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과 장식 무죄 증명

2019.04.15 최신호 보기


l▶타투 아티스트 라일 터틀은 얼굴을 제외하고 온몸에 문신을 했다.

3월 26일 타투 아티스트(tattoo artist) 라일 터틀(Lyle Tuttle)이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는 부고를 신문에서 보았다. 기사는 터틀이 “뱃사람이나 범죄자의 세계에 머물러 있던 타투를 대중 속으로 확산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전한다. 한국에서는 타투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은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나에게는 아직도 ‘타투’라는 말보다 ‘문신’이라는 말이 더욱 친근하다. 문신은 깡패의 상징이었다. 나도 본 기억이 난다. ‘일심(一心)’ 또는 ‘차카게 살자’ 같은 문구가 아주 조잡한 글씨체로 쓰인 거친 사내의 팔뚝을 말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경고했다. “깡패들이 몸에 문신을 하는데, 한결같이 늙어서 후회한다더라. 그러니까 너는 절대로 문신을 하지 마라.” 어린 시절까지만 해도 나에게 문신은 범죄자의 표식이었다. 영화에서도 등판에 용 문신을 한 조폭이 목욕탕에 등장하는 장면은 클리셰일 정도다.

l▶아돌프 로스가 디자인한 1909년에 완공된 로스 하우스는 건물 파사드에 장식이 전혀 없다. 장식적인 주변 건물과 대조된다.

범죄와 아트 사이… 베컴이 바꾼 인식
그런 이미지를 바꾼 대표적인 인물이 등장했다. 데이비드 베컴이다. 영국의 잘생긴 축구 선수다. 그가 조직폭력배들이나 할 법한 현란한 문신을 팔과 가슴에 한 사진을 보았다. 프린스 필더라는 메이저리그의 야구 선수는 프린스답게 목에 ‘왕자’라는 한글 문신을 했다. 이건 귀엽기까지 하다. 내 주변 사람 중에서도 문신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대학 후배가 어느 날 보니 팔에 작은 문신을 한 것이다. 그렇게 미디어에 유명 스타들과 평범한 일반인까지 문신을 하는 모습을 보자 문신은 곧 범죄자의 표식이라는 등식이 깨졌다.
사람 몸에 문신하는 것을 범죄자들의 표식이라고 여긴 것처럼 물건에 장식하는 행위를 혐오스럽게 본 일군의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20세기 초에 등장했다. 대표적 인물이 아돌프 로스다. 그는 ‘장식과 범죄’라는 제목의 유명한 글로 전통적으로 건축과 공예품에 해왔던 장식 행위를 고발했다. 단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인 차원에서 장식을 비난한 것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먼저 장식은 기능과 무관한 것이다. 장식이 없어도 그 물건이 작동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다. 장식은 부차적인 것으로 대개 그것을 소유한 자의 허영심을 채워준다. 둘째, 장식은 장인의 노동시간을 늘린다. 이것은 노동력의 낭비이며 비용의 상승을 낳는다. 마지막으로 장식은 실용성과는 무관한 것이므로 재료의 낭비이기도 하다. 장식에 사용된 재료를 그는 ‘능욕당한 재료’라는 의인법까지 써가며 장식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l▶대량생산된 권총의 표면을 장식했다. 장식은 정체성의 표현이다.

로스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장식 행위의 비도덕성을 증명하고자 좀 더 자극적인 비유를 든다. 그것은 장식이 사람의 몸에 하는 문신과 다를 바 없다고 한 것이다. 여전히 제국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유럽 건축가의 눈에 문신은 아프리카 대륙에 사는 비문명인, 즉 야만인의 행위로 비춰졌던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인종주의 시각이 담겨 있다. 여기에 더해 범죄자의 문신도 장식과 연관시켰다. 결국 디자인에서 장식을 한다는 것은 야만인이나 범죄자의 문신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함으로써 그것이 경제적 손실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범죄행위임을 부각한 것이다. 그는 미래에는 장식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1920년대 활동했던 급진적인 모더니스트들은 아돌프 로스의 강령을 더욱 논리적으로 밀어붙였다. 모던 건축의 개척자인 르 코르뷔지에는 무장식이 기능적이어서 우수할 뿐만 아니라 위생과 건강에도 좋다는 논리를 들고나왔다. 독일의 모던 건축 디자인 학교인 바우하우스 역시 장식성을 거부했다. 영문 알파벳에 들어가는 세리프조차 장식적이라고 판단해 세리프가 없는 산세리프 글자만을 쓰자고 주장했다. 20세기 전반기까지만 해도 그들의 노력은 사회적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대중이 아직 무장식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무장식의 깔끔한 표면을 자랑하는 모더니즘 건축과 가구를 받아들이자 무장식은 순식간에 보편적인 디자인 언어가 되었다. 아돌프 로스처럼 장식 행위를 범죄로 여기지는 않아도 졸부의 저속한 취향으로 보는 경향이 나타나기까지 했다. 무장식을 좋아한다는 건 절제와 연관된다. 그것은 값비싼 장신구로 남들 앞에서 잘난 척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짓이라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l▶스텔라 매카트니가 디자인한 무지개 케이스와 줄리엣 로즈 케이스

무장식 역시 취향 과시하는 자랑
하지만 알고 보면 무장식 역시 일종의 자랑이기도 하다. 좀 더 진보적이고 세련된 취향을 과시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무장식이 지배적인 취향이라고 하더라도 장식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장식이란 일종의 정체성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깔끔한 표면의 극도로 절제된 제품으로 생산되더라도 소비자는 그것을 자기 취향에 맞는 케이스로 감싼다. 이때 케이스는 깨지기 쉬운 액정을 보호한다는 기능을 갖는 것 같지만, 그보다는 케이스의 질감과 색상, 형태, 거기에 새긴 무늬와 그림의 다양성으로 소비자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상징적 기능이 때로는 더 절실히 요구된다. 그것은 마치 옷을 입는 것과 비슷하다. 공장에서 생산된 스마트폰은 단일 모델이기 때문에 케이스라는 옷을 입혀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군인에게 지급되는 총은 대량생산된 일률적인 총이지만 장군이 그립 부분을 상아 같은 값비싼 재료로 튜닝을 하거나 화려한 패턴이나 상징적인 동물을 새겨서 자신의 계급을 표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아프리카인들의 문신을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럽이나 동북아시아에 사는 사람들은 옷과 모자, 장신구 등으로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굳이 몸에 문신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더운 곳에 사는 사람들, 더구나 기술과 재료가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헐벗은 채로 다니는 것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그들은 지위를 표시하거나 전투를 할 때 적을 위협할 목적으로 문신이 필수적인 것이다. 그들에게 문신은 때로는 임금이 입는 곤룡포이며, 때로는 군인들이 입는 갑옷이나 군복인 것이다.
현대사회의 건축과 사물들은 장식 없이 제공된다. 아파트의 벽은 깔끔하다. 하지만 그 위에 그림을 걸고 가족사진을 건다. 이것은 몸에 문신하는 것과 비슷한 동기를 가진 것이다. 자신의 고유한 공간임을 표시하고 가족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이다. 회사에 있는 책상 위에 자기가 좋아하는 문구류나 기념이 될 만한 물건을 올려놓는 일도 비슷하다. 장식을 하는 것과 문신을 하는 것은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동기가 비슷하다. 장식이 사라질 것이라는 아돌프 로스의 예견은 빗나갔고, 라일 터틀은 타투 ‘아티스트’로 평가받았다. 문신과 장식이 무죄임이 증명된 것이다.

l김신_ 홍익대 예술학과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하고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 대림미술관 부관장으로 일했다. 현재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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