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간 경쟁통해 적극적인 규제 혁신”

2019.02.11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l  ▶최성진 규제 샌드박스 심의위원회 민간 위원은 “스타트업이 바로 정부가 말하는 혁신성장이다.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로 창업해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활발해져야 실험하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혁신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 곽윤섭 기자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규제 샌드박스 실시에 대해 “광범위한 영역에 도입돼 새 사업을 펼칠 수 있는 ‘패스트 트랙’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고 업계의 반응을 전했다. 최성진 대표는 1월 21일 정보통신기술(ICT) 규제 샌드박스를 운영할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의 민간 위원으로 위촉됐다. 스타트업 대변자이면서 심판관이 된 그는 “소비자들의 안전 문제 등을 포함해 균형 잡힌 시각으로 심의하겠다”면서도 “규제가 아닌 기술로 소비자 보호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신제품·신서비스에 대한 규제 여부를 신속히 확인하고 임시 허가나 실증특례를 통해 제품의 시장 출시를 앞당기는 ‘규제 샌드박스’ 3종 제도는 1월 17일부터 시행됐다. 규제 샌드박스(sandbox)란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모래 놀이터처럼, 스타트업 기업들이 새 제품이나 서비스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도록 기존 규제를 일정 기간 면제하거나 유예함으로써 혁신적인 사업모델이 가능한 환경을 말한다. 신산업·신기술 분야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놓아도 복잡하거나 불합리한 규제로 사업 단계에서 좌절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과 다음커뮤니케이션 대외협력실장 등을 역임한 최 대표를 지난 1월 29일 서울 종로구 율곡로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사무실에서 만났다.

-대표를 맡고 있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어떤 단체인가.
=2016년 50개 스타트업체 대표가 모여 발족했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에 사단법인으로 설립 인가를 받았고 지금은 회원사가 700개로 늘었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배달의 민족) 대표가 의장이고 간편 송금 앱인 토스, 마켓컬리, 직방, 다방 등 국내 주요 스타트업체가 다 들어와 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는 규제 혁신, 교육, 네트워킹, 비즈니스 지원, 복지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예상보다 다양한 영역에서 신청”
-규제 샌드박스 도입에 대한 업계의 반응은 어떤가.
=환영하는 분위기다. 각 부처 접수처가 붐비고 있다. 예상보다 다양한 영역에서 신청이 들어온다. 과기정통부에 12개의 안건이 올라왔고 산업통상자원부에는 3건이 올라와 통과됐다.
2017년에 아산나눔재단 등과 함께 세계 100대 스타트업 사업모델이 국내에 들어올 경우를 조사했는데 불과 30개 모델만 사업이 가능한 것으로 나왔다. 국내 규제로 70%는 원천적으로 사업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됐다. 글로벌 스타트업이 100개라면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30~40개밖에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순간에 다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규제 샌드박스가 기존 법과 제도를 개정하지 않고도 새 사업을 펼칠 수 있는 ‘패스트 트랙’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한국형 규제 샌드박스’ 제도의 장단점과 효과 등 구체적 평가를 해본다면?
=무엇보다 광범위한 산업 분야에 도입했다는 특징이 있다. 규제 샌드박스를 먼저 도입한 영국과 싱가포르는 핀테크 등 금융 분야에 대해서만 적용하지만 우리는 어떤 영역이든 신기술·신사업 모델만 있으면 신청할 수 있다. 현재 4개의 근거 법안에 따라 적합한 트랙으로 신청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4개 부처가 심의위원회를 구성했는데 신사업의 성격상 한 부처 심의에서 떨어져도 다른 부처에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부처 간 경쟁을 통해 규제 혁신이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효과가 있다.
우려하는 부분은 먼저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했는데 심의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그 사업은 해서는 안 될 사업이라는 낙인효과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규제 샌드박스는 기간이 제한돼 있다. 2년 동안 사업할 수 있게 임시로 허가하고 이후 재평가해 2년을 연장하면 최대 4년이다. 궁극적으로는 그 기간 안에 규제가 해소되도록 국회에서 법을 개정해줘야 한다. 입법하는 데 4년이 더 걸리면 스타트업은 어떻게 되겠는가? 기다리다 도산하거나 다른 사업으로 전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또 임시 허가를 내주면서 이용자의 안전 문제 등 검증 조건을 단다. 이 조건이 과도하면 기업의 성장 속도를 제한해 사업성이 떨어져 포기할 수 있다. 심의위원회는 이러한 문제를 감안해 운영해야 한다.

f  ▶1월 17일 오전 경기도 과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청사에서 정재필 KT 사업협력부문 상무(왼쪽)가 김광의 과기정통부 인터넷제도혁신 공업연구관에게 공공기관의 모바일 전자고지 활성화를 위한 임시허가 신청서를 전달하고 있다. | KT

“소비자 보호, 규제보다 기술 평가 역점”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규제 혁신 속도가 더뎠던 이유는 뭐라고 보나.
=법에서 열거한 것 외에는 못하게 하는 포지티브 규제 상황에서는 법을 바꿔야 하는데, 앞에서 말했듯이 이게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중국이 혁신사업 육성을 잘하는 이유는 스타트업이 충분히 성장할 때까지 지켜보기 때문이다. 공유 자전거 사업에 과잉투자가 이뤄졌지만 시장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주고 이후 성장 기업이 생기면 네거티브 규제를 한다. 포지티브 규제 방식을 포괄적인 네거티브로 바꾸는 가장 강력한 방안 중의 하나가 규제 샌드박스다.

