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 씨가 4월 18일 오후 데뷔 40주년 기념전 <다시, 건너가다>가열리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태춘과 박은옥은 한국의 문화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이것은 그들이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태도뿐 아니라 음악적인 면도 포함한다.
1979년에 발표한 정태춘의 1집 <시인의 마을>은 당대 유행하던 한국의 포크송 대부분이 미국 곡의 번안이던 것에 비해 민요적인 성격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특히 가사에서는 대중적 공감을 건드리는 부분이 많아 대중과 미디어의 관심을 얻게 된다. 가수 박은옥과 결혼도 하면서 정태춘은 상업 가수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1979년 MBC 신인가수상과 TBC 방송가요대상 작사 부문상까지 수상한 그는 올해로 데뷔 40주년이 되었다.
정태춘과 박은옥의 음악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은 1979년의 데뷔 앨범과 1990년, 1996년에 발매된 <아, 대한민국…> 그리고 2012년의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꼽는 1993년의 <92년 장마, 종로에서>도 중요하지만, 40년의 역사를 돌아볼 때 <아, 대한민국…>은 정태춘이라는 싱어송라이터의 복합적인 정체성을 드러낸 첫 장면이란 점에서 중요하다.
▶2004년 3월 31일 서울 인사동에서 정태춘과 박은옥
<아, 대한민국…>, 사전심의 거부한 첫 앨범
일단 데뷔 앨범은 소소한 대중적 성공과 동시에 정태춘에게 ‘한국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 바로 한국공연윤리위원회의 음반사전심의제도에 대한 인식이다. 대표곡인 ‘시인의 마을’을 포함해 몇 곡이 가사 변경을 권고받아 수정한 일은 이후 그의 음악 인생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경험이 된다. 이 외에 방송국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중심으로 짜인 음악인의 활동 역시 그에게는 어색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정태춘은 자연스레 방송이 아닌 거리에서 활동하는 가수가 되었고, ‘심의’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검열’에 저항하는 가수가 되었다.
1990년, <아, 대한민국…>은 한국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 결과와 가사 수정 지시를 정면으로 거부한 최초의 대중 음반이다. 공식 판매가 불가능했기에 공연장과 대학가를 중심으로 판매되었는데, 이 시기부터 정태춘은 ‘사전심의제도’에 대한 본격적인 저항을 시작했다. 당시 대학가에서 유통되던 ‘불법’ 민중가요의 유통망을 ‘상업’ 음반이 활용하는 방식은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 앨범은 이후 사전심의제도가 폐지된 1996년에 정식으로 발매되었다.
▶정태춘-박은옥 부부가 1980~90년대 공동작업한 앨범들
하지만 그는 2000년 이후 일체의 활동을 중단하고 침묵하는 시기를 보낸다. 2006년 경기도 평택의 미군기지 확장 반대투쟁, 소위 대추리 사태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정태춘의 고향인 평택 도두리와 인접한 대추리에 대한 강제 철거와 공권력 투입은 1990년대 이후 독재가 끝나고 찾아온 신자유주의 체제와 미시 정치의 틈에서 고뇌하던 정태춘에게 ‘21세기에 음악인으로 사는 것’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 2012년에 발표한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에는 그 결과가 담겼다.
이 앨범은 무엇보다 성찰의 깊이가 다르다는 점에서 평가받아야 한다. 특히 ‘서울역 이씨’의 경우 도시와 노숙인, 제도와 정서에 대한 예리한 시선이 돋보이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는 활동가들과 운동의 역사성에 주목하고 있다는 부분에서 그렇다. 이들은 여전히 희망을 노래하는 쪽에 있음을 보여준 앨범이다.
▶1992년 4월 정태춘-박은옥 부부 공연 사진│한겨레
딸과 함께 노래한 ‘들 가운데서’ 매력적
2019년에 진행되는 <정태춘 박은옥 40 프로젝트>는 데뷔 40주년을 맞아 음반과 출판이 함께하는 프로젝트다. 음악, 미술, 영화, 사진, 문학, 언론, 학계 등 타 장르의 문화 예술계 인사들이 동시에 참여하는 <정태춘 박은옥 40 프로젝트>는 올해 초 추진위원회 발족식을 통해 구체화됐다. 그동안 이들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음반을 발표하는 대신 사진을 찍고, 공예를 하고, 붓글씨를 쓰는 등의 일상적 활동을 통해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일단 정태춘의 시집 <노독일처> <슬픈 런치>를 비롯해 에세이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그리고 헌정 도서인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가 출간된다. 이 중 <노독일처>는 이미 출간했다가 절판된 시집의 복간본이고, 새로 출간하는 <슬픈 런치>는 정태춘이 15년 전부터 써온 시를 확인해볼 수 있는 시집이다. 에세이로 엮인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와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는 미발표작으로 남은 노랫말이 담겼다.
이 외에 4월 12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전시 <다시, 건너가다>가 열렸다. 이 전시는 미술가 40여 명이 참여해 두 사람에게 헌정한 작품과 정태춘이 직접 쓴 서예 작품 30여 점 그리고 정태춘, 박은옥의 음악 아카이브도 공개되었다. 아카이브에는 두 사람이 지난 40년 동안 꼼꼼하게 챙겨둔 활동 자료를 비롯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발굴한 대중음악사에 빠질 수 없는 영상 자료가 포함되었다.
그리고 7년 만에 발표하는 새 앨범 <사람들 2019>는 좀 더 간결해진 음악과 압축된 가사가 실린다. “나이 들면서 아빠 목소리가 더 좋아졌어. 늙은 목소리로 젊은 시절의 노래를 불러봐”라는 정태춘의 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정새난슬의 권유로 구상하게 된 이 앨범에는 3곡의 신곡과 다시 부른 5곡이 실렸다. ‘외연도에서’와 ‘연남, 봄 날’이 새로 만든 곡이라면 ‘사람들 2019’는 1993년의 <92년 장마, 종로에서>에 수록된 ‘사람들’을 새로 바꾼 곡이다. 지인들의 실명과 손녀와 지내는 일상이 그려지는 등 과거와 비교해볼 지점이 많다.
한편 ‘고향’과 ‘이런 밤’은 정태춘 2집 <사랑과 인생과 영원의 시>에 수록된 곡으로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노래란 점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다. ‘들 가운데서’는 딸 정새난슬과 아버지 정태춘이 주고받는 노래로 2019년 정태춘과 가족의 현재를 기록한 점에서 매력적인 곡이다. 이 앨범은 4월 30일에 발매되었다.
차우진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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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