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세술 양념 버무린 부침가루 같은 세상

2019.02.18 최신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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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이 전화를 주셨다. 점심때 우리 집에서 드신 김치부침개 만드는 방법이 궁금하다는 내용이었다. 부침개 맛이 저녁에도 생각나서 부침가루를 넣고 만들었는데 그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내가 무엇을 넣었기에 장모님이 부침개가 맛있다고 하셨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부침가루가 떨어져서 밀가루를 넣은 것이 떠올랐다.
장모님이 느낀 고소한 부침개 맛의 비법은 밀가루였다. 장모님은 인위적인 양념이 배제된 순수 밀가루에서 맛본 고소함을 떠올리셨던 것이었다.

요즘엔 부침가루가 다양하고 간편하게 잘 나온다. 간을 맞출 필요도 없이 물을 부어 반죽을 만들어서 굽기만 하면 된다. 쉽고 맛있긴 하지만 밀가루 본연의 고소함이 줄어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든다.
우리 사회의 모습도 이와 같다. 경쟁사회에서 같은 내용의 교육을 받고 같은 길을 목표로 나아가는 젊은이들을 보면 부침가루 같다는 생각이 든다. 취업을 위해 각종 대외 활동, 대회 수상 등 남들보다 화려한 경력을 쌓으려 노력하지만 정작 자신의 개성을 다듬고 드러내는 이는 드물다. 공무원 시험 응시생이 40만 명이 넘어간다고 하니, 이런 현실 속에서 개인의 특별한 맛은 사라지고 모두가 같은 맛을 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취업을 한다 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의 조직에서는 개성을 드러내 남들보다 튀는 행동을 하면 좋지 않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이 바뀌어서 조직의 분위기가 자유로워졌다고는 하지만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젊은이들에게 처세술이란 양념이 더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젊은 신입사원이 사회생활을 잘 버티기 위해선 자신의 개성과 소신을 숨기고 조용히 지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밀 본연의 맛이 옅어진 부침가루처럼, 사회에서 요구하는 덕목들이 가미되며 젊은 직원들의 개성이 옅어지고 있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본 기사가 기억난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최상위지만 흥미도는 바닥 수준의 결과가 나왔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학생들이 정형화된 문제에는 강하지만 변형된 응용문제에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2018년 수능이 ‘불수능’으로 난도가 높다고 평가된 후 유튜브에 외국인들이 직접 외국어 영역의 문제를 푸는 영상이 올라왔다. 영어가 모국어인 그들조차 이런 문제가 다 있냐며 혀를 내두르는 영상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이 옳은 교육을 받고 있는지, 아이들이 자신만의 다양성을 살릴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는 개인의 개성이 존중받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런 날이 온다면 젊은이들도 똑같은 길만을 바라보며 달려가진 않을 것이다. 개인이 인생의 갈림길에서 다양한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마련될 때 사회의 다양성은 확보될 것이다. 여기서 파생되는 사회 구성원의 다채로움은 우리 사회를 발전시켜나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 믿는다.
개인의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기다리며 장모님이 밀 본연의 고소한 맛이 느껴지는 부침개를 인상 깊어 하시듯, 이 세상 속에서 나만의 개성을 드러내 누군가에게 인상 깊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본다.

황석현 전북 완주군 이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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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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