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왼쪽)와 이혜정 중앙대학교 교수가 3월 4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 평가와 이후 한반도 정세 전망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곽윤섭 기자
2차 북미정상회담 평가와 향후 정세 전망
한반도 전문가 구갑우-이혜정 교수 대담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다시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빈손으로 헤어졌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첫 만남 이후 냉전의 옛 질서는 무너졌지만 지난 세월 켜켜이 쌓인 불신의 벽은 높았다. 그런데 아무도 ‘실패’ ‘결렬’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여전히 기회의 창은 열려 있고, 아직 실망하기엔 이르다. 협상이 끝나자마자 미국 측이 “몇 주 안에 평양에 협상팀을 보내고 싶다”고 협상 재개 의사를 밝혔듯이, 잠시 합의 무산의 후유증을 추스른 뒤 다시 대화의 장에 나설 것으로 기대된다. <위클리 공감>은 한반도 전문가인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이혜정 중앙대학교 교수와 2차 북미정상회담 평가와 이후 한반도 정세를 전망해봤다. 합의 없이 끝난 2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두 교수 모두 “길게 보면 실패는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북미가 생각하는 비핵화의 범위를 확인하고 협상의 지속가능성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이번 회담 이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구축이 장기 교착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한국 정부의 역할이 더 막중해졌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대담은 3월 4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1시간 30분 정도 진행됐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합의에 이르지 못한 건 다소 이례적인데 어떻게 평가하는가.
=(구갑우) 많이 나오는 얘기지만 실패한 정상회담은 아니다. 과정을 보면 사실은 실무 회담 수준에서 합의가 안 된 부분이 많았다. 그러고 나서 두 정상이 결단을 내리는 방식의 정상회담이었기 때문에 결과를 놓고 보면 어느 정도 예견된 상황이다. 다만 긍정적인 부분은 2017년 말부터 시작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출발점이 사실 ‘쌍중단’(핵미사일 실험과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이었는데, 이를 다시 확인했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과 미국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일단 중단하겠다고 발표했고, 북한도 이번 회담에서 핵미사일 실험 중단에 대한 확약을 문건으로도 보여줄 수 있다고 얘기했다.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신뢰 구축이 이뤄졌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이혜정) 합의에 이르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후진’하지는 않았다. 쌍중단을 지속한다는 의지를 양쪽이 확실히 보여줬다는 점이 긍정적이고, 정상 수준에서 신뢰도 많이 좋아진 것 같다. 그동안 북미회담을 하면서 서로 불확실성이 있었지만, 이번에 서로에 대한 요구사항이 명확해지면서 그 점이 해소됐다.
▶곽윤섭 기자
두 정상, 비핵화 정의 다르다는 것 확인
-어떤 부분에 대해 서로 확인을 했다고 보는가.
=(구갑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중요한 부분이 핵심 쟁점을 정상회담에서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드디어 핵심 쟁점이 무엇인지 확인한 것 같다. 비핵화에 대한 정의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두 정상이 확인했다는 점도 좋게 보면 긍정적이다. 그리고 비핵화 평화 프로세스가 상당히 장기전을 요한다는 점도 다시 한번 확인했고, 비록 합의문은 없었지만 협상의 지속가능성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한국 정부도 이번 회담을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구갑우) 실패라고 하면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더 어려워지지 않겠나.(웃음) 어쨌든 현재 다시 재개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지속가능성이 없어진 게 아니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나서서 실패라고 단정 지을 필요는 없다. 게다가 북미회담이 끝나고 가장 먼저 나온 조치가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이다. 이는 현재의 판을 완전히 깬다는 의미가 아니고 미국 역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계속 이어갈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합동훈련 중단은 한국 쪽의 요구만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더라도 한국 정부가 이번 회담을 실패는 아니라고 규정한 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혜정) 비핵화 프로세스와 한반도 평화 체제 프로세스가 완전히 절연된 건 아니지만 일정하게 상호 독립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어쩌면 이번 회담이 준 교훈이다. 그러니까 남북관계가 반보 정도 앞서 나가고 북미관계가 따라오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중요한 건 교착 기간이 길어질 가능성에 대비한 ‘플랜 B’를 우리 정부가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중요해진 것 같다.
=(구갑우) 그렇다. 한국 정부의 과제가 더 막중해진 측면이 있다. 단순히 북미 대화의 ‘촉진제’가 아니라 ‘기획자’ 역할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비핵화가 무엇이고, 비핵화에 상응하는 조치는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기획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문제도 사실은 비핵화의 정의와 거기에 따른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의 상응 조치가 확보되지 않는 한 성과를 내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다시금 어려운 과제에 직면했다.
