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018년 9월 1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발달 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 발표 및 초청 간담회'에서 발달 장애인 공연단 '드림위드 앙상블'의 공연에 깜짝 춤을 추는 다큐멘터리 '어른이되면' 주인공 장혜정 씨를 보며 미소 짓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2018년 당기 적자로 돌아서면서 2011년부터 이어졌던 7년 흑자 행진이 막을 내렸습니다. 건강보험 보장을 크게 강화한 이른바 ‘문재인 케어’와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지출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쌓아놓은 준비금이 최대 수준인 20조 5955억 원을 유지하고 있어 아직은 곳간이 넉넉한 편입니다. 그런데 일부 언론에서는 건강보험 적자를 죄다 ‘문재인 케어’ 탓으로 돌리거나, 건보 재정 고갈과 보험료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요지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이러한 주장이 어느 정도 타당한지 보건복지부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따져봤습니다.
2018년 1778억 적자, ‘문재인 케어’ 탓?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재정 현황 자료를 보면, 2018년 말 기준 건강보험 지출(62조 2937억 원)이 수입(62조 1159억 원)보다 많아 1778억 원의 적자를 나타냈습니다. 지출이 2017년에 비해 5조 원가량 늘어났죠. 건강보험 보장 확대로 지출이 늘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건강보험 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것을 ‘문재인 케어’ 탓만으로 볼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급격한 고령화에 따른 노인 의료비 증가가 건보 적자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체 건강보험 적용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 비율은 2009년 10.5%에서 2018년 9월 말 13.8%로 높아졌습니다.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 중 65세 이상 인구가 사용한 의료비 지출 비중도 3분의 1에서 40.8%로 상승했습니다. 65세 이상 환자의 요양병원 진료·입원에 투입된 건보 재정만 2017년 3조 3932억 원으로 2010년(1조 1253억 원)의 3배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대수명 증가에 따른 노인 의료비와 만성질환의 증가는 건강보험 재정에 숙제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이재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령화에 따른 노인 의료비 증가는 우리 사회가 제도적으로 함께 담보해야 할 몫”이라고 진단합니다.
보장률 7%p 올려도 OECD 평균 못 미쳐
건강보험 재정이 항상 튼튼했던 건 아닙니다. 2000년대 들어 재정 통합과 의약분업을 겪으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2001년과 2002년 연속 적자로 2조 5715억 원의 누적 적자를 기록해 당시에도 ‘재정 파탄’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2003년 당기 흑자 전환을 기점으로 다음 해 재정 균형 상태를 이뤘습니다. 이후에도 적자와 흑자를 오락가락하더니 역설적으로 2000년대 말 미국발 경제위기 여파로 의료 수요가 주춤해진 덕에 흑자가 증가했습니다. 이후 2012~2016년에 연간 3조~4조 원 흑자를 기록하면서 누적 적립금이 2017년 20조 7733억 원까지 불어났던 겁니다.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의 범위를 크게 넓힌 ‘문재인 케어’를 2018년 7월부터 본격 시행했습니다. 환자가 전액 부담했던 비급여 진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건보 보장률을 2016년 62.6%에서 2022년 70%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입니다. 보장률 목표치 70%를 달성하더라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보장률 평균 80%(2016년)에는 여전히 못 미칩니다. 그런데 보장률을 7%포인트가량 확대하는 데 드는 재정은 5년간(2017~2022년) 30조 6000억 원으로 추산됐습니다. 이렇게 되면 보험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져 당기 수지는 적자를 이어가고 누적 적립금 규모도 점점 줄어들 수 있습니다. 정부는 2019년도 적자가 2조 8158억 원 수준일 것으로 예측한 바 있습니다.
일부 언론은 건보 적자폭이 해마다 커져 누적 적립금이 금세 바닥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 추계 결과를 인용해 현 정부 임기가 끝나는 2022년 적립금이 반토막 난 뒤 2026년이면 고갈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런데 예정처 자료를 살펴보니 ‘현행 정책을 유지하면’이라는 전제를 빠뜨렸더군요. 그 추계 자료는 가정에 따라 두 가지 결과를 제시하고 있는데 기사는 현재 제도가 유지된다는 가정하에 쓴 결과치만 제시했습니다. 인용된 자료를 낸 당사자인 김윤희 예산정책처 추계세제분석관은 “국고지원금 확대 등 추가 재원이 확보될 경우 일정 수준의 적립금 유지가 지속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또 건강보험 급여비 1% 절감 등 재정 절감 대책을 실행할 경우 누적 적립금은 2022년에 반토막이 아닌 14조 6000억 원, 2027년에 고갈이 아닌 4조 7000억 원을 보유하는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앞서 정부는 요양급여비 사후관리 강화, 경증환자 의료 이용 억제, 요양병원의 기능 개편 등 비효율적 지출을 최대한 줄이는 재정 절감 대책을 병행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2026년 고갈? 전제 빼고 보도
복지부는 정부지원금 확대, 보험료 수입 기반 확충, 적절한 수준의 보험료율 인상, 지출 합리화를 통한 재정 절감 등으로 재원을 마련해나갈 것이므로 재정이 소진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선 건강보험에 대한 2019년 정부지원 예산은 2018년(7조 2000억 원) 대비 7000억 원 늘어난 7조 9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로 증액됐습니다. 건보 누적 적립금은 20조 원 가운데 절반인 10조 원만 재원으로 투입해 이번 정부 5년을 포함한 향후 10년 동안에도 1.5개월분 급여비(2022년 기준 약 10조 원) 수준의 준비금은 지속적으로 보유한다고 합니다.
