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식이·운동 치유… 숲에 건강 있다

2019.04.04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l▶국립산림치유원 솔향기 치유 숲길에 자리 잡고 있는 하늘로 힘차게 뻗은 나무들

“자! 먼저 가벼운 퀴즈 하나 드릴게요. 참나무를 왜 참나무라고 부를까요?”
순간, 조용해진다. 다들 나무만 바라본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봄바람을 탄 나무의 녹색이 눈부시다. “간단해요. 나무가 쓸모가 많아 ‘진짜 나무’라고 해서 참나무인 겁니다.”
산림치유사의 재치 있는 질문과 답변에 분위기가 더욱 밝아진다. 몸이 뒤틀린 신체 장애인을 태운 휠체어를 끌고 참나무 앞에 선 산림치유사는 주변을 여유 있는 눈길로 살피며 다시 질문을 던진다.
“이 산에는 모두 다섯 종류의 참나무가 있어요. 바로 이 참나무는 신갈나무로 불리는 참나무입니다. 그럼 왜 신갈나무라고 부를까요?” 또 묻는다. 어렵다. 휠체어 뒤에 서서 설명을 듣고 있는 이들은 지체가 부자연스럽다. 대부분 지적장애 성인들이다. 정상적인 등산이 어렵기에, 나무 데크가 깔려 있는 이곳 국립산림치유원에 왔다. 또 조용해졌다. 다시 친절한 설명이 시작된다. “저 나무 잎이 크고 단단해 옛날에 짚신 바닥에 깔고 다녀서 ‘신깔’나무라 했는데 지금은 신갈나무로 변한 것입니다.” “아!” 작은 탄성이 터진다.

l▶인간에게 피톤치드라는 유익한 물질을 내뿜는 푸른 나뭇 잎

나무 이름 유래 들으며 탄성
산림치유사는 “이제 다시 올라갑시다” 하며 휠체어를 민다. 다들 따라간다. 표정이 모두 환하다. 이렇게 산속에 파묻혀본 적이 언제였나? 절로 흥얼거린다. 가파르지 않은 나무 데크는 산모퉁이를 돌고 돌아 계속된다. 3월 19일 오전, 경북 영주에 자리한 국립산림치유원의 마실 데크로드를 따라 60여 명의 ‘겨자씨 사랑의 집’(경기도 파주) 회원들이 즐거운 산속 나들이를 했다. 2㎞의 마실 데크로드는 산을 편하게 오를 수 있게 나무로 계단이 없이 완만한 경사로 만든 마실 길로 휠체어를 타고 오를 수도 있고, 다리가 불편한 이들도 부담 없이 산림이 주는 혜택을 맛볼 수 있다.
군데군데 설치된 전망대에서는 숨을 고르며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서로서로 휴대전화로 산림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준다. 다람쥐가 데크 옆의 나무에서 이들을 보고 인사를 한다.

l▶산림치유사 김우열 씨가 방문객의 휠체어를 밀며 나무 데크를 이용해 산을 오르면서 숲을 설명하고 있다.

