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 ‘뚝’, “찾아 오시는 게 돕는 겁니다” “다시 둥지 트는 새처럼…” 희망 ‘싹’튼다

2019.04.15 최신호 보기


l▶산불 피해 이재민들이 4월 6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 화재 현장에서 복구 작업을 하고있다.

“산불 소식 이후 관광객 발길이 뚝 끊겼습니다. 구호물자도 좋고 자원봉사도 좋지만, 지금은 동해안을 찾아주는 것이 지역 주민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국민이 이번 봄에 강원도를 찾으시면 아픔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고성·속초·인제·강릉·동해 등 동해안 5개 시·군에 걸쳐 발생한 산불로 지역 관광산업이 큰 피해를 입었다. 재난급 대형 산불이 났다는 소식에 동해안을 찾으려던 관광객이 확 줄었습니다. 강원도 고성·속초 산불이 완전히 진화된 다음 날인 4월 6일 오후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마을을 찾았다.

l▶4월 5일 오후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에서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들이 구호물품을 나르고 있다.

숙박시설 예약 전부 취소, 식당도 ‘텅텅’
이곳은 드라마 <가을동화> 이후 지역의 대표 관광지가 된 곳이다. 하지만 이날은 한산하다 못해 적막했다.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 류 모(53) 씨는 “평소 토요일이면 관광객으로 넘쳐나 제대로 걷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보다시피 관광객이 없어 썰렁하다. 산불 탓에 관광객이 줄 거라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아바이마을의 명물인 ‘갯배’도 손님을 절반도 태우지 못한 채 운행을 이어갔다. 갯배 선착장 옆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조 모(48) 씨는 텅 빈 자리들을 가리키며 “손님이 반토막 났다. 갯배를 보면 관광객 감소를 실감할 수 있다. 주말이면 줄지어 갯배를 탔는데 지금은 줄 자체가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속초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서 숙박업을 하는 양 모(29) 씨는 “속초 산불 소식 이후 주말 예약이 100% 취소됐다. 심지어 다음 주와 그다음 주까지 예약된 게 10건이 있었는데 이마저도 전부 취소됐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동해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동해시는 지역 대표 관광시설인 망상오토캠핑장이 4월 4일 발생한 산불로 숙박시설과 부대시설, 조경수 등이 완전히 불에 탔다.
지역을 찾는 관광객 발길이 뚝 끊기면서 절박해진 산불 피해 주민들은 동해안을 찾아달라며 호소하고 있다. 망상동 주민 배 모(74) 씨는 “산불 이후 관광객 발길이 뚝 끊겼다. 구호물자도 좋고 자원봉사도 좋지만, 지금은 동해안을 찾아주는 것이 지역 주민들에게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김철수 속초시장도 “이번 산불로 관광객 감소 등 2차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오늘부터 더 많은 관광객이 속초를 방문하는 것이 피해 지역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원 고성·속초·강릉·동해는 동해를 낀 대표적 관광지다. 이번 산불로 큰 피해가 발생했지만, 영랑호를 비롯해 주요 관광지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속초시 청초호와 영랑호 등 인기 관광지는 화마를 비켜갔다. 강릉·동해에서는 추암해변,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헌화로 등을 관광하는 데 문제가 없다. 고성군 화진포와 송지호 등 지역 대표 관광지도 산불 피해와는 무관하다. 4월 27일 개방하는 DMZ(비무장지대) 둘레길은 산불 지역에서 40㎞ 떨어져 정상적으로 개방하는 데 지장이 없다.

l▶4월 5일 오후고성군 천진초등학교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에서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한겨레

설악산 등 주요 관광지는 화마 비켜가
지방자치단체와 정부도 관광객 유치에 팔을 걷고 나섰다. 강원도는 전국 시·도 교육청에 ‘수학여행을 예정대로 와달라’고 요청했고, 여행사에도 도지사 명의로 ‘강원도 여행은 안전하다’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4월 7일 강원도 동해안에서 난 산불로 피해를 입은 관광시설을 방문해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복구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박 장관은 이 자리에서 “정부는 강원도 산불 피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복구·구호비 지원, 각종 세제 감면 등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면서 “관광시설 피해에 대해서는 지자체와 함께 피해 상황을 신속히 파악해 필요한 경우 관광진흥개발기금 상환 유예와 특별융자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수학여행 등 관광객의 예약 취소가 지역 경제의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예정된 강원 지역 방문을 취소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찾는 것이 오히려 지역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정부 차원의 다양한 홍보 매체를 통해 알리겠다”고 말했다.

