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활력·혁신 정부 프로젝트
제조업은 우리 경제의 기둥이자 성장 엔진이다. 제조업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가 국내총생산(GDP)의 3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금융, 물류, 도소매 등 제조업을 뒷받침하거나 파생하는 서비스업까지 고려하면 실물경제에 미치는 제조업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이런 제조업이 최근 몇 년 동안 점차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제조업 안에서도 비중이 큰 업종의 생산과 투자, 고용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전체 우리 경제의 활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외적으로도 우리 제조업은 거센 도전을 맞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빠른 산업화에 따른 경쟁 격화에다 미·중 무역 분쟁 등으로 나타나는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제조업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진다. 탈산업화를 추구하던 선진국들은 2010년 이후 다시 제조업 기반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의 접목을 통한 제조업의 생산성 제고와 고부가가치 실현에 정책 역량을 집중한다.
경제활력 회복의 출발점은 제조업에서 찾아야 한다. 이에 대한 경제 주체들 간 공감대는 쌓였다. 정부도 ‘제조업 활력 회복과 혁신’을 산업 정책의 핵심 목표이자 전략으로 제시했다. 위기 탈출을 위한 단기 처방을 넘어 중장기적으로 제조업 부흥을 꿈꾸는 종합 대책을 올해부터 본격 시행한다. 정부가 마련한 제조업 혁신 대책을 알아본다.
제조업 부진의 그늘이 가장 짙게 드리운 곳은 고용시장이다. 2015년까지만 해도 14만6000명의 증가세를 유지하던 제조업 취업자 수가 2016년부터 3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2017년 1만 8000명 줄었다가 2018년에는 5만 6000명 감소로 그 폭이 더 커졌다. 자동차와 조선 등 고용 효과가 큰 주력 제조업의 구조조정 여파가 고용시장에 충격을 줬다. 2018년 제조업의 고용 비중은 16.9%로, 6년 만에 17% 선 아래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군산, 창원, 김해, 대불 등 주요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지역경제의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다.
제조업의 생산 활력도 둔화하는 추세이다. 제조업의 평균 매출 증가율은 2012년부터 산업 전체의 매출 증가율을 계속 밑돌고 있다. 2018년 제조업 생산지수는 105.9를 기록하며 전년도에 견줘 소폭 올랐지만, 반도체를 제외하고 지수를 산출해 보면 201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제조업의 전국 평균 가동률은 2017년 73.1%로 반짝 회복 기미를 보이다가 2018년에는 72.7%로 다시 떨어졌다. 올해 들어서도 호전 기미를 보이는 제조업 관련 지표는 거의 없다. 지난해 수출 증가세를 이끌었던 반도체마저도 올해 들어서는 수출이 감소세로 돌아서 전체 제조업의 체감경기 지표를 끌어내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3월 19일 국무회의에서 “제조업 활력을 위해 정부가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세계 경제의 둔화로 제조업 경기 전반이 어렵지만 외부 탓만 할 일이 아니다. 주력 제조업의 경우 지난해 내놓은 분야별 대책이 제대로 잘 돌아가고 있는지 점검하기”를 주문했다.
▶자동차용 절삭공구 제조업체인 마팔하이테크에 구축된 스마트공장 전경 | 중소벤처기업부
자동화와 데이터 분석·활용할 지능형
정부 대책이 시급한 곳은 지역의 중심 업종이 구조조정에 들어가 고용 위기를 겪는 지역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부산·경남, 전북, 광주·전남, 대구·경북 등으로 전국 권역을 나눠 14개 활력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부산·경남의 경우 노후 경유버스의 전기버스 교체, 르노삼성의 초소형 전기차 위탁 생산 등으로 중소 자동차부품업계의 일감 창출 방안을 마련하고, 창원의 노후 산업단지는 미래형 산단으로 개편하는 작업을 추진한다.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과 한국지엠 군산공장의 폐쇄로 침체를 겪고 있는 전북에서는 군산항 내 중고차 수출 복합단지 조성, 조선기자재 업체의 재생에너지 산업 진출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신산업 창출 방안을 모색한다. 광주·전남에서는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 적용될 완성차 조립공장 건설의 차질 없는 추진과 함께 한전의 에너지밸리를 활용해 첨단 전력산업과 친환경 가전산업의 육성을 추진한다. 대구·경북에서는 자율주행차 실증 및 시험주행 단지 건설(대구), 홈케어가전 거점화(구미) 등으로 미래산업의 인프라 집적지를 2~3곳에 만든다. 산업부는 14개 프로젝트를 추진하면 2022년까지 모두 2만 6000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한다.
