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숙 대표가 치유농장 ‘뜨락’에서 포즈를 취했다.│김청연 기자
사람들은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을 때 자연을 찾는다. 흙을 밟고, 녹색 식물을 바라보는 것 등은 가장 보편적인 치유 활동으로 알려졌다. 식물, 동물, 농작물을 통해 사람들이 신체적·정신적으로 치유할 수 있게 돕는 전문가도 있다. 바로 ‘치유농업사’다. 치유농업사는 다양한 농촌 자원을 활용해 대상자에 맞는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한다.
목화, 허브, 아로니아, 수국…. 지난 3월 4일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에 위치한 뜨락 원예치료센터(이하 뜨락) 농장에는 다양한 식물이 겨울을 보내고 봄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4월쯤 되면 여기저기 꽃이 만개해요. 보고만 있어도 힐링이 되죠.” 치유농업사 신은숙(44) 대표가 가족 단위로 사용할 수 있는 텃밭을 보여주며 미소를 지었다.
▶‘뜨락’에서 가족들이 텃밭 가꾸기를 하고 있다.│신은숙
뒤늦게 대학원 원예치료학 전공
2009년 당시 어린이집을 운영하던 신 대표는 ‘원예’라는 단어에 이끌려 대학원에 진학했다. 전공은 원예치료학. 부모님이 과수원을 하신 덕에 자연을 벗 삼아 뛰놀던 ‘행복한 유년의 기억’이 남아서였을까. 원예 공부를 하며 더없이 행복했다. 그다음 해에는 농촌진흥청에서 진행하는 원예프로그램 지도자 과정도 들었다. 대학원 졸업 후엔 ‘경산시 청년 CEO 육성사업’에 선정되어 1000평 농지를 임대해 치유농업사로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자신의 농지(약 500평 규모)를 꾸려 농장에서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중이다. 원예가 식물 기르기, 꽃 장식 등에 한정돼 있다면 치유농업은 농업 환경 전반을 폭넓게 활용한다.
그가 대학원을 졸업하던 2011년경만 해도 치유농업사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아픈 식물을 치료해주는 사람’이냐고 물어볼 만큼 낯선 직업이었다. 신 대표는 “사회가 발전한 반면 우울, 불안, 외로움 등을 느끼는 이들도 늘고 있는데 모든 사람에게 다양한 농업 관련 활동을 권하고, 자연과 사람이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매개자가 바로 치유농업”이라고 소개했다.
치유농업의 참여 대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신 대표 역시 어린이, 청소년, 주부, 직장인, 장애인, 치매 노인 등 매우 다양한 사람을 대상으로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뜨락’에서 학생들이 사과를 씻으며 놀고 있다.│신은숙
사람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먼저
치유농업의 특징 중 하나는 대상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 뜨락이 지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진행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주관) 프로그램의 경우, 초등학교 고학년생과 그들의 부모가 함께하는 내용으로 꾸려졌다. 1년간 약 30회에 걸쳐 진행한 프로그램에서 참여자들은 심고 싶은 씨앗을 결정하는 일부터 파종, 물주기 등 식물이 자라는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신 대표는 “특히 초등 고학년은 자아가 확립되는 시기라 부모와의 관계 형성이 매우 중요한데, 씨앗이 땅에 들어가 싹을 틔우고 열매나 꽃을 맺기까지 과정을 보며 성장의 의미를 몸과 마음으로 알아가고, 부모와 소통하는 계기도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배한 과일 등은 인근 지역 사람들을 초청해 함께 나눠 먹는 기쁨도 누렸다.
2017년에는 사람과 환경의 관계도 중요하다는 점을 알려주고자 청소년들과 함께 버려지는 물건 등을 화분으로 재활용해 식물을 심거나 나무 등으로 벤치, 새집 등을 만드는 활동도 진행했다.
▶학생들이 치유농업 프로그램 중 꽃으로 염색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신은숙
네덜란드 병원에선 농업치유 처방
지역 농아인협회와 연계해 농아인들과 허브 재배하기, 마른 꽃으로 생활용품 만들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온 지도 벌써 9년째. 그 밖에 지역 보건소 및 노인복지관과 연계해 치매 관련 치유농업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신 대표는 “농업 하면 무조건 농작물 재배만 생각하는데 자연을 통해 정말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고 했다. “메리골드, 팬지, 쪽 등을 이용해 자연의 색으로 각종 염색을 해볼 수도 있어요.”
이 일을 하려면 흙 밟는 걸 좋아하고, 자연을 사랑해야 한다. 원예 지식은 기본적인 정도만 알고 있어도 된다. 오히려 심리, 의료, 복지,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중요하다. 신 대표는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치유농업이 활성화된 네덜란드는 1000여 개(2015년 기준)의 치유농장이 있다. 신 대표는 “네덜란드에 연수를 갔는데 병원에서 진단할 때 농업치유 프로그램을 처방해주기도 한다”며 “우리나라도 의료보험 등 관련 제도가 확립되면 좋겠다”고 했다.
최근 농업 활동을 통한 치유·재활 서비스 수요가 증가하면서 우리 정부도 앞으로 치유농업의 근거 및 활성화 관련 법률을 개정하고 치유농업사 국가전문자격을 도입할 예정이다. 제도 등이 안착하면 농장 등에 파견돼 일하는 치유농업사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신 대표는 “치유농업이 주목을 받으면서 이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나 사명감 없이 뛰어드는 이들이 있을까 걱정도 된다”며 “이 분야는 물질적 가치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마음가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대표의 현재 목표는 농장 온실을 정비해 이 공간에서 농아인들이 농작물을 재배하고, 직접 판매까지 하는 등 취업을 할 수 있게 돕는 것. 그는 “이런 방식으로 치유농업을 넘어 ‘사회적 농업’을 실현하고 싶다”고 바람을 밝혔다.
“이곳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꽃을 예쁘게 꽂아보는 경험을 했다며 눈물을 흘리셨던 89세 어르신, 2018년에 위클래스(학생 위기 상담 종합지원서비스)에서 자살 위험군으로 학업 중단까지 고려했다가 치유농업을 통해 웃음을 되찾은 청소년 등이 기억에 남아요. 보람이 크죠. 세상이 많이 편리해졌지만 사람들 간에 소통할 여유는 줄었잖아요. 삶의 질이 중요해지는 때, 치유농업의 필요성은 앞으로 더욱 커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청연 기자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