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 숭배하다 보면 직업 본분 상실한다”

2019.02.18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l  ▶롯데엔터테인먼트

‘여전히 잘생겼습니다’라고 외모를 칭찬하면 “어디 가겠습니까”라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자아낸다. 뻔뻔하다 싶다가도 또 다른 면이 보인다. 파업 중이던 KBS 노조원들에게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응원을 보내고, 악플 속에서도 “인권에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소신을 밝히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이 거침없는 행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배우 정우성이다. 정우성의 유쾌함과 당당한 소신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2월 13일 개봉한 영화 <증인>의 주연 배우 정우성을 지난 1월 23일 만났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큰 울림을 주는 영화 속 대사를 그에게 되물었다. 데뷔 26년이 지난 지금, 정상의 자리에서 꾸준히 도전을 멈추지 않는 배우 정우성에 대한 탐구 시간이다.

-<인랑>(2018), <강철비>(2017), <더 킹>(2017), <아수라> (2016)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남성성이 강한 역할만 하다가 이번엔 피로에 지친, 내면이 단단한 인물이다. <증인> 시나리오의 어떤 점이 마음을 움직였나.
=따뜻했다. 시나리오 속의 모든 인물들은 사랑으로 사람을 대한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정서, 전체적인 온화함이 좋았다.

-<증인>에서 가장 보통의 정우성을 만나는 반가움을 느꼈다.
=순호와 그의 의지 한 부분에서 나와 닮은 면을 캐치했다. 가치관이나 사고에 대한 확신을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확인하려는 그 자체가 노력이잖나. 그런 노력에 대한 의지가 나와 닮았다.

-영화 속 ‘양순호’는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결국 변호사란 직업을 내려놓는 엄청난 선택을 한다. 실제로 난민 문제 같은 많은 활동을 하면서 전에 없던 비난과 공격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호감형 배우, 안티 없는 배우라는 오랜 이미지를 내려놓는 선택을 해야 했을 테고.
=내가 안티 없는 배우인 줄 그전엔 몰랐다.(웃음) 살면서 연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주어진 것 단 하나도 당연한 게 없기 때문에 감사하고, 연연할 필요도 없고, 그렇기에 자아의 가치관을 공고히 해야 한다. 의견이 충돌할 때도 그들의 의견을 인정하고 합의된 의견으로 가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클라이언트가 법이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물론 영화가 이걸 전면에 내세우진 않지만. ‘돈에 의해 불의가 정의가 되는 사회’에 대해 할 말이 있다면?
=물질주의인 거다. 물질을 숭배하다 보면 직업이 갖는, 가져야 하는 본분을 상실한다. 물질 지상주의가 되면, 물질을 좇기 위해 모든 방법과 수단은 정당성을 상실해도 상관없다는 공식이 형성될 수 있다. 양순호의 직업이 변호사라는 게 그런 질문들을 내포한 면이 있다. 순호를 통해 수임료가 많아지면 있는 죄도 없게 만들어주는 직업적 윤리의식의 타락이 정당한가에 대해 묻는다.

-의외로 법정 신이 많이 나온다.
=지우라는 아이의 증언에 대한 신빙성, 이것이 결국엔 이 사회에 놓인 지우 같은 친구들(자폐아)을 얼마만큼 신뢰를 갖고 바라보는지, 우리의 태도와 자세를 보여주는 필요 요소다.

-변호사 양순호에게서 정우성이 많이 겹쳐 보인다. 사회적 발언을 활발히 해서일 텐데, 자신의 사회적 소신이 배우 활동과 어떤 조화를 이루나?
=상호작용보다는 이해 충돌이 더 많다. 왜냐하면 많은 분들이 배우란 직업이 갖는 긍정적 혜택을 지키려 할수록 내가 속한 사회문제에 대해 자꾸 스스로 부정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점점 함께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는 상황이 돼버린다. 지난 시대들이 그렇게 만들어놓았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너만 잘되면 돼”, 이 발언이 극진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 같지만 사실 굉장히 무서운 말이다. 다 함께 잘돼야지, 누군가 한 명이 잘된다면 그 세상이 진정으로 잘된 세상일까. 정말 풍요를 누리는 세상일지에 대해서는 또 다른 고민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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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세상에 나를 증명해야 했던 시절”
-본인이 추구하는 ‘사회의 어른’으로서 자세가 작품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치나.
=20대부터 꾸준히 작용해왔다. ‘내가 이걸 왜 해야 하지?’라는 “왜” 질문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이게 <증인>을 통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지금 이 나이에 정우성이 할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일 수밖에 없다.