▶스마크공장에서 직원이 모니터를 통해 작업 흐름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모습 | 중소벤처기업부
전문 인력 10만 명 양성도 본격 추진
지역에 적용할 프로젝트는 제조업 활력 회복을 위한 단기 처방이다. 제조업 혁신을 위한 중장기 전략의 핵심은 제조업 생산 현장의 스마트화이다. 정부는 2018년 12월 13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중소기업 스마트 제조혁신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오는 2022년까지 제조업 분야 중소기업에 ‘생산공정 자동화와 함께 실시간으로 제품 데이터 분석 및 활용이 가능한 지능형 스마트공장 3만 개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2014년부터 중소 제조업에 스마트공장 구축 사업을 시작해 2018년 말까지 7903개 보급했다. 이를 3만 개로 늘리면 종업원 10명 이상 국내 중소 제조업체 가운데 약 48%가 스마트공장을 갖추게 된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스마트공장을 도입한 기업의 성과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생산성이 30% 높아지고 제품 불량률은 43.5% 떨어지며, 생산원가와 납기는 각각 15.9%, 15.5%씩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아울러 기업당 고용이 평균 2.2명 증가하는 등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중기부는 올해 스마트공장 구축 목표를 4000개로 잡고 총 3428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이는 지난해 예산 1330억 원 대비 2.6배 늘어난 금액이다. 또 지원 금액이 비현실적이라는 업계 의견을 반영해 기업당 지원 금액을 기존 5000만~1억 원에서 1억~1억5000만 원으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협력업체가 공동으로 스마트공장 구축을 추진하는 ‘상생형 모델’도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100억, 현대자동차 58억, 포스코 20억 등 올해 대기업 출연 약정액이 이미 338억 원 확보됐다. ‘상생형 스마트공장’ 구축에는 정부와 대기업이 각각 30%, 중소기업이 40%씩을 분담한다. 여기에 산업은행을 비롯한 정책금융기관이 2조 원의 대출 재원을 조성해 본격 지원에 나서고, 3000억 원 규모의 스마트공장 구축 투자펀드도 조성된다.
중기부는 스마트공장을 구축한 중소기업에는 연구개발( R&D), 금융, 수출, 공공조달 등을 아우르는 종합 지원체계를 갖춰 제조 현장의 혁신을 가속화 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전국 19곳의 테크노파크(TP)에 제조혁신센터를 신설해 시범공장 발굴과 각종 애로 해소 등 스마트공장 보급의 허브 역할을 맡긴다. 또 교육부, 고용노동부와 함께 스마트공장 운영 관련 전문 인력 10만 명 양성 프로그램도 본격 추진한다. 직업계고등학교 재학생들이 스마트공장을 직접 체험하고 실습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스마트공장 거점 특성화고 20개를 올해 지정한다. 대학의 전문학사 과정으로 스마트공장 관련 학과를 4개 신설하며, 산학융합지구의 대학 2곳에는 스마트랩을 구축해 스마트공장 공정 설계 및 운영의 실습 공간으로 활용한다.