전날 18일 오후에는 어르신 30여 분이 이 데크를 따라 산에 올랐다. 충주의 한국 치매예방협회에서 온 어르신들은 산 아래에서 꺾어진 나무를 지팡이 삼아 결의를 가다듬는다.
“천천히 오를 겁니다. 힘든 어르신들은 무리하지 마시고 그 자리에서 앉아 쉬세요. 저희가 안전히 모실게요.” 안내하는 복지사들과 산림치유사가 신신당부를 한다. 대부분 여성 노인들이다. 표정은 살짝 흥분된 상태다. 산림치유사의 지도에 따라 산 아래 평지에서 몸을 푼다. 허리를 유연하게 만들고, 지팡이를 도구 삼아 허벅지 근육과 종아리 근육을 푼다. 마치 수학여행 출발하는 학생들처럼 들뜬 기분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경험이 많은 여성 산림치유사는 그룹을 둘로 나눈다. “앞에는 끝까지 갈 분들입니다. 천천히 걷거나 도중에 포기할 어르신들은 뒤 그룹에 서세요.” 어르신들은 분주히 자신의 위치를 잡는다. 이제 출발이다. 주변의 나무들을 보며 가벼운 발걸음이 이어진다. 출발한 지 10분 만에 절반의 어르신들이 포기를 선언한다. “어휴, 고되다. 여기서 기다릴게요.” 힘차게 잡았던 지팡이가 무색하다. 이제 몸이 말을 정말 안 듣는다.
<토지>의 소설가 박경리(1926~2008) 선생은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언제나 내 마음대로 움직일 줄 알았던 몸이 나이가 드니 기습적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이제 몸을 움직이고, 걷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사람들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를 걷는 것이 기적이라고 하지만, 인간이 땅에서 바르게 걷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l▶산림치유사 김미선 씨가 숲속에서 크게 웃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이젠 웰빙 넘어 내추럴빙 시대
앞 그룹의 어르신 10여 분은 평소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 덕분인지 데크를 걷는 발걸음이 사뿐사뿐하다. “자, 이제 그만 걷고 여기서 숲의 소리를 들어봅시다.”
산림치유사는 데크 중간의 넓은 공간에 어르신들을 모이게 한다. “숨을 크게 쉬어보아요. 맑은 산소가 여러분의 온몸을 깨끗하게 정화시켜줄 겁니다.” 어르신들은 편안한 표정으로 숨을 크게 들이쉰다. “나무는 이산화탄소를 필요로 하고, 산소를 내뿜어줍니다. 인간은 산소를 필요로 하고, 이산화탄소를 내뿜어줍니다. 서로 보완하는 생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숲속에 들어오면 정신이 맑아지고 건강해집니다.”
산림치유사는 능숙하게 어르신들을 움직이게 한다. “두 분씩 짝을 지어서 운동해봐요.” 서로 팔을 당기고, 어깨를 주무르고, 마주보고 웃는다. 한 어르신이 크게 소리친다. “오늘 영감 저녁해줄 걱정 안 해서 좋다.” 평생 해온 할아버지 식사 준비 부담에서 오늘은 해방이다. 흥이 오른 한 할머니가 노래를 부르며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한다. 금방 전염된다. 모두들 박수 치며 어깨를 덩실덩실 흔들며 합창을 한다. 할머니들의 합창은 숲속의 저녁노을과 잘 어울려 퍼져나간다.

l▶숲속을 단순히 걷는 것만으로 마음과 육체에 평온과 건강을 가져다준다.

산림치유사는 허브 가루를 할머니들에게 조금씩 나눠준다. “풀잎의 향기를 깊이 들이마시세요. 폐 속이 맑아집니다.”
이제는 기념 촬영 시간. 다들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리고 환하게 웃는다. 함께 온 복지사가 “김치”라고 말하며 셔터를 누른다. “잠깐만요, 내 핸드폰으로도 찍어줘요.” 집에 있는 손주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휴대전화를 급히 건넨다. 다시 포즈를 잡는 어르신들. 조금도 귀찮지 않다. 이제 웰빙(well-being)을 넘어 내추럴빙(natural-being) 시대다. 자연과 더불어 살려고 애를 쓴다. 숲속에서 사는 이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인기다. 문명시대의 반란이다. 하지만 현실은 숲에 가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산림청 산하 한국산림복지진흥원의 국립산림치유원(원장 고도원)은 경북 영주시 봉현면과 예천군 효자면 일대 153㏊에 걸쳐 조성된 산림 복지 시설이다. 산림 휴양과 산림 치유 체험, 연구개발 등을 한다. 2007년 12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 사업으로 채택돼 산림청이 1500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2012년 10월 착공해 2015년 11월 완공했다. 소백산 자락이다. 건물이 들어선 곳은 대부분 이전에 사과밭이어서, 아직은 숲이 무성하지 않다. 치유원에는 산림치유문화센터, 수(水) 치유센터, 치유정원, 치유 숲길, 숙박시설 등을 갖춘 건강증진센터가 있다. 치유 숲길은 소백산 국립공원, 묘적봉, 천부산 권역에 걸쳐 길이가 50㎞에 이른다.

l▶숲속에 오른 어르신들이 가벼운 몸 운동을 하며 파안대소하고 있다.

