되거나 현대적인 감각이 스며든 결과를 말한다. 최신의 것과 과거의 것이 결합하면서 과거의 향수와 트렌드가 공존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본격적인 의미의 레트로를 구현하려면 먼저 오리지널리티가 필요한데, 2019년에 1950년대 만들어진 오리지널을 구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그러다 보니 레트로는 돈이 많이 드는 고급 취미로 박제화하거나 레트로를 흉내 낸 수준에 그치고 만다. 하지만 뉴트로는 과거와 현재를 적절히 섞어 오래된 분위기를 내는 것이므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취향과 편의성을 결합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l▶을지로

직접체험 선호하는 밀레니얼 세대
이런 경향은 가전제품을 비롯해 인테리어 숍이나 오프라인 행사를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빈티지 디자인의 가구를 비롯해서 복고적인 분위기의 턴테이블에 블루투스 기능을 더하거나, 카세트 플레이어에 USB 녹음 기능이 결합되는 경우도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두 개의 행사가 있다. LP를 테마로 삼은 ‘서울레코드페어’와 독립 출판물을 판매하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그것인데, 이 행사는 지난 몇 년간 꾸준하게 참여자가 늘면서 매년 입장 인원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대중적이지 않지만 중요한 영향력을 지닌 행사로 언급되면서 트렌드를 알려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l▶언리미티드 에디션 포스터

그렇다면 뉴트로 현상은 어째서 이토록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까? 밀레니얼 혹은 제트 세대로 불리는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대체로 자신이 직접 체험하는 경험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대학내일> 부속 연구기관인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키워드 분석 리포트를 보면, 최근의 20대에게 중요한 키워드로 ‘실감 세대’, 즉 ‘오감을 만족시키는 현실 같은 감각에 끌리는 세대’가 등장한다. 어릴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노출되고 가상현실과 같은 공간감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오프라인의 경험이 중요해진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들은 간접 체험보다 직접 체험하는 것을 선호하고, 이 실감의 기준을 디테일에서 찾는다. 맞다. 디테일은 언제나 중요했다. 그러나 이전의 디테일이 완성도를 지향하던 것이었다면 지금의 디테일은 사용자 경험을 향한다. 이 둘은 본질적으론 그 주체가 만드는 사람이냐, 쓰는 사람이냐로 나뉜다. 완성도가 조금 떨어져도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지난 시기, 변화한 키워드나 트렌드를 되짚어보면 2013년 무렵부터 힐링과 취향이 중요해졌다. ‘우리’에서 ‘나’로 가치판단의 기준이 이동하고, 경제 불황으로 연애나 결혼, 주거 같은 것을 포기하는 대신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나 ‘구독’ 같은 행태로 여가와 취미가 중요해졌다. 이런 경향을 지나 2019년 현재, 2030 세대는 누구보다 자존감이 강한 세대가 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물리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혼자라는 감각이 중요해진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과정에서 경험이 중요해지고, 그 경험을 통한 학습이 중요해지는 맥락에서 ‘과거의 것’이 독특한 요소가 된다고 볼 수 있다.

l▶레코드페어 포스터

자존감 바탕으로 공유와 연결
중요한 것은 ‘임팩트’다. 연결된 세계에서는 다수의 대중이 아니라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소수가 중요해진다. 소위 인플루언서라고 불리는 그들은, 자신이 충격을 받은 콘텐츠에 반응한다.
즉, 공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레트로 혹은 뉴트로라는 현상은 결국 이렇게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의 취향과 가치관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취향과 세계관을 기반으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누군가와 연결되는 세계가 바로 현재다.
요컨대 디지털 시대의 본질은 그야말로 ‘연결’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이 ‘연결된 감각’을 확장하고 그걸 통해 브랜딩이든 수익이든 명확하게 얻을 만한 것을 찾아내는 일이 지금 여기의 모두에게 요구되는 것이라면, 과거의 것을 통해 현재(혹은 미래)를 재발견하게 하는 ‘뉴트로 현상’은 콘텐츠가 입체적인 경험으로 수렴되는 과정으로도 보인다. 결국 이런 현상은 지금이 디지털 시대, 모든 것이 연결된 세계라서 가능하다. 지금 우리는 어느 때보다 과거와 현재가 강하게 연결된 시대를 살고 있다.

l차우진_ 음악평론가. 미디어 환경과 문화 수용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청춘의 사운드> <대중음악의 이해> <아이돌: H.O.T.부터 소녀시대까지…> <한국의 인디 레이블> 등의 책을 썼고, 유료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에서 <음악 산업, 판이 달라진다> 리포트를 발행했다. 현재는 ‘스페이스 오디티’라는 스타트업에서 팬 문화, 콘텐츠, 미디어의 연결 구조를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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