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독일의 국민 라디오(Volksempfa..nger)를 선전하는 포스터. “모든 독일인은 국민 라디오로 총통을 듣는다.”/ 1940년대 미국에서 생산된 대형 제니스 라디오는 허세로 가득한 모습이다./ 1954년에 발표된 세계 최초의 트랜지스터 라디오리젠시(Regency) TR-1. 라디오의 본질을 찾는 모습이다.
한때 TV가 집 안의 중심이던 시절이 있었다. TV는 가격이 무척 비싼 사치품일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상징적 존재였다. TV는 정보의 통로, 즉 미디어에 불과하지만 사실 정보 그 자체로 여겨졌다. 이 의미를 이해하려면 라디오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20년대 라디오라는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했을 때 그것의 가치를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은 히틀러다. 히틀러는 라디오를 통해 자신의 음성을 독일 국민에게 전달함으로써 그를 숭배하도록 만들었다.
라디오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 안에 사람이 들어 있는 줄 착각했다고 한다. 전화기도 초기에 비슷한 충격을 주었다. 고종 때 궁궐에 처음으로 전화기가 보급되었다. 임금의 전화를 받은 신하들은 임금이 눈앞에 보이지 않았지만 전화기를 향해 엎드렸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이어진다. 집에 누워 있던 직원이 사장의 전화를 받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도 한다. 라디오나 전화기가 어떤 소리를 전달하면 그것은 그 소리를 전달하는 매개물이 아니라 정보 자체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라디오는 책이나 신문처럼 집중을 하지 않더라도, 다른 일을 하면서도 그 정보에 쉽게 빠져든다.
▶1970년대에 대한전선에서 생산된 가구형 TV
허세 버리고 기능에 알맞게
이런 획기적인 기능 덕에 라디오는 집 안의 중심이 되었다. 1930년대 독일처럼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라디오를 지도자와 동일시해 우상처럼 여기고 그것을 신줏단지 모시듯 했다. 미국처럼 드라마나 음악 같은 오락거리와 뉴스를 제공하는 미디어로 사용할 때도 라디오는 세상을 보는 최고의 창으로서 집 안의 중심이었다. 라디오는 그것이 요구하는 크기보다 훨씬 크고 화려하게 디자인되곤 했다.
집 안에서 차지했던 라디오의 권좌는 1950년대 대중화된 TV에 자리를 넘겨주어야 했다. 그 뒤 라디오는 자신의 올바른 위치를 찾았다. 그곳은 자동차나 이동 중인 사람들의 주머니 속이다. 대신 화려한 외관이라는 허세를 버리고 소형화하고 단순해졌다. 오직 소리만 잘 나오게 하는 데 주력했다. 이것은 라디오의 올바른 모습이다. 라디오를 대신해 권좌를 차지한 TV는 초기 라디오가 걸었던 길을 갔다. 자신의 기능에 필요한 몸집보다 훨씬 크고 화려하게 디자인되었다. 말하자면 집 안에서 가장 값나가는 가구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 생산된 고급 TV는 화려한 나무 장식이 포함된 가구처럼 디자인되었다. 이런 TV는 대부분 레이스 달린 천을 그 위에 깔고 꽃병 같은 장식품을 다시 얹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TV 또한 허세를 버리고 기능에 알맞은 형태를 찾아갔다. 브라운관 TV 시대가 가고 평면 TV 시대가 왔을 때 사람들은 깨달았다. TV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체에 불과하다. 그건 사용하지 않을 때는 차라리 안 보이는 게 낫지 않을까? TV가 얇아지자 브랜드별 디자인 차이도 점점 사라졌다. 더 얇은 두께로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TV의 경쟁력이란 결국 비물질화하는 것 아닌가. 공상과학 영화에 보면 TV는 벽이나 거실 창문, 화장실의 유리 속으로 들어간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다.
▶올해 초 CES에서 발표된 엘지의 롤러블 TV는 사용하지 않을 때 부피가 줄어든다.
▶삼성의 프레임 TV는 사용하지 않을 때도 그림이나 사진 작품을 건 액자처럼 그존재감을 과시한다.
입헌군주제 왕 신세 때 디자인은?
올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발표한 엘지 TV는 이런 흐름 위에서 개발되었다. <한겨레> 기사를 인용하면, 엘지전자 남호준 가전연구소장은 이번에 개발한 “롤러블 TV는 공간을 고객한테 돌려준다는 의미로 시작했다”고 한다. 반면 삼성 TV는 “꺼져 있을 때 뉴스와 날씨, 사진 등을 보여주는 기능을 강화했다”고 한다. 삼성전자 한종희 사장은 “스크린은 가정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스크린은 허브다”라고 말했다. 엘지는 TV의 존재감을 약화시키려는 반면 삼성은 그 반대다. 아마도 두 가지 TV가 다 필요할 것이다. 거대한 스크린을 가진 TV가 공간을 지배하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이 공간의 낭비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TV의 미래는 라디오의 진화로 예상해볼 수도 있다.
라디오의 특징 중 하나는 대단히 개인적인 미디어라는 점이다. 라디오가 TV에게 거실의 권좌를 넘겨주고 휴대용처럼 작아졌을 때, 그것은 더 이상 가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을 위한 것이다. 정보의 디지털화가 진행되기 전 TV는 온 가족이 함께 보는 미디어였다. 따라서 집안의 권력자, 대개는 아버지가 ‘채널권’을 지녔고, 그가 보는 것을 다 같이 봐야 했다. 또한 특정 시간대에 특정 프로를 하므로 그 시간대를 놓치면 볼 수 없었다.
디지털 시대의 정보는 언제 어디서든 접속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기존의 TV처럼 취향이 다른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억지로 동질성을 확인할 필요가 없어졌다. 각자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자기 방에서 보고 싶은 걸 마음대로 보는 시대가 된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정보를 재생하는 물리적인 장치가 TV, 컴퓨터, 스마트폰 등으로 다변화해 TV는 과거와 같은 권력을 누리지 못한다. 미디어가 곧 정보 자체인 시대는 갔다. 사람들은 이제 자기가 철저히 통제할 수 있는 미디어를 선택할 수 있다. 그렇다고 TV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집 안 거실이나 침실에서 여전히 한 자리를 차지하겠지만, 그것은 입헌군주제의 왕처럼 권력을 잃은 상징적 존재로 추락한 것이다. 그랬을 때 그 디자인은 어떤 모습을 해야 할까?
김신_ 홍익대 예술학과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하고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 대림미술관 부관장으로 일했다. 현재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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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