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둘레길은 대부분 험하다. 이유가 있다. 섬은 애초 육지에 붙어 있다가 바닷물이 차면서 육지와 분리됐다. 그러기에 바다 위에 버티고 있는 섬은 육지에 있던 산의 윗부분이다. 조그만 섬은 산의 꼭대기가 빼꼼히 바다 위에서 숨을 쉬고 있는 형국이다.
때문에 섬의 주변을 도는 길은 평탄하기가 어렵다. 오르막 내리막이 험하기도 하고, 가파른 절벽을 끼고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금오도의 섬 둘레길 이름은 ‘비렁길’이다. ‘벼랑’의 여수 지방 사투리다. 이름은 살벌하지만 아름답기로는 남해에서 손꼽힌다. 여수에서 뱃길로 20분 만에 도착하는 가까운 탓도 있지만 섬 트래킹 하기에 좋은 섬으로 이름나 한 해 30만 명이 찾는다. 특히 봄에는 육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바로 동백꽃 때문이다. 비렁길 곳곳에 있는 동백나무 터널을 지나다 보면 붉은 동백꽃에 취해 정신이 혼미해진다.
▶지난 8년간 고집스럽게 섬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강제윤 시인. 그는 시와 사진과 섬학교로 육지사람들에게 우리의 섬이 지난 가치를 알리고 있다.
남녘의 동백꽃은 무려 반년간 핀다. 늦가을에 피기 시작해 늦봄까지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가을에 피면 추백(秋栢), 봄에 피면 춘백(春栢)이고, 겨울에 피어야 비로소 동백(冬栢)이다. 그러기에 동백은 장수하는 꽃이다. 향기가 없다. 대신 그 붉은 빛과 꿀로 동박새를 불러 꽃가루를 퍼뜨린다. 조매화(鳥媒花)다. 이파리도 유혹적이다. 윤기가 흐르고 광택이 난다. 동백의 매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나무에서 피고, 떨어져서는 땅에서 핀다. 다른 꽃잎들처럼 낙화하는 순간 시들어 비참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땅에 떨어져서도 한동안 당당한 모습을 유지한다. 그래서 동백꽃은 땅에서도 눈부신 매력을 발산한다.
국내 유일한 ‘섬학교’ 교장인 강제윤 시인이 육지 사람들을 3월 1일부터 2박 3일간 여수 금오도의 비렁길과 금오도와 붙어 있는 안도로 초대한 이유도 그런 동백의 매력과 함께 봄이 오는 남녘 바다 내음을 맛보이고 싶어서였다.
▶금오도 비렁길에 화려하게 피어있는 동백꽃
대부분 수차례 참가, 많게는 53번까지
섬학교는 섬에 있는 학교가 아니다. 한 달에 한 번 강 시인이 사람들을 모아 1박 2일이나 2박 3일간 섬을 찾아가 걸으며 섬에 스며드는 학교다. 지난 2012년부터 시작한 섬학교는 이번이 80회째다. 8년째 고집스럽게 지속하고 있는 인문학 교실이다.
서울에서 새벽 5시 50분에 출발하는 버스에는 이미 40명이 자리를 잡았다. 여수 배편 시간에 늦지 않게 서둘러야 한다. 한동안 조용히 달리던 버스에 강 시인의 친절하고 자세한 섬에 대한 설명이 가득 찬다. 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우리 땅이 좁은 것은 알면서 우리의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는 모릅니다. 오랫동안 좁은 땅에 갇혀 살면서 몸도, 마음도, 시야도 폐쇄적으로 변한 까닭입니다. 섬에서 바라보면 육지 또한 바다에 둘러싸인 큰 섬에 불과합니다. 육지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충분히 크고 드넓습니다. 섬은 한없이 넓은 바다를 향해 무한히 열려 있습니다. 섬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개방성과 열린 사고를 되찾기 위한 최적의 사유 공간입니다.” 그의 설명을 듣는 순간 이미 마음은 푸른 수평선을 헤맨다. 갈매기가 날고 점점이 자리 잡은 섬들이 속삭이는 남녘의 다도해….