-이제 스타트업만을 대변하는 입장이 아닌 심의위원으로서 어떤 잣대로 심의에 임할 생각인가.
=일단 규제 샌드박스가 잘 작동해 혁신적 기술과 사업이 시장에 적극적으로 선보일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물론 규제는 기업을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익을 위해 만든 법과 제도라고 생각한다. 실제 시장에 나와 많은 소비자들이 이용할 때 안전 문제와 사회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놓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심의하려 한다. 소비자가 안전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신사업이 안착하고 규제도 빠르게 개선될 것이다.

-안전 문제를 얘기했는데 규제 완화에 따른 위험을 방지하고 소비자 보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지 않겠나.
=규제 완화라는 말보다 규제 혁신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규제의 취지 자체는 정당하다. 다만 그런 제도가 만들어진 시기에 예상했던 것과 지금의 기술 발전 속도는 다르다. 따라서 규제가 아닌 기술이나 서비스로 소비자 보호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혁신을 통해 더 편리해지고 싸지는 게 소비자 후생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
소비자 보호도 법률로 세세한 규제를 하기보다는 기술 평가에 역점을 두는 게 낫다. 중고차를 역경매하는 ‘헤이딜러’는 지난 정부가 오프라인 주차장에 경매 시설을 갖추도록 요구해 문을 닫을 뻔했다. 온라인을 통해 딜러를 평가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법대로 해서 문제가 된 경우다. 식품 온라인 유통도 신선식품은 냉장시설 탑차만을 이용해야 한다는 식의 오프라인 시설 요건으로 규제한다. 세세한 규정을 만들어놓으면 그걸 지키기 위해 비용이 많이 들고 혁신적 기술을 활용하지 못해 되레 소비자의 이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l  ▶유니콘 스타트업(기업가치 1조 원 이상)으로 평가받는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민족’을 개발한 우아한형제들의 대표이사 김봉진 | 한겨레

“창업자가 많이 나오는 사회가 건전”
-스타트업인 카풀 서비스와 전통 산업인 택시업계의 최근 대립 사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사회적 문제로 되는 과정이 안타깝다. 세계적으로 변화와 혁신이 모빌리티 분야에서 가장 빠르게 일어나면서 다양한 승차 공유 서비스가 급성장하고 있다. 기존 사업 종사자도 새 서비스 제도에 참여하고 부가가치가 많이 늘어난다. 원조 격인 우버와 중국의 디디추싱이 각각 80조 원과 60조 원 이상의 가치를 시장에서 인정받았다. 동남아시아의 그랩은 우버가 철수하면서 급속히 성장했다. 미국의 리프트는 경쟁을 통해 기존 산업을 혁신하면서 이용자인 국민의 이익도 충족시켰다. 우리나라에선 우버가 퇴출된 2013년 이후 5년이 넘도록 제도가 바뀐 게 없다.
미국은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에서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가 상용 주행을 시작했다. 피닉스시 160㎞ 반경에 국한되고 운전석에 사람이 앉아 있어야 하는 법적 제한이 있지만 자율주행차 시대가 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제도를 정비해 산업 경쟁력을 키움과 동시에 사회 안전망을 마련해 갈등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시장은 글로벌 플레이어들의 각축장이 될 것이다.

-끝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해달라.
=스타트업이 바로 정부가 말하는 혁신성장이다.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로 창업해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활발해져야 실험하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혁신이 만들어진다. 경제구조가 달라지고 있는 만큼 제도적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 세계 시총 상위 10대 기업 중 텐센트, 알리바바 등 8개사가 ICT 기반 혁신기업이다. 우리나라의 우아한형제들(3조 2000억)과 토스(1조 2000억)는 유니콘 스타트업(기업가치 1조 원 이상)으로 평가됐다. 더 많은 스타트업이 유니콘, 데카콘(10조 원 이상)으로 성장하면 일자리와 소득 증가에 도움이 되고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된다. 세계 100대 부자 가운데 자수성가 비율이 80%대인데 우리는 10%도 채 안 된다. 창업자가 많이 나오는 사회가 건전하다. 혁신성장 기조에 맞춰 평범한 창업자들이 늘어날수록 대기업 갑질 문제 등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안전망 논의 등 스타트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정부와 국민이 스타트업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 우리 사회가 준비해야 할 미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한광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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