-이 사회는 질문하지 않는 사회잖나. 답을 정해놓고 따르기만을 강요하고 또한 스스로 돌아보지 않는, 앞으로만 질주하는 사회다. 그럼에도 꾸준히 나를 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뭘까.
=어린 시절의 성장 배경과 맞물려 있다. 학벌도 좋지 않고 인맥도 없고, 온전히 혼자 세상에 나를 증명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니까 자꾸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너 지금 잘하고 있니?’라고 묻는 시간이 꽤 길었다. 스스로에게 자꾸 질문하는 것은 좋은 버릇 같다. 그리고 이제는 질문해야 하는 시대 같다. 그동안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입을 틀어막던 시대였기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 되었다.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건 아니지만 묵인했던, 입막음이었다.

-배우라는 직업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가.
=영화는 산업 안에 있는 자유로운 업종이긴 하지만, 영화가 지닌 파급력과 한 배우가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함께 내재돼 있다. 내가 만든 캐릭터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진정한 배우로서의 가치는 얼마큼인지에 대한 고민은 해야 한다. 이를 운 좋게도 어린 시절에 <비트>라는 영화를 통해 빨리 느꼈다.

-배우의 선택 하나가 쌓이고 쌓여 큰돈을 움직이고 산업을 움직이며, 관객 정서를 바꾸고 관람 문화를 바꾸기도 한다. 그 무게감에 도망가고 싶거나 선택을 미룬 적은 없나.
=다행히 빅 프로젝트에만 출연하진 않았다. 자본의 논리도 중요하지만 산업이 가져야 하는 본질, 창작의 추구 그게 자본과 만났을 때 더 아름다운 시너지로 꽃이 피는 것이다. 여름마다 겨울마다 틀에 걸리는 영화를 추구했으면 어느 순간 성공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성공을 계속 연장하기 위한 노력을 했을 것이고 그게 스트레스가 되었을 것이며, 어느 순간 실패가 왔다면 좌절할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정우성이 그려보는 가족의 모습도 상상했다. 어떤 아들이었고, 어떤 아버지가 될까. 나만의 가정을 꿈꿔본다면?
=부모와 함께 보낸 시간이 내 인생에서 많지 않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그래서 내가 어떤 아들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린 시절의 불만족 때문인지 좋은 아버지가 돼야지 하는 생각은 해봤다. 내가 바라는 아버지상은 ‘아들과 친구 같은 아버지’다.

l  ▶정우성의 어린 시절 영화 <비트>(1997)

l  ▶배우로서 터닝 포인트를 찍은 <감시자들>(2013)

l  ▶최근 개봉한 <증인> 

“감독 입봉 준비, 근데 촬영감독이…”
-데뷔 이후 내리막이 없었다.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아직 천 만을 안 해서?(웃음) 흥행의 꼭짓점을 안 찍었기 때문에 정우성은 가능성이 있어, 하는 거 아닐까. 천 만은 정말 멋진 수치다. 한국 영화시장의 잠재적 크기를 평가하기에도 긍정적인 숫자다. 하지만 천 만만을 좇을 순 없다. 300만~500만 영화가 많은 영화시장이 우리나라 시장의 사이즈면 훨씬 더 건강하고 튼튼한 산업으로서 돌아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고 본다.

-올해 계획은?
=감독 입봉 준비 중이다. 이제 시나리오를 각색해야 한다. 스태프도 구성해야 하고. 근데 촬영감독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웃음)

-지금 인간 정우성의 행복지수를 100점으로 표현한다면?
=‘100점이 다 행복한 건 아니다’라고 일단 말하고 싶다. 1점도 행복하고 10점도 행복한 거라 생각한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딱 하나로 결정지으려고 하는 것 같다. 100퍼센트라는 것을 생각하고 행복을 재는 순간, 행복하지 못할 거 같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어떻게 보면 여러 환경의 부족함 때문에 유행된 거 아닌가. 삶에서 단 하나도 당연한 게 없기에 모든 것에 감사하고, 그러면 행복한 거다.

심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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