여수 돌산도 신기항에 도착해 배를 탄다. 버스도 함께 탄다. 드디어 금오도 여천항에 도착한다. 매운탕으로 섬에서의 첫 점심을 한다. 꿀맛이다. 잠시 쉰 뒤에 비렁길 트레킹에 나선다. 이날 오후 트레킹은 금오도 비렁길의 3, 4, 5코스다. 모두 10km다. 강 교장의 설명을 듣고 트래킹 준비를 한다. 대부분 섬학교 경험자들이다. 40~50회 참가한 단골부터 몇 차례 참가한 이들까지 다양하다. 이번 섬학교 80회 학생들 가운데 처음 온 참가자는 8명이다. 산길에 접어들면서 그들의 발걸음에 탄력이 붙는다. 곧 동백나무 터널이 외지 손님들을 반긴다. 환호성이 터진다. 푸른 바다와 하늘, 진한 녹색의 잎 사이에 붉은 동백꽃은 전혀 수줍음이 없다.
▶80회 섬학교에 출석한 학생들이 섬 트래킹을 마치고 환한 표정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보길도 댐 등 섬 자연 훼손 막아
강 교장은 보길도 출신이다. 고산 윤선도의 유적이 있는 보길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 인천으로 이사 갔다. 테이블 3개가 있는 조그만 중국집 주인장의 아들이었다. 이미 초등학생 때 짜장면 배달을 했다. 부모님을 도와 배달 일을 하면서 철도 일찍 들었다. 대학은 10년 만에 졸업했다. 시국 사건으로 구속돼 3년 2개월 옥살이를 했다.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을 하며 젊은 시절을 평범하지 않게 보냈다. 문득 자신이 태어난 섬에 가고 싶었다. 고향 보길도로 들어가 윤선도가 살았던 ‘세연정’ 옆에 돌과 흙으로 집을 지었다. ‘동천다려’라는 이름을 붙이고 들르는 이들에게 차와 술, 음악을 내주며 혼자 살았다.
‘보길도 시인’으로 이름이 났다. 완도군에서 보길도 부용리의 40만 톤 규모 댐을 400만톤으로 10배 증축하겠다고 하자 그가 맨몸으로 막았다. 댐이 증축되면 고산 윤선도 유적지와 상록수림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 댐 증축이 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기존의 댐을 활용하면서 해수담수화시설을 설치해 가뭄에 대안으로 사용 하자고 주장 했던 것이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보길도까지 와서 중재를 해 단식을 풀었고, 결국 댐 증축 대신 노후 관로 교체만으로 70% 이상의 물을 더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 뒤 8년 만에 보길도를 떠났다. 평생 떠돌며 살고 싶은 열망이 그를 사로잡았다. “우리나라 유인도를 모두 가보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직접 내 발로 걸어서 그 섬에 사는 민초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사진도 찍었다. 남한의 유인도는 470여 개다. 그는 이미 400여 개의 유인도를 다녀왔다. 2015년에는 섬연구소도 만들었다. 섬을 보존하고 이해하는 이들과 힘을 모은 것이다. 성과도 많았다. 남해 여서도의 돌담은 2㎞에 이르는 명물이다. 주민들의 요청으로 완도군에서 이 돌담을 허물고 도로를 만들려고 하자, 전남도와 주민들을 설득해 돌담을 지켜냈다. 관매도의 아름다운 폐교를 진도군에서 대명 리조트에 매각하려는 것을 언론 기고와 서명운동 등으로 지켜냈다. 간척 사업으로 썩어가는 세계 2곳 뿐인 천연비행장이자 천연기념물인 백령도의 사곶해변 살리기 운동을 해 문화재청이 역학 조사를 하게 만들었다. 3년 전에는 섬 사진 전시회를 인사동 갤러리에서 열기도 했다.
▶안도식당의 푸짐한 해물 정식 차림. ‘백년손님 밥상’으로 불린다.
푸짐한 해산물 먹거리 한 상 가득
그의 섬 사랑은 그가 쓴 시 ‘속절없이 그리운 날에는 섬으로 갔다’에 잘 표현돼 있다.
