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곡 구석기 유물과 일본 학자 유적 조작

2019.05.06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l▶호모 에렉투스(직립원인) 여자와 아이들 상상도│한겨레

2000년 11월의 일입니다. 일본의 재야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가 가짜 석기를 땅에 파묻는 모습을 촬영한 몰래카메라 사건이 보도되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후지무라 신이치는 70만 년 전 지층에 몰래 석기를 파묻어놓고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행세했던 것이죠. 이것이 일찌감치 폭로되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일본 고고학계가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될 뻔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이게 다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입니다. 그것도 이웃 나라 한국에 대한 의미 없는 열등감에서 비롯된 일이죠. 사건은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 여인이 주한 미 공군 기상예보 부대에 근무하는 미국인 애인 그렉 보웬과 함께 한탄강변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여인의 눈에 희한한 돌멩이가 하나 띄었습니다. 누군가 일부러 깎아낸 것처럼 보였습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그냥 지나치고 데이트에 집중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렉 보웬은 미국 애리조나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사람입니다. 돌을 숙소로 가져온 보웬은 당시 한국의 대표적인 고고학자인 김원룡 서울대박물관장에게 보냈습니다. 김원룡 교수는 그것이 구석기시대의 주먹도끼인지 한눈에 알아보았고요.

l▶50만 년 전의 ‘베이징 원인’ 두개골 화석│한겨레 

27만 년 전 주먹도끼에 센세이션
침팬지와 인류가 같은 조상에서 갈라진 때는 700만~500만 년 전 일입니다. 그때부터 사헬란트로푸스, 아르디피테쿠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같은 인류가 등장하죠. 그러다 나중에는 호모 OOOO이라는 인류 종이 나타나잖아요? 이름 앞에 ‘호모’가 붙는다는 것은 구석기인이라는 뜻입니다. 유골 화석과 함께 석기 화석이 나오면 속명으로 호모를 쓰는 것이지요. 이때가 대략 250만 년 전입니다.
그러니까 구석기시대는 250만 년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구석기시대는 250만 년 전에서 10만 년 전까지의 전기, 그 후 4만 년 전까지의 중기 그리고 1만 년 전까지의 후기로 나뉩니다. 그 이후에는 농사를 짓는 신석기시대가 시작됩니다. 김원룡 교수는 연구 끝에 주먹도끼의 연대가 무려 27만 년 전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전기 구석기시대의 유물인 것이죠. 물론 한반도에서는 70만 년 전부터 구석기인들이 살고 있었으니까 별로 놀랄 일은 아닙니다.
놀랄 일은 따로 있었죠.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에서 나온 주먹도끼의 모습이 놀라웠습니다. 돌을 깨고 양면을 잘 다듬어 날카로운 날이 서게 만들었거든요. 이런 석기를 ‘아슐리안 주먹도끼’라고 합니다. 프랑스의 생 아슐 유적에서 처음 발견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죠. 유럽인들은 아슐리안 주먹도끼에 대해 자부심이 큽니다. 주먹도끼는 나무를 다듬고,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발라내고, 뼈를 부수는 데 썼습니다. 말하자면 ‘구석기시대의 맥가이버 칼’이었던 셈이죠. 그리고 이것은 인도 동쪽에서만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아시아의 동쪽 끝에 있는 한반도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이 일어났습니다. 센세이션이라는 사실이 더 놀랍습니다. 프랑스 지역에 살던 구석기인들이 만들 수 있었던 주먹도끼를 한반도에 살던 구석기인이 만든 게 뭐가 대단한 일일까요? 이게 무슨 특별한 기술이라고 특정한 발명가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전수되었을까요? 수많은 곳에서 우연히 발생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생각해보면 별것 아닙니다.
한국에서 중요한 유물이 나왔으니 일본 고고학자들도 일본열도에서 발굴을 열심히 했겠죠. 당연히 성과도 있었습니다. 4만 년 전 구석기를 발견했지요. 그런데 후지무라 신이치는 한반도에서는 70만 년 전에 구석기 문화가 시작되고 27만 년 전 아슐리안 주먹도끼까지 나오는데, 일본열도에서는 고작 4만 년 전 구석기가 나왔다는 게 참을 수 없었나 봅니다. 그래서 저지른 일이 바로 70만 년 전 지층에 석기를 숨긴 것이지요. 하지만 다른 학자와 문화재 담당 기자들이 바보가 아니잖아요. 금방 들통나고 말았습니다.

l▶전곡리 퇴적층에서 무더기 발굴된 주먹도끼들. 뾰족한 날의 양면이 인공적으로 잘 다듬어진 아슐리안형 돌도끼의 전형적인 모양새다.│서울대박물관

호모 에렉투스일 뿐 조상과 달라
구석기 유적을 조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설마 우리가 구석기인들보다 손재주가 없을 리는 없잖아요. 저도 얼마 전에 아슐리안 주먹도끼를 하나 선물받았습니다. 모조품이 아닙니다. 2019년에 제작된 진품입니다. 전곡 선사박물관의 이한용 관장님이 한탄강에서 주워온 규암으로 몇 분 만에 뚝딱 만들어주신 것이지요. 전곡 선사박물관에서는 구석기인들처럼 불을 피우고 석기를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최고의 선사박물관에 최고의 관장님이 계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저는 지금 어처구니없는 일로 조작을 한 일본의 재야 학자를 비웃으려는 게 아닙니다. 사실 우리 모두 그와 같은 마음을 품고 있거든요. 중국의 저우커우뎬(周口店) 유적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아주 발달한 구석기 문화를 소유한 베이징 원인(原人)의 유적이 있는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곳이죠. 베이징 원인은 40만~50만 년 전에 살았는데 그때 이미 불을 일상적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인지 중국인들은 베이징 원인에 대해 자부심이 아주 큽니다. 심지어 내 앞에서 베이징 원인이 중국인의 조상이라고 큰소리를 치는 중국인 학자도 있었지요. 과연 그럴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입니다. 베이징 원인은 호모 에렉투스이고요. 지금 중국 사람들은 호모 사피엔스입니다. 호모 에렉투스가 중국인의 조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전곡리에서 나온 아슐리안 주먹도끼를 만든 사람들도 호모 에렉투스입니다. 그들 역시 우리 조상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와 같은 땅에 먼저 살았던 다른 종의 인류일 뿐이지요. 일본에서 오래된 구석기 유적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것 역시 현생 일본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원인(猿人)이라고 합니다. 호모 에렉투스 역시 원인이지만 한자가 다릅니다. ‘原人’이죠. 네안데르탈인은 구인(舊人) 그리고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신인(新人)입니다. 모두 다른 종류의 사람들입니다. 자기네 땅에서 살았던 호모 에렉투스의 유물을 가지고 우쭐대거나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먹도끼를 만들었던 호모 에렉투스들이 품은 생각을 함께 나누면 될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니까요. 모두 사이좋게 지냅시다.

l이정모_ 현재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생화학을 전공하고 대학교수를 거쳐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을 지냈다. <250만 분의 1>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내 방에서 콩나물 농사짓기> 등 읽기 편하고 재미있는 과학 도서와 에세이 등 60여 권의 저서를 냈고 인기 강연자이자 칼럼니스트로도 맹활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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