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5일 열린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삼성생명에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한 KB스타즈 박지수가 MVP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한국여자농구연맹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을 ‘가을야구’라고 하듯이 프로농구와 프로배구 포스트시즌을 ‘봄농구’ ‘봄배구’라고 부른다. 이번 시즌 프로농구와 프로배구는 이제 남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만 남겨둔 채 막을 내렸다. 이번 시즌에도 농구와 배구 모두 진기록이 쏟아졌지만, 여자프로농구(WKBL)와 프로배구(KOVO) 여자부에서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를, 그것도 두 번 모두 만장일치로 휩쓴 선수가 같은 시즌에 탄생해 눈길을 끈다. 화제의 주인공은 여자프로농구 청주 KB스타즈 박지수(21)와 프로배구 여자부 흥국생명 이재영(23)이다.
2016년 10월 17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2017 WKBL 신입선수 선발회. 6개 구단 관계자들의 관심은 온통 분당경영고 3학년 박지수에게 쏠렸다. 행운의 팀은 14.3%의 확률을 뚫고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은 청주 KB스타즈였다. 박지수는 198㎝의 큰 키에 유연성과 스피드까지 갖춰 1970~80년대 여자농구 스타 박찬숙 이후 최고의 센터로 꼽혔다. 이미 고3 때 국가대표 주전으로 활약하며 2016 리우올림픽 예선에서 경기당 평균 7득점, 10.8리바운드로 리바운드 부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재영도 일찌감치 한국 여자배구를 이끌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진주 선명여고 3학년 때인 201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흥국생명에 지명됐다. 세터인 쌍둥이 동생 이다영은 전체 2순위로 현대건설 유니폼을 입었다.
둘 다 유전자가 탁월하다. 박지수의 아버지는 키 2m의 농구 국가대표 센터 출신 박상관 씨이고, 어머니는 청소년 배구대표 출신 이수경 씨다. 어머니도 키가 180㎝다. 이재영의 아버지는 86서울아시안게임 육상 해머던지기 국가대표 이주형 씨이고, 어머니는 88서울올림픽 여자배구 국가대표 세터 김경희 씨다. 박지수와 이재영은 기대대로 프로 첫 시즌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이어 박지수는 2년 차 때 리바운드상과 베스트5 등 5관왕을 차지했고, 이재영도 3년 차 때 정규리그 MVP에 올랐다.
둘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똑같이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박지수는 지난 시즌이 끝난 뒤 뜻하지 않게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2017 시즌 우승팀 미네소타 링스에 2라운드 5순위(전체 17순위)로 지명됐다. 정선민 이후 여자프로농구 사상 두 번째 영예다. 박지수는 미네소타의 트레이드로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에서 한 시즌을 뛴 뒤 2018년 8월 인도네시아로 날아가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남북 단일팀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결승에서 중국에 아깝게 졌지만 단일팀 ‘코리아’에 값진 은메달을 선사했다. 하지만 비시즌 때도 쉼 없이 달린 탓에 피로가 누적됐다. 시즌 초반 소속팀 KB도 우리은행에 1, 2라운드에서 연달아 패했고, 한때 3연패에 빠지기도 했다. 박지수는 “너무 힘든 데다 부모님과 의견이 안 맞아 속상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했다.
이재영 역시 프로 3년 차이던 2016~2017 시즌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고도 챔피언결정전에서 IBK기업은행에 쓴잔을 들며 통합 우승에 실패한 뒤 시련이 닥쳤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부상과 체력 문제로 국가대표 차출을 거부했다가 여론의 비난에 시달렸다. 결국 지난 시즌 팀도 꼴찌로 추락했다. 박미희 감독이 사퇴까지 생각할 정도로 힘든 시기였다.
▶3월 27일 열린 프로배구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시상식에서 MVP를 차지한 흥국생명 이재영이 환하게 웃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방탄소년단 콘서트가 확실한 동기”
그러나 시련은 영광을 위한 ‘복선’이었다. 박지수는 이번 시즌 정규리그에서 평균 13.1득점(10위), 11.1리바운드(3위)로 ‘외국인 선수급’ 활약을 펼치며 팀을 순위표 맨 위에 올려놓았다. 정규리그 시상식에서는 기자단 투표 만장일치 MVP를 비롯해 무려 6관왕에 올랐다. 이어진 용인삼성생명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는 3연승을 거두며 소속팀 KB를 여자프로농구 출범 21년 만에 처음으로 정상에 올려놓았다. 박지수는 챔프전 3경기 모두 20득점 이상, 10리바운드 이상을 해내며 역시 만장일치 MVP에 올랐다.
그는 최연소 국가대표, 최연소 트리플더블, 최연소 1000리바운드와 100스틸, 최연소 MVP까지 새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방탄소년단’ 열성 팬인 박지수는 “방탄소년단 콘서트 티켓을 예매했는데, 챔피언전이 5차전까지 가면 우승도 장담할 수 없고 콘서트에 못 갈 수 있어 3차전에서 끝내고 싶었다. 방탄소년단 콘서트가 우승의 확실한 동기부여가 됐다”고 말해 큰 웃음을 주었다.
이재영 역시 아픈 만큼 성숙해졌다. 타고난 감각에 노련미까지 더해진 그는 이번 시즌 코트에서 맹위를 떨치며 정규리그에서 624득점을 기록해 전체 득점 2위, 국내 선수 1위에 올랐다. 퀵 오픈과 시간차 공격 성공률에서는 각각 전체 1, 2위를 기록했다. 그의 진가는 챔피언전에서 더욱 위력을 떨쳤다. 매 경기 20점 이상의 득점을 책임져 팀 동료인 외국인 선수보다도 많은 득점을 올리며 흥국생명이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통합 챔피언에 오르는 데 일등 공신이 됐다. 흥이 넘치고 배구를 즐기는 그는 챔피언에 오른 뒤 트로피를 들고 흥겨운 댄스로 모두를 즐겁게 했다.
내년 도쿄올림픽 활약 기대
이재영은 챔피언전과 정규리그 기자단 투표에서 잇따라 만장일치 MVP에 선정되며 최고의 영광을 누렸다. 그는 정규리그 시상식 무대에서 소감을 말하던 도중 “작년에 꼴찌를 하면서…”라고 말한 뒤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재영은 김연경, 황연주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신인상과 정규리그 MVP, 챔프전 MVP를 모두 석권했다. 특히 그는 이번 시즌 중에 열린 올스타전에서도 MVP에 올라 한 시즌 ‘MVP 3관왕’을 차지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이재영과 박지수의 존재는 국제 무대에서 침체에 빠진 여자배구와 여자농구에 큰 활력소가 되고 있다. 여자배구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한국 구기종목 사상 첫 메달(동메달)을 땄고, 여자농구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 한국 구기종목 사상 첫 은메달을 일궜다. 그러나 여자배구는 2016년 리우올림픽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여자농구는 2012년 런던올림픽과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본선 무대조차 밟지 못했다. 하지만 내년 도쿄올림픽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김연경의 대를 잇는 ‘핑크 폭격기’ 이재영과 ‘국보 센터’ 박지수의 존재 덕분이다.
김동훈_ <한겨레>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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