복지부는 적정 수준의 적립금은 앞으로도 계속 보유해야 하지만 필요 이상의 적립금은 보장성 강화에 활용하는 것이 국민 건강 보장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판단합니다. 보험료를 쌓아두고 여기에서 연금을 지급하는 국민연금과 달리, 건강보험은 보험료를 그해 걷어 그해 쓰는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재정이 고갈되더라도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는 사태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정부 부담금을 더 높이거나 보험료를 올리면 됩니다. 오히려 20조 원의 적립금이 남았다는 것은 국민에게 보험료를 걷어놓고서 보장성을 강화하는 데 제대로 쓰지 않고 그냥 쌓아만 뒀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보험료율 인상 지난 10년간 인상폭 유지
일부 언론은 적립금이 바닥나는 2026년 이후엔 건강보험료가 급격히 인상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합니다. 정부는 2022년까지 건강보험료율(월급에서 건보료로 내는 비율) 인상폭을 지난 10년간(2007~2016년) 인상률 수준인 3.2% 안팎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해당 언론은 이미 2019년 건보료율이 8년 만에 최대 인상폭인 3.49% 올랐다는 점을 급격한 인상의 예로 듭니다. 하지만 전년도인 2018년 보험료 인상률이 2.04%로 낮게 결정된 점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2022년까지 매년 2019년 인상률인 3.49%를 올려도 2018~2022년 평균 인상률은 정부가 약속한 3.2%가 됩니다. 또 인상된 보험료율 6.46%도 선진국에 견줘 매우 낮은 수준입니다. OECD 회원국의 보험료율 평균은 12% 안팎입니다. 이은경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문재인 케어는 막대한 의료비 부담을 없앤 획기적인 방안인 만큼 국민건강보험법에서 규정한 보험료율 8% 상한은 장기적으로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일부 언론은 문재인 케어가 ‘과잉복지’를 내세운 탓에 의료 수요가 늘어나 건보 재정이 위협받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환자 2~3인용 상급병실 사용료, 틀니·임플란트 비용까지 건강보험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느냐는 겁니다. 복지부는 2018년 7월부터 종합병원 2·3인실에도 건보를 적용했습니다. 올해 하반기에는 동네 병원·한방병원 2·3인실도 지원할 계획입니다. 65세 이상 치과 임플란트 비용 본인부담률은 50%에서 30%로 낮췄습니다. 복지부는 의료비 부담이 높거나, 급여 적용 요구가 높은 분야를 우선적으로 적용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종합병원 이상 2~3인실 입원료의 경우 보험이 적용되는 4인실 이상 병실이 부족해 원치 않는 상급병실을 어쩔 수 없이 이용하게 된 환자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상위 5개 상급종합병원 환자의 84%가 이런 상황에 처해 비자발적으로 상급병실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만 과다한 상급병실 이용을 방지하기 위해 본인부담률을 통상 20%보다 높은 30∼50%로 설정했다고 합니다. 틀니·임플란트의 경우 구강 건강이 취약한 65세 이상 노인에 대해 평생 2개까지만 한정적으로 보험급여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노인 중 20개 이상 치아를 보유하고 있는 비율은 46.6%에 그치고 이 중 23.3%는 의치가 필요한 상태라고 합니다.
정부지원금 ‘예상수입의 20%’가 함정
그동안 정부가 건강보험 지원금을 덜 낸 것도 재정압박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정부지원금은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일반회계 14%+국민건강증진기금 6%)를 지원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습니다. 보험료 수입이 증가하면 자동적으로 국고지원금도 증가하겠죠. 그런데 정부지원금이 실제 보험료 수입이 아니라 ‘예상’ 수입의 20%로 정해져 있다는 게 함정입니다. 재정 당국에서 추산하는 예상 보험료는 실제 보험료에 견줘 지속적으로 과소 추계됐습니다. 이에 따라 실제 지원액은 보험료 수입의 20%에 크게 못 미친 15.45%에 그쳤습니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10년(2007~2017년) 동안 정부가 미납한 부담금은 17조 1770억 원으로 나타났습니다. 덜 낸 지원금에 대한 정산 규정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의도적으로 보험료 예상 수입액을 과소 추계해온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옵니다.
건강증진기금(담배부담금)의 경우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6%를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지원 금액이 담배부담금 예상 수입액의 65%를 초과할 수 없다’는 단서 조항이 붙어 있어 재원 활용에 한계가 있습니다. 2017년 건강증진기금의 지원 비율은 6%에 훨씬 못 미치는 3.8%에 그쳤습니다.
전문가들은 ‘예상 수입’이라는 불확실한 전망치에 근거해서는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불분명한 규정을 고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해당 연도 보험료 예상 수입액’을 ‘전전년도 보험료 수입’으로 변경해 불확실성을 없애고, 상시적인 지원으로 재정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또 보험료 실제 수입에 근거한 사후정산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은 의료 안전망으로서 보장 범위를 확대하고 재정의 건전성도 유지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출의 효율성을 높이고 안정적인 수입 기반을 확보해야 합니다. 현재 건강보험 재원은 대부분 보험료(약 87%)로 충당되고 나머지가 정부지원금입니다. 보험료 수입은 2012년 이후 연평균 7.03% 증가한 반면, 정부지원금은 4.86% 증가에 그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질병 발생에 따른 일반적인 치료는 국민이 직접 부담하는 보험료로 충당하더라도 공공의료, 저소득 취약계층, 어린이 등 모자보건, 노인·장애인에 대한 지원은 국가가 책임지고 재정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신영석 선임연구위원은 “형평성 측면에서도 보험료 인상보다는 세금을 통한 국고지원 증가가 바람직하다”고 짚었습니다.
한광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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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