생리·심리적 효과 활용 프로그램 다양
강덕호(30) 씨는 이곳에 근무하는 산림치유사 30여 명 가운데 한 명이다. 경북대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숲해설가를 하다가 산림치유사 자격증을 취득해 이곳에서 근무 중이다.
“숲에 오래 머물면 심리적으로 편해지고, 신체적으로 건강해져요. 특히 나무가 내뿜는 휘발성 향기 물질인 피톤치드가 면역력을 높이고 살균 효과를 줍니다.”
피톤치드(phytoncide)는 식물이라는 뜻의 ‘파이톤(phyton)’과 죽이다라는 뜻의 ‘사이드(cide)’가 합쳐진 말이다. 숲속에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숲 특유의 냄새가 바로 피톤치드 냄새이고, 이것은 수목이 주변의 해로운 미생물을 죽이는 물질이라는 것이다. 숲의 효능은 1990년대 초 미국 뉴욕의 한 병원에서 당시 창궐하는 폐결핵 환자를 수용할 병실이 부족해 병원 뒤뜰 숲에 임시로 텐트 병동을 만들면서 알려지게 됐다. 이상하게도 숲속에 수용한 환자들의 치료 효과가 크게 높았고, 이런 사실을 학술지에 보고하면서 숲의 치료 효과가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고 한다.

글·사진 이길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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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도원 국립산림치유원 원장 인터뷰 │
“아직은 미진하나 산림복지 요람으로”


“산림치유원은 기존의 수목원에 비해 한 단계 업그레이된 힐링 공간이어야 합니다.”
2018년 10월 국립산림치유원 2대 원장으로 취임한 고도원(67) 씨는 자신의 늦깎이 새로운 도전에 흠뻑 몰입돼 있었다. 지난 15년간 충주에서 힐링 공간인 ‘깊은산속 옹달샘’을 운영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국립산림치유원을 ‘산림복지’의 요람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다.
3월 19일 산림치유원에서 만난 고 원장은 “소백산맥의 중심인 영주에 위치한 산림치유원은 풍광이 뛰어나고 멋진 자연의 기운도 느낄 수 있어 치유원 입지로 최고”라며 “풍기 인삼을 비롯해 좋은 식재료가 많아 치유 음식을 개발해서 전국에 보급하고 지역 경제에도 도움을 줄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짧은 역사(3년)의 산림치유원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몇 가지 더 다듬고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선 고 원장은 불편한 ‘동선’을 꼽았다. 숙소와 식당, 치유 장소가 떨어져 있어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또 산림치유원 진입구의 썰렁한 분위기도 바꾸고 싶단다. 산림치유원의 이름에 걸맞게 우거진 숲이 방문객을 맞아야 하는데, 지금은 아스팔트와 건물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경북도에 도로 확장이나 인도 개설로 버려지는 나무들과 이식 가능한 아름드리나무 150주를 확보해 이식하고 있습니다.”
산림치유사들의 전문성도 더욱 강화 할 계획이다. “민간 치유 단체인 ‘깊은산속 옹달샘’을 운영하며 쌓은 노하우를 쏟아부어 산림치유사들에게 밀도있는 심화교육과 힐링 전문가로서의 소양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고 원장은 다양하고 효과적인 숲속 힐링 프로그램을 모색하고, 숲에 대한 연구 기능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식당의 음식도 개선할 과제라고 한다. 자연식이나 유기농 등 몸에 약이 되는 음식을 제공해야 치유원으로서의 명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 원장은 올해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점을 기념해 국립산림치유원에서 독립유공자 등을 대상으로 ‘명예의 숲 캠프’를 무료로 운영할 계획이다. 1500억 원을 들여 만들어진 국립산림치유원이 대중에게 다가서기 위해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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