산업부는 제조업이 밀집한 산업단지 전체를 ‘스마트산단’으로 지정해 기존 제조 공정의 혁신과 함께 미래 신산업 발굴과 창업기업 육성의 거점으로 키운다. 민관 합동으로 구성된 ‘산단 혁신 추진협의회’의 심사를 통해 지난 2월 창원과 반월·시화 국가산업단지를 1차 시범 단지로 지정했고, 2022년까지 모두 10개 스마트산단을 조성할 계획이다. 스마트산단은 올해에만 국비 2000억 원 이상이 지원되는 메가프로젝트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산단 내 기업 간 자원과 데이터를 연계함으로써 네트워킹 효과를 극대화하는 게 스마트산단의 구현 모습이다. 입주 기업의 제조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생산성 향상과 원가 절감 방안을 제공하는 ‘제조데이터센터’ 설립, 산단 내 유휴 자원과 공유 가능 서비스를 활용한 공유경제 플랫폼 구축, 산학연 네트워크 구축 및 제조데이터 연계사업 추진 등이 스마트산단에서 추진할 주요 사업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역별 특화 업종의 기업과 학교, 연구소가 스마트산단에서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두터운 신뢰 관계와 함께 협업 경험이 쌓여 다양한 제조업 혁신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산업단지 안 주택·문화 환경 지원
제조업 혁신의 주체는 제조 현장의 사람이다. 스마트공장과 산단을 구축하더라도 숙련된 노동이 결합하지 않으면 제조업 혁신은 불가능하다. 제조 현장의 혁신은 결국 일터의 혁신인 셈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일터의 혁신에 노동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청년 인재의 제조업 유입을 촉진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우선 노동자가 함께 만들고 참여하는 스마트공장 시범사업을 올해부터 추진한다. 스마트공장 구축 과정에 노조 대표가 참여해 작업조직 설계와 직무 개발 등을 회사와 함께 결정하면 정부 지원 대상 선정 때 가점을 주고 지원 혜택도 늘려주는 방식이다.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지역별로 경제계, 노동계, 대학 등이 함께 참여하는 ‘제조혁신 협의체’ 구성도 적극적으로 유도할 계획이다. 지역 주도로 제조혁신의 성공 사례를 발굴하고 확산하는 운동을 추진하면 정부가 이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매칭(연계) 후원하는 프로그램을 설계 중이다.
산업단지 내 중소기업 재직자의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한 공공 투자도 확대된다. 국토교통부는 지자체 공모 신청을 통해 2022년까지 산단형 임대주택 1만 8000호 등 공공임대주택 4만 호를 공급하기로 했다. 또 문화·체육시설 등을 집적화한 복합문화센터를 올해 전국 13곳에 새로 설치하고, 산단형 공동 직장어린이집을 내년까지 100개로 늘린다. 중소기업 청년재직자의 목돈 마련에 정부가 지원해주는 내일채움공제 가입 대상은 지난해 4만 명에서 올해 8만 명으로 두배 늘어나며, 신규 취업 청년에게는 1억 원까지 연리 1.2%의 금리로 전·월세 자금 융자, 월 5만 원의 교통비 지급, 복지 포인트 제공 등 재정 지원이 확대된다.
생산성만 우선하면 ‘고용 없는 성장’
정부가 제조업 혁신을 위한 정책 수단을 중소기업 쪽에 집중하는 이유는 혁신할 수 있는 능력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국내 주력 제조업 생태계는 수출 대기업을 정점으로, 부품·소재를 생산·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이 하청·재하청으로 수직계열화 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제조 중소기업 수가 약 41만, 종사자 수는 약 320만 명에 이른다. 이들 중소기업이 생산성 향상과 품질 개선을 뒷받침해야 수출 대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 제조업 활력 회복과 혁신의 원천적인 힘이 부품·소재 중소기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 해소, 공정한 거래 질서 확립, 나아가 상생협력을 통한 개방형 생태계로의 전환이 절실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경제는 제조업 비중이 크고, 특히 주력 제조업의 수출 의존도가 높다. 전체 산업 생산의 활력을 높이려면 수출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가 늘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관심’을 결여한 경쟁력 제고 노력은 자칫 노동배제적 자동화로 흐를 공산이 크다. 생산 능력 기준으로 측정한 제조업 기반은 이미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다. 유엔공업개발기구(UNIDO)가 발표한 2016년 제조업 경쟁력지수(CIP)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120개 국가 가운데 5위에 올랐다.
제조업 수출의 세계시장 점유율(2015년 3.9%)도 중국, 미국,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 5위이다. 2016년 기준 제조업 종사자 1만 명당 로봇 투입 대수는 631대로 싱가포르(488대)를 제치고 압도적 1위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가 절감과 생산성 향상에만 초점을 맞춘 제조업 혁신은 ‘고용 없는 성장’을 가속화 할 수도 있다. 사람 중심의 경제, 포용적 혁신성장과는 멀어지는 길이다. 제조업 혁신은 좋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져야 한다.
박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