“바람 부는 날에는 섬으로 갔다/…/슬픔이 목울대까지 차오른 날에도 섬으로 갔다/기쁨이 물결처럼 너울져오던 날에도 섬으로 갔다/…/칼바람이 온몸에 칼자국을 내던 겨울 한낮에도 섬으로 갔다/먹구름이 밀물처럼 몰려오던 날에도 섬으로 갔다/…/실연의 상처가 덧나 심장이 뻥 뚫린 날에도/상처에 새살이 차올라 심장이 간질간질하던 날에도 섬으로 갔다/…/인생이 나를 저버린 날에도 섬으로 갔다/…/그 절망의 밑바닥에서 상현달처럼 다시 사랑이 차오르던 날에도 섬으로 갔다/그 수많은 생애의 날에 나는 섬으로 갔다/섬은 나를 비난하지 않았던 것처럼 애써 위로하려 들지도 않았다/말없이 묵묵히 같이 있어주던 섬/그래서 나는 또 남은 생애의 날들에도 더 자주 섬으로 갈 것이다/…/그 섬이 주저앉은 당신에게 새로운 ‘일어섬’이 되어주기를/…”
박용주(79) 씨는 부인 한수복(76) 씨와 섬학교에 세 번째 출석이다. 4년 전에 추자도를, 2년 전엔 연홍도를 부부가 함께 다녀왔다. 부부는 10년 전 60대 중반의 나이에 손잡고 백두대간을 종주하기도 했다. 건설업 쪽에서 일하다가 은퇴한 박 씨는 국선도를 30년 수련한 고수다. 한 씨는 지금도 일주일에 세 번 탁구를 칠 정도로 둘 다 건강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단순히 걷는 것뿐 아니라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너무 좋아요. 섬의 맑은 공기와 신선한 먹거리도 섬학교의 큰 매력이지요.”
비렁길의 맛은 짜릿함에도 있다. 해가 등 뒤에서 바다에 내려앉는다. 금빛 노을 물결이 가파른 바닷가 벼랑길을 호위한다. 부지런히 걸어야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버스를 타고 금오도와 다리로 연결된 안도의 펜션에 도착해 짐을 푼다. 첫날 저녁이다. 해안가 식당은 강 교장의 단골 식당이다. 온갖 해초와 생선회, 해물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이름하여 ‘백년손님 밥상’이다. 육지에서는 사위에게 씨암탉을 잡아주기도 했지만 모두 가난한 섬에서는 알을 얻어야 하는 씨암탉을 잡을 수 없었다. 갯가에 나가 온갖 해산물을 따다가 차려주었다. 배말(삿갓조개), 군부(군봇), 거북손 등 갯바위에 붙어서 살아가는 따개비와 가사리, 미역 등의 해초를 넣어 만든 비빔밥이 백년손님 밥상이다.
▶금오도 비렁길은 푸른 바다와 하늘, 그리고 동백꽃과 벼랑, 해안 숲을 골고루 경험할 수 있어 한해 30만명이 찾고 있다.
“잠시나마 단절이 바로 힐링”
섬학교에 53번째 출석한 고참 부부가 나란히 앉아 정겹게 식사를 한다. 한춘식(60), 유옥남(55) 부부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래킹도 함께 했다. “처음엔 섬에 가서 그곳 특산품도 적극적으로 사고, 소외된 섬 주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섬학교에 출석했어요. 다니다 보니 나 자신을 위해 섬을 찾고 있음을 알게 됐어요. 아내가 허리가 불편했는데 섬에 다니며 허리 통증도 사라졌고요.”
이틀째 아침 일출을 보려고 새벽부터 일어나 바닷가에 갔지만 해는 짙은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오전에는 비렁길 1, 2코스(6.5km)를 돌고, 오후에는 안도를 한 바퀴(4km) 도는 일정이다. 무릎이 뻐근하다.
신지영(40) 씨는 한의학 박사다. 이번이 두 번째 섬학교 출석이다. “단절된 느낌이 좋아요. 혼자 와서 오롯이 섬을 즐겨요. 바쁜 도시 생활과 잠시나마 단절된 상태가 바로 힐링입니다.” 평소 산행과 캠핑을 자주 한 덕분인지 신 씨는 강 교장과 함께 속도를 맞추어 비렁길을 걷는다. 어느덧 어둠이 깔린다. 둘째 날 저녁은 식사를 마치고 흥이 넘치는 뒤풀이도 이어진다. 한민족 고유의 창에서부터 가곡 ‘명태’, 신나는 가요까지 반주도 없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온전한 걷기란 단지 다리 근육의 운동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잠들어 있는 생각을 깨우고 생각의 폭을 넓히는 정신의 운동이기도 합니다.” 비릿한 바다 내음과 정겨운 인정이 버무려진 공간에서 강 교장은 행복하다. “꾸욱 꾸욱” 갈매기가 맞장구를 친다.
글·사진 이길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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