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에너지 조경목 사장(왼쪽)과 이정묵 노조위원장이 1월 28일 SK울산 CLX하모니홀에서 열린 ‘2019 SK이노베이션 협력사 상생기금 전달식’에서 협력사 구성원 대표에게 기부금을 전달하고 있다. | SK이노베이션
상생협력 얼마만큼, 어떤 성과 냈나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의 착근.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1월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상의 주최 신년 인사회에서 경제계 주요 인사들에게 제시한 올해 화두다. 상생협력의 착근은 지금까지 상생협력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가능하다. 문재인정부 출범 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활동이 얼마만큼, 어떤 성과를 거두었을까?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성과는 상생협력기금의 증가다. 지난 2011년 도입된 상생협력기금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상생협력법)’에 따라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대·중소기업협력재단에 출연하는 재원이다. 대기업에서 법정 기부금 형태로 돈을 받아 재단이 기금 관리 및 운영을 맡고 있는데, 기금 출연액 증가율이 2017년 4.7%에서 지난해 28.1%로 대폭 높아지며 2018년 말 현재 누적 기준 기금 규모가 1조 원을 돌파했다. 상생협력기금은 출연 기업과 협약을 맺은 중소기업이 생산공정 개선, 임직원 복리후생, 해외시장 개척 등에 활용할 수 있으며 정부도 세제 혜택과 정책금융 연계 지원 등의 방식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이런 기금 혜택을 본 중소기업 수도 누적 기준 4만을 넘어섰다.
수치로 나타난 것보다 더 중요한 변화는 질적인 진화다. 상생협력 방식과 형태의 다양화에 더 눈길이 간다. 특히 상생협력의 주체인 기금 출연 기업의 업종 다변화가 지난해 뚜렷했다. 호반건설과 호반을 주력 계열사로 둔 호반그룹은 지난해 12월 12일 중소벤처기업부, 대·중소기업협력재단과 함께 협력사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어 200억 원 규모의 상생협력기금을 출연했다. 중견 건설업계에서는 최초의 기금 출연이다.
이랜드리테일, 다양한 성과보상제
호반그룹의 상생협력기금은 건설 협력업체의 경영 안정 자금과 연구개발 및 기술 보호, 임직원 교육, 대금 결제방식 개선 등에 활용될 예정이다. 협약에는 호반그룹 협력사의 공사 수행 능력과 안전관리 등을 평가해 인센티브를 지급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를 두고 홍종학 중기부 장관은 “상생협력기금으로 업종 특성에 맞게 이익공유형 인센티브를 협력업체에 지급한다는 점에서 선도적인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기금 용도의 다양화는 지난 2017년 관련 법령 개정에 따라 기금 조성 목적과 용도에 대한 제한이 풀리면서 일어나는 변화다. 기존에는 기금 용도가 출연 대기업 협력사의 연구개발, 인력개발, 생산성 향상, 수출시장 개척, 에너지 절약 등 5가지로 제한되었으나 2017년 7월부터 출연 기업 스스로 다양한 상생협력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호반그룹처럼 협력업체와 성과공유 또는 이익공유를 위해 기금을 활용하는 방식은 유통업에 적용하기에 적합하다. 실제로 이랜드리테일이 지난해 9월부터 시행하는 입점 업체와의 성과공유가 그런 경우다. 이 회사는 입점 업체 20여 곳과 특별판매 행사를 진행하면서 매출 목표를 초과 달성하면 이익을 나누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약 2억 원을 기금 출연금으로 썼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지난해부터 중점 사업으로 추진하는 ‘임금격차 해소 운동’의 1호 기업인 이랜드리테일은 전체 협력업체의 임금·복지 향상을 위해 앞으로 3년 동안 모두 500억 원을 조성하고 다양한 성과보상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제조업 분야 대기업에서는 상생협력기금의 수혜 대상을 2차, 3차 협력업체로까지 넓히고 있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주력 3사는 지난해 5월 500억 원 규모의 기금을 출연해 1차 협력사가 아닌 2·3차 협력업체들의 인건비 상승 부담을 덜어주는 데 활용토록 하고 있다. 지금까지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2·3차 협력업체가 모두 1290곳이며, 최저임금 인상에 영향을 받은 협력업체 소속 직원 중심으로 약 4만 명이 혜택을 보고 있다. 삼성전자도 기금을 통한 우수 협력사의 직원 인센티브와 성과급 지원 대상을 지난해 하반기부터 2차 협력사로 넓혔고, ㈜두산은 12억 원을 출연해 2?3차 협력사와 영세한 사내 하청업체 70곳의 직원에게 1인당 월평균 10만 원과 4대보험 비용을 지금하고 있다.
자체 상생펀드 만들거나 노조 참여도
상생협력기금을 출연하진 않았지만 자체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기금을 조성해 상생협력을 추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대글로비스가 조성한 200억 원 규모의 상생협력펀드다. 이 펀드는 글로비스와 거래하는 화물차 운전기사와 중소 물류회사의 제반 비용 절감과 자금 흐름 안정에 활용된다. 글로비스가 200억 원을 은행에 예치하고, 여기서 생기는 이자를 활용해 지원금을 주는 방식이다. 해마다 연간 50여 명의 운전기사와 10여 개 협력사가 펀드의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에 대기업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월 28일 울산의 ‘SK울산 CLX 하모니홀’에서 노사 합의에 따라 임직원 기부금으로 조성된 ‘1% 행복나눔 기금’을 협력사 직원 성과급으로 제공하는 ‘2019 SK이노베이션 협력사 상생기금 전달식’을 열었다. SK이노베이션 노사는 임직원들이 기본급의 1%를 기부해 우선 23억 6000만 원을 만들고, 여기에 회사가 매칭 그랜트 방식으로 내놓은 23억 6000만 원을 더해 모두 47억 2000만 원의 기금을 협력사 직원들의 임금 지원 목적으로 조성했다. 이 가운데 1차로 23억 6000만 원을 66개 협력사에 전달해 모두 4431명이 특별 성과급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날 행사에 협력사 대표로 참가한 강종수 ㈜제이콘 대표는 “SK이노베이션 노사가 함께 참여해 만든 ‘1% 행복나눔 기금’은 협력사 직원 처우 개선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협력사 구성원들이 SK와 일하는 것에 자긍심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대·중소기업 간 불균형의 심화는 여러 가지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만큼 뿌리가 깊다. 대기업은 일회성 시혜가 아니라 중장기적 계획에 따라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쏟아야 불균형을 개선할 수 있다. 정부는 상생협력의 문화와 관행을 유인하고 촉진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더 촘촘하게 다듬어야 한다. 상생협력의 뿌리가 깊고 넓게 퍼지면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전체 산업생태계의 혁신과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박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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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