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노순경 지사(1902~1979) / 독립운동가 노백린 장군의 차녀이며 세브란스병원 간호사. 1919년 12월 2일에 동지 20여 명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해 서울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김향화 지사(1897~미상) / 1919년 3월 29일 수원예기조합의 동료 기생 30여 명과 경기 수원군 자혜병원, 경찰서 앞에서 만세시위에 나섰다. 유관순 열사(1902~1920) / 이화학당 고등과 2학년. 휴교령이 내려지자 유관순은 고향으로 돌아와 1919년 4월 1일, 천안 병천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권애라 지사(1897~1973) / 1919년 3월 3일 개성에서 있었던 만세시위는 권애라, 어윤희 등에 의해 호수돈 여학교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유관순 열사의 이화학당 선배다.
다큐 영화 <1919 유관순> 배우들과 작가를 만나다
좁고 어두운 이곳은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 감방입니다. 수감번호 219, 237, 371, 285번. 서울, 수원, 천안, 개성 등지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죄목으로 끌려온 여성들입니다. 수감번호 뒤에 가려진 그녀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노순경, 김향화, 유관순, 권애라. 다큐멘터리 영화 <1919 유관순>이 100년 전, 그녀들의 이름과 그날의 기록을 생생하게 재생합니다.
▶유관순 열사를 연기한 배우 이새봄 SBS수목드라마 <스위치- 세상을 바꿔라>와 웹 드라마 <썸터뷰> <데이트할까> <사랑의 정석> 등 출연. 그 밖에 2018 LG U+ tv프리, 카카오뱅크 절친 편, G마켓x카카오미니C, GS25 새우라면_독도사랑편 등 CF 광고도 다수 출연.
2019년 2월 2일 토요일 오후 4시, 남양주종합촬영소 제7스튜디오 안은 어둡고 엄숙했다. 1919년 3·1 만세운동 이후 여성들이 투옥돼 있던 서대문 여옥사 8호 감방 세트장이 있는 탓이다. 류의도, 박자희, 이새봄, 김나니 네 배우들의 몸을 빌려 ‘100년 전, 8호 감방의 여자들’이 그 안에 주저앉았다. 고문 장면 촬영을 준비하는 세트장에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암시가 숨통을 조여오는 듯했다.
그로부터 2주 뒤, 모든 촬영을 마치고 배우들과 작가, 피디가 한겨레신문사 9층 스튜디오에 모였다. 4명의 배우들은 지면을 장식할 사진 촬영과 인터뷰에 응했고, 이어서 11명의 배우 전원과 이은혜 작가는 3·1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 삼창을 영상에 담았다.
어윤희, 심명철, 권애라, 김향화, 이신애, 동풍신, 노순경, 임명애, 신관빈. 대부분이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다시 소개하겠다. 여기 호명한 아홉 명은 유관순 열사의 감방 동지들이다. 그렇다. 유관순 열사처럼 모두 빼앗긴 조국의 독립을 외치다 끌려 들어왔다. 서슬 퍼런 일제의 감옥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 감방에는 우리가 100년 동안 독립운동가라 불러온 이들이 있었다.
▶권애라 지사를 연기한 배우 김나니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예술사 졸업(음악과 판소리 전공). 박송희, 안숙선, 김세미, 김선미 명창에게 사사. 2007년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 판소리 부문 장원 차지하며 소리판에서 주목받기 시작함.
신인 배우들을 캐스팅한 이유
다큐멘터리 영화 <1919 유관순>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기획 동기에 대해 총괄을 맡은 윤학렬 감독은 “우연히 2~3년 전 서대문형무소에 갔다 8호 감방을 봤다. 그 안에는 유관순 열사 한 명만이 아니라 기생, 임산부, 간호사, 과부 등 이름 모를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가 있었다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몰랐던 그들을 세상에 밝히는 일이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했고 바로 기획에 들어갔다. 시나리오를 쓴 이은혜 작가는 “8호 감방을 여러 번 방문했다. 상상하는 것도 고통스러운 기록들이었다. 사진 속 그녀들의 눈빛을 보며 궁금했다. 그녀들의 조국은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영화는 3·1운동 시점부터 유관순 열사가 서거하는 시점까지를 다룬다. 유관순 열사와 같은 시기에 구속되어 고초를 겪은 독립투사들의 삶을 추적해 기록한다. 캐스팅에 대해 이은혜 작가는 “그녀들의 조국을 말하고 싶은데 누군가 한 명이 튀면 그 부분을 표현하기가 힘들다”며 신인 배우들을 택한 이유를 밝혔다.
▶노순경 지사를 연기한 배우 류의도/배우 제공 현재 고등학교 3학년. MBC '장난스런 키스' 출연.