=(이혜정) 다시금 ‘톱다운’(위에서 결정해 실무진에 통보하는 방식)이 주목받을 수 있다. 그래서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이 요구하는 일괄 타결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나서 유도하는 방법이 있고, 또 다른 방법은 상당히 우회적인 길이지만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 재개로 제재를 일시적 또는 특정 공간에서 완화하는 등 다시금 북미 사이에 등가교환의 길을 마련하는 방식을 모색할 수 있다.
▶곽윤섭 기자
올 하반기 북미협상 다시 열릴 가능성
-이를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가.
=(구갑우)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느냐의 여부도 사실은 중요한 질문이다. 이번 회담을 실패라고 표현하기엔 맞지 않지만, 어쨌든 이번 회담의 교훈 중 하나는 대북제재를 쉽게 완화하는 것이 우리 스스로 지렛대를 상실하는 결과를 준다는 것이다. 오히려 제재를 지속하는 것이 북한의 행동을 바꾸는 데 유용하다는 결론까지 나올 수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금강산이나 개성공단을 매개로 제재를 일부 해제하는 방식을 과연 미국이 수용할 수 있는지도 되물어봐야 할 것이다.
=(이혜정) 미국이 승인을 하거나 아니면 북미가 합의한 다음에 남북관계 개선이나 경제협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2018년 ‘평양 선언’을 통해 군사 분야에서 군비 통제를 시작했던 것처럼 최대한 인도적인 분야나 경협 관련해 제재 완화를 받아낼 수 있는 부분은 미국의 승인이나 북미 간 합의와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가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2차 정상회담 결렬에 미국 내 정치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혜정) 마이클 코언 전 개인 변호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언을 쏟아내고 있는 시점에서 섣부른 합의를 했다가는 엄청난 후폭풍에 휩쓸릴 것이 뻔하고, 이런 우려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구갑우) 이번 회담에 미국의 국내 정치가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만약 북미 타협이 트럼프 대통령 개인에게 이익이라면, 그리고 이익이 되는 시점이 온다면 거꾸로 극적 타결의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정치 상황을 고려한다는 게 지금은 합의 무산으로 이어졌지만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언제든지 정반대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향후 북미 대화를 비롯해 한반도 정세는 어떻게 흘러갈 것으로 예상하나.
=(구갑우) 올해 하반기 정도에 북미 협상이 다시 열릴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경제 상황을 놓고 얘기하자면, 북한이 이번 회담에서 제재 해제를 요구한 부분은 크게 4차 산업혁명(새 세기 산업혁명)과 경제특구다. 둘 모두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다. 일단 제재가 풀린다면 북한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자본들이 생겨나는 셈이다. 석탄이나 철강 등 지금 막혀 있는 것들의 수출을 통해 종잣돈을 마련할 수 있다. 반대로 제재가 풀리지 않는다면 경제개발구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 된다. 김정은 정권 입장에서는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이 가시적으로 좋아지지 않는 한 정권의 정당성이 위협받을 수 있는 측면도 굉장히 크다. 왜 북한이 이번에 제재 해제에 그토록 집착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질적으로 가시적인 경제 효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김정은 정권에겐 굉장히 시급한 일이다. 어떻게 보면 이 상황을 북한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북미 협상 재개 시점도 당겨질 수 있다.
▶곽윤섭 기자
한국이 ‘그랜드 플랜’ 생산·공급 역할 맡아야
-2차 북미정상회담의 성과를 바탕으로 평화·경제 번영을 위한 신한반도 체제 전환을 본격화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구갑우) 지금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최대 성과는 남북이 적에서 다시 친구가 됐고, 사실상 종전 선언에 이른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끝났고, 평화를 제도화하는 작업이 실행되고 있는 것들이 어떻게 보면 현 정부가 한반도 평화에 크게 기여한 부분이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평화협력 질서인 신한반도 체제의 밑거름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북한과 미국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 이번 북미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 능력이 점진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여기에 대해 미국이 반응하도록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 북한의 핵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 미국에 이익이라는 점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만들어야 한다. 북한에도 제재 완화나 제재 해제가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이 해야 할 일들이 있음을 확인한 것이 이번 북미회담이 아니겠는가라고 얘기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혜정) 국내 정치적으로 지금 정부의 대북정책이 경제적 측면에서나 평화라는 대의를 위해서나 얼마나 정당한 것인지를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국내 정치적 기반 아래서 결국은 북미를 설득할 수 있는, 어떻게 보면 한국이 ‘그랜드 플랜’을 생산해서 공급하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진행 김연기 기자
정리 강민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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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