l▶육군 102기갑여단 소속 부대원들이 4월 8일 강원도 고성군 일대 화재 현장에서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국방부

챙겨온 옷과 음식 나누며 ‘토닥토닥’
한편 화마가 할퀴고 간 강원 동해안의 산불 현장에도 복구를 향한 희망이 움트고 있었다. 산등성이가 여전히 검은 잿더미로 뒤덮여 있고 불에 탄 앙상한 나뭇가지가 그날의 참상을 고스란히 보여주지만, 서로를 위하는 온정이 있어 삶의 희망은 피어났다. 순식간에 삶의 터전을 덮친 화마가 잡힌 지 사흘이 지난 4월 8일 강원 강릉시 옥계면 천남리에서는 산불의 상처를 딛고 피해 복구가 한창이었다. 복구에 나선 주민들의 얼굴은 다소 힘겨워 보였지만 산불 잔해가 치워지는 등 임시 복구작업이 진척되면서 차츰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화마를 피해 마을을 떠났던 까치 부부 한 쌍이 때마침 돌아와 집을 짓느라 부산했다. 마을 앞 논에선 주민들이 산불 잔해를 치우느라 분주한 손놀림을 이어갔다.

“저 새들도 살아보겠다고 불에 타 앙상한 가지 위에 다시 보금자리를 틀며 안간힘을 쓰는데 우리도 훌훌 털고 일어서야지요.” 옥계면 주민 최 모(64) 씨가 입을 앙다물며 이렇게 말했다. 마을회관에 모여 점심 식사를 한 주민들은 일손을 도우러 온 인근 군부대 대원들과 함께 복구에 나서며 구슬땀을 흘렸다. 이들은 마을 어귀에 모여 인근 주민들이 챙겨온 옷가지와 음식을 나누며 잃었던 여유를 되찾고 있었다. 주민들을 위해 국밥을 준비해온 윤 모(59) 씨는 “몇 해 전 태풍으로 모든 것을 잃은 경험이 있는데 어려울 때 이웃끼리 보태는 조그만 힘이 더 크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30가구 가운데 20곳이 전소됐을 정도로 피해가 큰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 마을도 서서히 생기를 되찾으려는 재기의 몸부림으로 분주했다. 산불에 쫓겨 피신한 윤 모(69) 씨는 “당시 불길이 순식간에 번져 세간살이는 말할 것도 없고 아무것도 챙겨 나오지 못했다”며 “불에 탄 집터를 바라보면 눈앞이 캄캄하지만 그래도 묵묵히 재기를 위해 안간힘을 쓰다 보면 희망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l▶고성·속초·인제·강릉·동해 등 4개시·군에 걸쳐 발생한 산불로 동해안을 찾으려던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2018년 11월 강원도 속초시 동명항 양미리 축제장에서 관광객들이 양미리를 구워먹고 있다.│한겨레

기부 동참 줄이어 며칠 새 104억 모여
강풍을 타고 번진 불길이 지나간 강원도 동해안 일대 주민들은 폐허로 변한 집과 논밭 앞에 눈물조차 잊고 주저앉았지만 이들을 위로하는 온정의 손길에 이내 타다 남은 농기구와 가재도구를 챙기며 일어섰다. 일부 이재민은 임시 거주지를 초등학교에서 국가연수시설로 옮기면서 생활 불편을 조금이나마 덜고 복구에 힘을 쏟을 수 있게 됐다. 한순간 보금자리를 잃은 동해시 망상지역 이재민들은 망상초등학교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4월 6일 저녁 한국철도시설공단 망상수련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동해시는 망상수련원에 직원들을 배치해 이재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재민 조 모(66) 씨는 “학교에 머물 땐 씻을 수가 없어 불편했는데 연수원은 물이 잘 나오고, 밥도 해먹을 수 있어 크게 불편하지 않다”고 말했다.
강원 동해안을 덮친 산불로 내려졌던 휴교령이 해제되면서 4월 8일부터는 산불 피해 지역 학생들도 정상 등교했다. 학교로 향하는 길 주변은 이번 화마가 할킨 상처로 가득했지만, 주말을 지내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 학생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산불 피해자 지원을 위한 기부 동참 행렬도 이재민들에게 힘을 보태고 있다. 재난·재해 구호단체인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는 4월 8일 오후 3시 기준 모금액이 104억 3600만 1435원(16만 895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강원도의 봄날은 새까만 재가 됐지만, 자발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시민들이 있기에 희망도 싹을 틔웠다.

속초·고성/박수혁 <한겨레> 기자
강민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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