“척하거나 흉내 내지 않도록 신중히”
참여한 배우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유관순 열사를 연기한 이새봄은 “독립운동이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5·18 민주화운동 등 평소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았다. 의미 있는 작품에 작은 역할이라도 참여하고 싶었다. 오디션 때 다시 한번 기억한다고 말하면서 울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캐스팅이 결정되고 서대문형무소를 다녀왔다. 7세부터 어르신까지 사진들이 다 있는데 표정은 온화하고 순박한데 눈빛이 단호하고 결연해 보였다. 그들의 눈빛에 충격을 받았다. 지치고 힘든 기색은 있었지만 지지 않을 거란 무거운 마음이 생겨났다”며 첫 마음을 드러냈다. 김향화 지사를 연기한 소리꾼 박자희는 “오디션 때 아리랑을 부르다 울음이 터졌다”며 “모르는 많은 독립운동가를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분들 덕에 대한민국이 있고 우리가 있다”고 부끄러움을 고백했다.
▶김향화 지사를 연기한 배우 박자희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음악극과 졸업. 국립극장 차세대명창 선정. <춘향2010> <청> <아빠철들이기> 등 활발한 전통 공연활동과 현대적인 음악활동 및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는 차세대 소리꾼.
배우들은 각자 맡은 인물에게서 어떤 면모를 보았을까. 이새봄은 “관순은 대장부다. 교과서적인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고 유관순 열사를 표현했다. 박자희는 “향화는 출소 후 행방이 묘연하다. 홀연히 사라진 여인은 어떤 심정일까. 노래하고 악기 다루는 사랑스러운 여인은 또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처절하고 피폐해졌지만 그래도 싸워야 했을 김향화 지사의 마음을 표현”하려 애썼다. 김나니는 “권애라 지사는 어린 시절부터 똑순이로 불렸다. 연설도 잘하고, 분위기 메이커였다. 이런 밝은 성격이 나랑 닮았다. 캐릭터에 나를 많이 대비시키면서 임했다”며 “영화에서 권애라 선생님은 노래 부르는 장면이 정말 많다. 소리꾼인 나에겐 퍼포먼스가 익숙한데, 권애라 선생님은 어떻게 불렀을까 생각했다. 기교를 빼고 노래했다. 22세의 당찬 아가씨 권애라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실제로 17세인 류의도는 “노순경 선생네는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나이는 17세이지만 마음은 단단했을 거 같다”며 “척하지 않고, 흉내 내지 않도록 신중히 임했다”고 말했다. 촬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탓인지 배우들은 대답하는 순간순간 극중 캐릭터로 감정이입을 하는 듯 먹먹해했다.
“재연이고 간접적인 경험이지만 직접 닥친 일처럼 숙연해지고 힘들었다”는 김향화 역의 박자희 배우 말처럼 감옥에선 엄청난 고문이 자행되었다. 유관순 역의 이새봄 배우는 “대나무로 손톱을 찌르면서 부모님을 모욕하는 신이 제일 힘들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세 번을 얻어맞는데도 아픔이 안 느껴졌다. 눈앞에 별이 보일 정도였는데도 말이다”라며 가장 힘들었던 고문 장면을 표현했다. 노순경 지사 역의 류의도 배우는 “수조 고문이 끔찍했다. 상상도 안 되어 그런지 처음엔 긴장도 안 했다. 손이 뒤로 묶인 채 상체가 물속에 잠기는데, 살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이러다 진짜 죽겠구나 싶었다. 촬영 후 집에 가서 하루를 앓았다. 샤워할 때마다 그 고통이 계속 떠올랐다”며 고문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했다.
“다큐의 격조에 드라마 감동 더해”
영화는 무엇보다 고증에 심혈을 기울였다. 다큐멘터리 장르가 붙은 이유다. 그렇다고 자료 영상으로만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이은혜 작가는 “드라마와 다큐의 콜라보다. 드라마로 인물들을 재연하고, 극 사이사이에 전문가 인터뷰와 자료 영상이 들어간다. 다큐로서의 격조와 품위, 여기에 드라마가 주는 감동을 더했다”며 독특한 제작 방식에 대해 강조했다. 그러면서 “<1919 유관순>은 100년 전의 그녀들이 보내는 영상 편지”라고 덧붙였다.
<1919 유관순>은 ‘1919년 8호 감방의 여자들’을 소환해, 100년이 지난 오늘 분단된 조국에게 되물어본다. 빼앗겼던 조국의 그날을 남과 북은 잊지 않고 있는가? 그리고 제작진의 바람처럼, 100주년이 끝나기 전에 북한 전역에도 <1919 유관순>이 상영되길 기대해본다. 영화는 3월 중순에 개봉한다.
글 심은하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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