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맥 OS 모하비(Mojave)의 바탕화면. 새로운 OS의 이름이 ‘모하비’여서 모하비사막의 사진을 바탕화면으로 등장시켰다.
▶보정을 전혀 하지 않은 사하라사막 사진.
사막 여행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사막 한가운데서는 사방을 둘러봐도 두 가지밖에 보이지 않는다. 매우 균질한 황토색의 모래, 그리고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이 그것이다. 낙타를 타고 걸어도 걸어도 그 두 풍경이 연속될 뿐이다. 사진 찍기가 밥 먹는 일보다 더 일상이 된 21세기에 이 경이로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나는 모래와 하늘이 맞닿아 아름다운 대비를 보여주는 사하라사막을 수십 컷 카메라에 담았다. 집으로 돌아와 사진들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사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에 데스크톱 컴퓨터 운영체제(OS)를 업그레이드하면서 새로운 바탕화면을 깔았다. 그 바탕화면이 공교롭게도 사막 사진(사진 1·미국 모하비사막)이다. 이 바탕화면 사진이 내가 사하라사막에서 찍은 한 사진(사진 2)과 조금 비슷하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두 사진은 사진이 지닌 본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바탕화면의 사막 사진에는 구름이 있다. 사막에 구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주 드문 현상이다. 이 사막 사진의 구름은 해가 질 무렵에 찍어서 붉은 기운이 돈다.
▶<식물도감>의 세밀화. 식물 정보는 사진으로 찍었을 때보다 그림으로 그렸을 때 더욱 완벽하고 이상적인 모습으로 표현할 수 있다.
회화와 사진의 본질적 차이
멋진 자연 사진은 늘 해가 지거나 뜰 때 찍어야 한다. ‘드라마틱’한 효과를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래도 마찬가지다.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모래 사진을 찍으면 평면적이고 밋밋해 보인다. 해가 질 때는 이 사진처럼 극단적인 대비를 보여준다. 한쪽은 짙은 황토색 또는 거의 붉은색이 되고, 다른 쪽은 완전히 어두워진다. 그러니까 이 사진은 황혼 근처의 시간에 마침 구름이 떠 있는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켰다. 모래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경계가 지나치게 또렷하다. 인간의 흔적이 없는 대자연의 아주 드라마틱한 모습이다.
반면 내가 찍은 사막 사진에는 흠이 있다. 아주 균질한 모래가 아니라 두 줄의 바퀴 흔적이 남아 있다. 이곳은 광대한 사하라사막 중에서도 관광객이 많이 오는 모로코의 메르주가다. 그곳에는 바이크를 즐기는 관광객들이 있다. 어두운 부분에는 군데군데 잡초도 있다. 이것들은 우연히 찍힌 것이다. 좀 더 완벽한 사막 사진이 되려면 포토샵 같은 도구로 손을 봐야 한다. 오늘날 대중을 상대로 하는 수많은 사진들, 관광 사진이나 잡지 화보, 각종 배경 사진, 심지어는 작가의 사진조차 순수하게 찍은 그 자체라기보다 만들고 꾸민 것이다.
대중을 상대로 한 사진을 만들 때는 카메라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카메라는 기계라서 너무나 정직하게 대상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모델이 가진 어떤 미학적 결핍을 감추지 못하고 그대로 드러낸다. 그것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화가들이다. 그들은 여성의 벗은 몸을 사진으로 찍었을 때 비로소 그들이 누드를 그릴 때 모델을 얼마나 왜곡하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들은 실제의 몸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이상화해야 비로소 그것이 누드(nude), 즉 무방비로 옷을 벗은 상태인 네이키드(naked)가 아닌 아름답게 ‘꾸민’ 예술이 된다고 배웠다. 그런데 카메라라는 이 생각 없는 기계는 그런 예술가의 통제를 벗어나버리는 게 아닌가. 실제 모델의 결함들을 그대로 다 드러내고 마는 것이다. 한마디로 꾸밀 수가 없다.
사진이 그토록 발달한 시대에도 여전히 <식물도감>을 만들 때 그림을 선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정 식물의 완벽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건 대단히 어렵다. 하지만 그림으로 그리면 그 식물의 어떤 이상적인 모습을 화가가 완벽하게 통제해서 그릴 수 있다. 그는 대상 식물을 채집해 오거나 사진으로 찍은 후, 실제 식물이나 사진에서 드러나는 결함을 제거해 그 식물의 가장 보편적인 모습이라는 이상성을 취할 수 있다. 통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회화와 사진을 구별하는 아주 본질적인 특성이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인체 비례 연구. 서양미술에서는 대상의 완벽한 이상형을 상정한 뒤 실제 모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이상화한 모습을 그리도록 가르쳤다.
디지털 시대, 더욱 첨단화한 모방
롤랑 바르트는 사진의 본질을 ‘우연성’에서 보았다. 우연성이란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사진가는 대상을 프레이밍함으로써 자신이 사진을 통제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카메라는 철저하게 통제할 수는 없다. 사진가의 의지와 관계없는 것을 무자비하게 기록한다. 바르트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진가의 투시력은 ‘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바로 촬영 장소인 ‘그곳에 있다’는 사실에 있다.” 한마디로 사진가는 자신이 찍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찍는다. 거기에는 사진가의 의지와 통제를 벗어난 우연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웨인 왕 감독의 <스모크>라는 영화에서는 상점을 운영하는 주인공이 매일 특정 시간만 되면 상점 문 앞에서 사진 한 컷을 찍는다. 그렇게 수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찍어왔다. 어느 날 동네 친구가 찾아와 그 사진들을 보게 된다. 친구는 수백 장에 이르는 사진을 무료하게 보다 한 사진에 시선이 고정되고 만다. 그의 아내가 상점 앞을 우연히 지나치다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그의 아내는 죽고 없다. 친구는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아내를 사진에서 발견하고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다.
사진가는 그의 친구로 하여금 사랑하는 아내를 떠올리게 하는 마법을 부렸지만, 그의 예술적 의지가 그렇게 만든 건 아니다. 단지 그때 그곳에서 셔터를 눌렀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그러한 우연, 하찮은 것, 사진가가 그 시간 거기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노력 없이 공짜로 얻은 것, 그것이 바로 사진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오늘날의 발달된 소프트웨어는 그런 우연성을 싫어하고 제거하고 완화하려 한다. 프로는 물론 이제 아마추어들도 SNS에 사진을 올릴 때 뭔가 이상적인 모습으로 꾸미고 통제하려 한다. 사진은 19세기에 발명될 때부터 회화를 부러워하고 흉내 내왔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그런 모방은 더욱 첨단화하고 있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연성은 약화된다.
김신_ 홍익대 예술학과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하고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 대림미술관 부관장으로 일했다. 현재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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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